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와이드·어족자원의 보고 경기만] 조성원 경기남부수협 조합장

“김을 브랜드화하고, 어족자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때입니다.”조성원 경기남부수협 조합장은 경기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물김의 통합브랜드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선 도의 G마크를 획득하고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를 통해 소비자가 다가가기 쉽고 경기도와 화성시, 안산시를 아우르는 특화상품을 만들어간다는 구상이다.조 조합장은 “이를 위해 마른김을 1차 가공하고, 2~4차 가공을 통해 소비자까지 전달하는 체계적인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며 “김 가공 생산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그는 김 산업을 국내 시장뿐 아니라 중국 랴오닝, 헤이룽장, 지린성 등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미 중국의 대형 유통체인업체와도 사업을 조율 중이다. 이 경우 최소 200만명의 배후수요가 마련되고, 사업 초기 40억원 이상의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조합장은 “김도 수출의 문이 열렸다”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수협중앙회 무역사무소 등의 도움을 받는다면 실패하지 않는 대중국 창구가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어족자원에 대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어민과 함께 자원을 관리하고 이를 수확해 수익을 분배하면 어촌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지만 이를 관리할 권한이 없어 다른 지역 어민에게 도난당하는 등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어서다.조 조합장은 “수협과 어민들이 관련 면허를 신규로 부여받지 못해 우수 어족자원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마을어업이 곤란하면 대표기관을 수협으로 해 지금이라도 시험조업 등 일정 부분의 해저수산물을 수확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 조성원 조합장

2015-07-02 김연태

[금요와이드·어족자원의 보고 경기만] 여기 숨어있었구 灣(만)

화려한 불가사리·우람한 키조개·손바닥만한 소라수중촬영 장비로 담아낸 ‘풍요로운 바닷속 진풍경’잔잔히 파도치며 밀려오는 바다 위에 섰다.바닷바람은 경기만의 향기를 실어 나르고,갯벌에는 조개잡이로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빠진다.바다와 섬,갯벌이 어우러진 이곳을 경기만이라 부른다.경기만은 인천과 경기 서쪽 한강의 하구를 중심으로 북쪽의 장산곶과 남쪽의 태안반도 사이에 있는 반원형의 만으로 다도해를 형성하고 있다. 화성시와 평택시, 안산시, 시흥시를 거슬러 인천 앞바다까지 528㎞에 달하는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다.지난달 16일 오전 11시 수중촬영 장비를 동원해 경기만의 해저 속을 들여다봤다. 40여분에 걸쳐 촬영된 영상은 ‘어족자원의 보고’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물살을 헤치고 들어가 만난 해저에는 각종 조개껍데기와 해초가 먼지에 쌓인 듯 자리하고 있었다. 기나 긴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듯했다. 바닥에 붙은 불가사리는 화려한 색을 뽐내고 있었고, 인적을 느낀 물고기는 빠르게 헤엄쳐 달아났다.그렇게 해저를 둘러본 지 1분 만에 몸집의 반을 바닥에 감춘 우람한 키조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천적에게 걸리지 않으려 해초로 위장한 듯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이 키조개의 발견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앞으로 헤엄쳐 갈 때마다 곳곳에서 키조개들이 발견됐다. 크기는 시중에서 보던 키조개보다 1.5~2배 정도 컸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더 먼 바다로 나가자 바닷속에 마련된 인공어초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는 광어와 우럭, 꽃게 등 다양한 어종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고, 그 주변에는 어른 손바닥만한 소라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남쪽에서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 수백 개가 나타났다. 일명 ‘대합’으로 불리는 개조개들의 집단 서식지가 발견된 것이다.다시 5분가량 이동해 도착한 해저에서는 대형 해삼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마치 가시 돋친 듯 오돌토돌 나온 돌기를 세우고 바닥에 엎드린 해삼의 모습은 얼핏 봐도 어른 손바닥 두 개 크기였다. 인근 바닥에는 미역과 다시마 등 다양한 해초류가 자라나 바닷속 생태계를 유지했다.김호연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장은 “지구온난화 등으로 해초류가 자라나면서 경기만 일대는 소라와 키조개 등 다양한 어패류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상태”라며 “일부 지역에서는 커다란 전복이 다량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경기만은 시나브로 수많은 어족자원이 보석처럼 자라나고 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어민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보석처럼 빛나는 경기만을 다시 봐야 할 때’라고. /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 화성시와 평택시, 안산시, 시흥시를 거슬러 인천 앞바다까지 528㎞에 달하는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는 경기만. 그 중에서 작고 조용한 마을인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를 찾은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게, 조개 등을 캐며 갯벌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15-07-02 김연태

