[김은식의 야구란 무엇인가·30·끝]희생번트

달갑지 않은 지시, 정교한 승부수

경인일보

발행일 2017-10-31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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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땐 비난 축구 PK 부담감과 비슷
선구안·타구 방향·힘 조절에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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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야구작가
희생번트라는 것을 두고 야구라는 경기의 깊이와 멋을 논하는 이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 '희생'이라는 요소가 존재하는 스포츠는 야구뿐이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 생각에 그건 지나친 의미부여다. 야구경기에서 희생번트란 거의 모두 감독의 작전지시에 따라 이뤄지며, 그 지시를 달가워하는 선수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발적이지도 않고 흔쾌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하는 행동에 어쩌다보니 희생이라는 이름은 붙였다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야구를 지배하는 숭고한 정신' 운운하는 것은 너무 낯간지러운 짓이 아니냐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어쨌든 지시를 받은 타자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 희생번트다. 물론 성공해서 선행주자를 진루시킨다면 자신이 아웃을 당하더라도 '타수'로 계산되지 않기에 타율을 손해 보지는 않는다. 또한 연말 연봉협상에 반영되는 '고과산정'에 다소나마 반영되기에 보람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번트는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어서 종종 실패함으로써 실제로 타율을 까먹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시한 감독이나 지켜보는 팬들은 어지간한 연습과 집중력만 따라준다면 결코 실패할 리가 없는 쉬운 임무로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실패하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마치 누구나 이미 한 골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페널티킥을 차는 축구선수가 극심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어쨌든 희생번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공을 배트에 정확히 맞히되 너무 강하게 튀어나가지도, 너무 투수나 내야수 정면으로 굴러가지도, 너무 힘이 죽어 포수 앞에 뚝 떨어지지도 않도록 신경 쓰고 조절해야 한다.

또 좋지 않은 공에 무리하게 손을 대다가 파울을 만들게 되면 쓰리번트아웃(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댄 번트타구가 파울이 되면 자동으로 삼진아웃으로 처리되는 룰)을 당하거나 쓰리번트 아웃을 피하기 위해 번트 사인이 철회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만을 정확히 골라서 공략하는 선구안도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자신이 생각하는 스트라이크존의 가장 높은 지점에 배트를 내민 채 기다리다가 공이 그 위로 날아오면 배트를 빼고 그 밑으로 내려오면 공략하는 요령을 기억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런 복잡한 과업을 무난히 성공시키기 위해 평소에 꾸준히 연습하며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을 후려쳐 날리는 타격훈련에 비해 번트연습은 재미도 없고 큰 보람도 느껴지지 않는 고역이다. 번트의 달인이 된다 한들, 그것이 선수로서의 명성을 얼마나 높여줄 것이고 연봉은 또 얼마나 보태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미국에서야 투수들이 타석에 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희생번트를 구경할 일 자체가 별로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희생번트를 자주 지시하는 감독은 점점 환영받지 못한다.

번트란 아무래도 역동적인 장면을 만들지도 못하고 대량득점을 가능하게 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늘어나면서 아등바등 짜낸 한두 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홈런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번트 성공률이 높은 팀은 분명히 강한 팀이다. 왜냐하면 희생번트란 성공한다고 해도 큰 빛이 나지 않는 영역이고, 그래서 흔히 의외의 빈틈이 나타나기 쉬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후미진 영역에서조차 선수들이 철저히 준비하는 어떤 유인이나 문화가 있는 팀이라면 공격과 수비 전반에서 더 많은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일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이다.

/김은식 야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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