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은 생명의 길, 사색의 길이다.
그동안 우리는 잘 닦여진 신작로, 산을 깎아 만든 지방도, 인근 시·군을 연결하는 국도, 국토를 가로지르는 쭉 뻗은 고속도로만을 길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런 길들은 사람이 아닌 차들을 위한 차도일뿐이다.
옛날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수많은 길들이 있었다.
그러나 개발이란 미명 하에 어느새 그런 길들은 수많은 차량의 홍수에 밀려 하나둘 사라져가고 사람과 자연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시간들도 점차 잊혀져갔다. 이제 다시 지리산에 그 길이 꽃피고 있다. 단순한 이동통로의 도구가 아닌 인간과 자연이 만나 생명을 사색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그 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산길이지만 수직으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 수평으로 이어져 정상 정복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된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급변하는 시대에 남들보다 뒤처질세라 더 높은 곳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들에게 이런 지리산 둘레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잠시 일상의 욕심을 버리고 본연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것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이들의 공통적인 소망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지천에 핀 생명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어느새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만든다. 또한 내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허황된 욕심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쉬어가며 때묻은 마음을 닦아내는 시간이 바로 둘레길을 걷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인생에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느림의 미학'처럼 지리산의 너르고 풍성한 품에 나 자신을 내던져보는 건 어떨까.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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