[금요와이드·괴담에 흔들리는 우리 사회] “풍문으로 들었소”

광우병 파동부터 메르스 사태까지정부·언론에 커지는 국민들의 불신인터넷·SNS 통해 유언비어 힘얻어괴담(怪談)은 말 그대로 괴상한 이야기를 뜻한다. 이런 괴상한 이야기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해 왔고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괴담이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회의 이슈로 등장하고 때론 괴담 중 일부가 사실로 밝혀져 온 국민을 공포와 불안에 빠뜨린다.2008년 광우병 파동,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2014년 세월호 침몰, 2015년 메르스 사태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괴담은 어김 없이 한국 사회를 혼란과 공포에 빠뜨렸다.성균관대 이효성(신문방송학 교수)는 ‘유언비어와 정치’란 논문에서 국가가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보도와 통신, 즉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회에서 이런 괴담과 유언비어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 있는 정보를 주지 못하고 언론이 이런 정부의 발표를 거름장치 없이 보도할 때 국민은 스스로 정보를 얻고 문제의 답을 찾아 나선다. 정부와 언론 같은 공식적인 채널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상황일수록 괴담이 양산된다는 것이다.‘메르스 괴담’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메르스 초기 “확진자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머문 게 아니면 전파 가능성은 없다”고 발표했다. “3차 감염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m 이내는커녕 감염자 병실 밖 사람들까지 메르스에 걸리는 ‘에어로졸 전파’가 시작됐고 3차 감염을 넘어 4차 감염자까지 나오는 상황이 발생했다. 메르스 확진자가 다녀간 병원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아, 국민들 스스로가 인터넷에 ‘메르스 지도’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해야만 했다.세월호 침몰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직후 “탑승객 368명을 전원 구조했다”고 발표했지만 탑승객은 총 476명이었고 구조된 인원은 172명뿐이었다. 탑승객과 구조자 수가 확정되기까지 약 20일 가량이 소요되면서 국민이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침몰 당시 정부가 여러 차례 잘못된 정보를 배포했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하면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런 불신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괴담이란 형태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인천대 이동후(신문방송학 교수)는 “경직된 사회일수록 괴담은 힘을 얻기 마련”이라며 “국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에서는 괴담이 이토록 힘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권력까지 동원해 그토록 찾아 헤매는 괴담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5-06-25 김명호

[금요와이드·괴담에 흔들리는 우리사회] 신뢰가 사라진 나라, 원인은?

광우병 파동·세월호 등 초기에 정보공개 안해불확실하고 자극적인 소문들, SNS 타고 전파美 에볼라 환자·병원 공개 ‘초기대응’ 대조적“국민 통제 불가…제대로 된 사실 발표해야”루머=I(importance:중요성)×A(ambiguity:모호성)미국의 심리학자인 고든 앨포트와 레오 포스트맨이 만든 괴담의 공식이다. 그들은 ‘루머(괴담)의 강도는 정보의 중요성과 상황의 불확실성의 곱에 비례한다’고 주장했다.#괴담은 어떻게 전파되는가광우병 사태, 천안함 침몰,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인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괴담’은 전 국민 사이로 퍼져나갔다. 특히 SNS 사용이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괴담이 확산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SNS에 올리면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재가공하면서 구체화하고 있다.이러한 괴담의 전파 과정을 바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다. 당시 괴담의 전파 과정은 다음과 같다.정부, 미국과 소고기 시장 완전 개방 협상 타결 → MBC ‘PD 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방영 → ‘미친소 닷넷’ 등 인터넷 커뮤니티 중심으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려 뇌에 구멍이 뚫린다’는 괴담 확산 → 광우병 반대 촛불 집회이처럼 괴담이 퍼지고, 국민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30개월 미만 소고기의 교역과 생산·유통과정을 통제하는 규제조처의 도입을 결정하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시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뒤였기 때문에 거짓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발 없는 괴담은 ‘SNS’를 타고…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홍주현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트위터를 통한 루머의 확산 과정 연구’에 따르면 괴담과 관련된 메시지 중에서 자극성이 높을 경우 더 많이 확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홍 교수는 지난 2011년 한미 FTA 협상 체결 이후, 2주 동안 트위터에 올라온 관련 메시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FTA가 체결되면 맹장 수술 비용에만 4천만 원이 들고, 의료 수가가 폭등할 것이다’는 괴담이 전체의 67.5%를 차지했다. 반면, ‘의료분야는 FTA에서 제외된다’, ‘헛소문에 대한 외교부 반박’ 등 괴담에 대한 정부 해명은 6.5%에 불과했다.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 괴담이 신빙성을 얻었기 때문에 정부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나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에서도 괴담은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퍼졌다. 정부에서 이를 괴담으로 규정하고,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SNS 상에서 기정사실화 됐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천안함 사태 때는 ‘천안함은 미군 핵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괴담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에는 ‘세월호 참사 조작설’,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설’, ‘유병언 생존설’ 등의 괴담이 사실인 것처럼 SNS를 돌아다녔다. 올해 메르스 사태에서도 ‘정부에서 환자의 수를 속이고 있다’·‘메르스의 전파력이 강해 일반 마스크로는 감염을 막을 수 없다’·‘실제 치사율은 90%가 넘는다’는 괴담이 퍼지고 있다.정부가 초기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국민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이후 정부가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퍼진 괴담을 막을 수 없었다.#괴담은 소통으로 잡는다지난해 ‘죽음의 바이러스’로 불리는 에볼라 확진 환자가 잇따라 발생한 미국도 초기에는 ‘이민자나 테러리스트가 멕시코 국경을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를 반입해 미국인을 몰살하려 한다’는 식의 각종 괴담이 기승을 부렸다. 언론은 ‘피어볼라’(에볼라 공포)라는 신어까지 사용하며 연일 보도에 나섰고, 시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의 판단은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에볼라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해당 환자의 이름과 병원을 즉각 공개했고, 환자와 접촉한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해서는 즉시 격리 조치를 취하는 초동 대응에 주력했다. 이어 환자가 추가될 때마다 환자명과 감염경로, 환자가 치료받는 병원 등을 낱낱이 알려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에볼라에 감염됐다가 완치된 댈러스 병원 간호사 2명, 이들을 치료한 간호사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포옹하고 키스까지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두려움 차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광우병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많은 국민들이 광우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노진철 교수는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본 광우병 공포와 무지의 위험소통’이란 논문에서 ‘광우병 위험의 긴장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정부, 여당, 보수언론에 의한 광우병 무지 여론의 무시와 좌파, 반미·반정부 등 이데올로기적인 상징 통제는 정치체계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했다’고 평했다.이번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병원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소통과 불신으로 일관했다.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 학과 백승국 교수는 “국민들 대부분이 SNS를 사용하는 요즘 시기에 정부가 완벽히 정보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민들은 SNS상에 떠도는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갖고 담론화하고 있지만 정부가 제대로 된 발표를 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사전에 발표하고, 국민들의 심리적인 공포감을 해소해줘야 유언비어에 국민들이 흔들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메르스 대책 발표하는 최경환 부총리. /경인일보 DB

2015-06-25 김주엽

[금요와이드·괴담에 흔들리는 우리 사회] 괴담의 역사와 오늘

임진왜란 당시 조정, 정보 독점 백성불안 키워정치 네거티브·장사꾼 상술등 현대와 판박이노래로 지어진 소문, 나이·신분 상관없이 전파지식인들 ‘사회체제 불만’ 익명서 활용해 공유삼가 보건대 중외(中外·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문서를 긴요하고 중대하지 않은 것까지 대부분 비밀히 출납하므로 밖에서 보기에 단서를 알지 못해 더욱 스스로 의혹하게 하니 민심이 동요되는 것이 반드시 이에 말미암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선조실록>처음에는 도성 안의 나무꾼이 노래 부르다가 어느새 관서지방의 기생들 노래가 되어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전파하게 되니, 듣기에 놀랍고 미혹스러우며, 온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조롱을 받게 됩니다. <숙종실록>유언비어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늘 등장했다. 오늘날 ‘인터넷 괴담’이니 ‘찌라시’니 하는 것들은 예전에도 풍문(風聞), 흉언(凶言), 와언(訛言), 난언(亂言)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유언비어는 전쟁과 역병, 재해, 정권 다툼 등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마다 생겨났다.# 불통은 유언비어를 만든다임진왜란(선조 25~31년·1592~1598년) 중반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있을 무렵 백성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일본군이 다시 쳐들어온다거나 선조가 중국으로 도망가려 한다는 소문 등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백성의 어지러운 풍속을 바로잡는 기관이었던 사헌부(司憲府)는 임진왜란 당시 유언비어의 원인을 ‘정보의 부재’로 진단했다.“삼가 보건대 중외(中外·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문서를 긴요하고 중대하지 않은 것까지 대부분 비밀히 출납하므로 밖에서 보기에 단서를 알지 못해 더욱 스스로 의혹하게 하니 민심이 동요되는 것이 반드시 이에 말미암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선조실록 52권 선조 27년 6월 29일)사헌부가 선조에게 했던 조언은 2015년 여전히 유효하다. 임진왜란 시기 백성들은 조정이 일본과 어떤 협상을 벌이는지, 명나라는 원군을 얼마나 보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천안함 피폭, 세월호 침몰, 메르스 등 대형 재난과 각종 사건·사고를 옆에서 지켜보던 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알지 못했기에 소문은 더욱 그럴듯했다. 소위 ‘음모론’, ‘괴담’이라 하는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때론 유언비어라고 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기에 나라(정부)가 뒤늦게 진실을 밝히더라도 민심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돌아선 뒤였다.결국 나라(정부)의 입장에서 유언비어는 늘 골칫거리였다. 정권의 안정을 위협했고, 백성들은 불안한 마음에 생업에 제대로 종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유언비어가 떠도는 원인을 짚어보기는커녕 최초 유포자를 ‘발본색원’하기에 급급했다.# 괴담 뒤에 웃는 자헛소문은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수단인 경우도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증권가에서 떠도는 ‘찌라시’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찌라시는 연예계, 정치권, 재계의 뒷이야기 등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들로 구성됐다. 선조10년(1577) 1월 말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때였다. 이때 “보리밥을 지어먹으면 병을 피해간다”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보릿값이 쌀값을 웃도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양곡을 쌓아뒀던 누군가는 덕분에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도 ‘메르스’ 공포심리를 이용한 얄팍한 상술이 판치고 있다. 장사꾼의 상술도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더 잘 통했다.정권 다툼과 유언비어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조선후기 괴담은 정치적 목적을 보인 경우가 많았는데, 영조4년(1728년) 무신난이 일어나기 직전 왕을 헐뜯는 내용의 괴담이 잇따랐다고 한다. 반란 주동자들이 왕과 관련된 유언비어를 퍼트려 민심을 돌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영조는 괴문서가 발견되는 즉시 불태워 민심을 수습하려 했다. 근래에 들어 선거 때만 되면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는 소문을 퍼트리는 ‘네거티브’ 전술이 당시에도 먹혔나보다.# 소문은 노래를 타고과거 유언비어의 전파 경로는 인터넷 중심인 지금과 조금 달랐는데, 노래를 지어 퍼트리는 방식은 특히 전파력이 컸다.“처음에는 도성 안의 나무꾼이 노래 부르다가 어느새 관서지방의 기생들 노래가 되어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전파하게 되니, 듣기에 놀랍고 미혹스러우며, 온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조롱을 받게 됩니다.”(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 11월 16일)백제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의 마음을 사기 위해 어린아이들에게 퍼트렸다는 ‘서동요’도 노래로 퍼진 대표적인 사례다.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과 달리 글로 전해지는 ‘익명서’도 있었다. 화살에 글을 매달아 이곳 저곳에 쏘는 사시(射矢), 벽에 글을 붙이는 첩방(貼榜)등이다. 첩방은 오늘날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자보의 형식과 같았다. 익명서는 사회 체제에 불만을 품은 지식인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특히 언로가 막혔던 시절에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소통의 부재’가 이 같은 유언비어를 양산했던 것이다.# 막걸리 보안법차라리 꾸며낸 이야기를 퍼트렸다가 처벌을 받았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진실을 말해도, 혹은 단순히 정부에 불만을 품거나 의혹만 제기해도 처벌을 받던 서슬 퍼렇던 시기가 불과 30~40년 전 있었다.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다는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이다. 실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007년 보고서를 보면 1974년 오모씨가 버스에서 만난 여고생에게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당한 사례가 있었다. 정부 비판에 대한 입막음은 도리어 수많은 유언비어를 양산했고, 보도통제는 언론마저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때 유언비어는 ‘대안언론’의 기능까지 했다. ‘학생 전원구조’라는 세월호 보도 참사 이후 언론을 믿지 못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정보를 찾아 다니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 전파하는 오늘날 소통방식과 비슷한 구조다.오제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괴담을 합리화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괴담이 ‘왜’ 돌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정보차단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단순히 헛소문에 책임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5-06-25 김민재

[금요와이드·야구장 투어] 경기보다 불꽃튀는 바비큐 파티… 관객 침 넘어간다

◈SK행복드림구장 먹거리들구장내 작은 레스토랑 ‘하이트 클럽’맥주 등 인기… 40여개 테이블 북적■인천 SK행복드림구장‘신포시장 닭강정’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인천의 대표 먹거리다. 주말이면 신포시장 닭강정 가게 앞은 줄을 선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특유의 매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닭강정은 야구장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퇴근길 ‘치맥’이 당기는 이맘때 야구장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즐기는 닭강정 맛이 꽤 괜찮다.이마트 바비큐존은 야구장의 명물이다. 주말 홈 경기가 있는 날 저녁 바비큐존에선 어김없이 삼겹살과 소시지 등을 굽는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우측 외야석 상단에 위치한 바비큐존에선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야구를 볼 수 있다. 올해는 ‘야구장 안의 작은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로 각종 요리와 맥주 안주류 등을 파는 곳이 새로 생겼다. 외야 가운데쯤에 위치한 ‘하이트 클럽’이다. 이곳에선 갈릭치킨&포테이토, 바사칸왕새우튀김, 추억의 도시락 등이 인기다. 평상시 주말이면 전체 40여 개 테이블의 70% 이상 자리가 찬다는 게 이 곳 점장의 얘기다. 짜장면, 탕수육, 피자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카페 아모제’도 인기다. 전화나 SK 와이번스 전용 앱(PLAY With)으로 주문하면 배달해준다. 분식을 파는 일반매점에선 떡볶이와 군만두, 통감자 구이 등이 잘 나간다. 구장 밖에는 인천지하철 문학경기장역 2번 출구 쪽 길가에 치킨과 술·안주 등을 파는 행상과 포장마차가 모여 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 대로 술 한 잔이 생각나 찾아오는 손님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SK행복드림구장 라이브존 관람기대화 들릴만큼 가까워 “티켓값 5만원 아깝지 않아요”“티켓 1장 값이 5만원이나 한다고요? 주말·공휴일에는 1만원을 더 받는다고요?”지난해 말이었던 것 같다. SK 프런트 직원이 올 시즌을 대비해 포수 바로 뒤쪽 관중석에 메이저리그 부럽지 않은 좌석(라이브존)이 들어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알려준 입장권 가격에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지난달 27일 롯데와의 홈 경기를 라이브존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 SK의 선발 투수는 좌완 ‘에이스’ 김광현. 1회초 롯데의 첫 공격이 시작됐다. ‘퍽!’, ‘퍽!’…. 김광현이 던지는 빠른 공이 포수 글러브에 꽂힐 때 나는 묵직한 소리가 매서웠다.포수 뒤쪽 가까이에 있는 점이 크고 작은 재미를 줬다. 공이 의도한 대로 잘 들어갔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김광현의 상반된 표정도 읽혔다. 또 포수와 타자의 몸짓에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유추해 볼 수도 있었고, 이따금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타자가 친 빗맞은 공이 앉아있는 좌석을 향해 날아오며 눈앞 그물망을 때릴 때는 몸이 움찔했다. 그래서 타자 몸에 맞는 공이 나올 땐 탄식이 절로 나왔다. 홈런은 ‘백미’였다.4회말 박정권의 홈런은 공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넘어갔구나’하고 직감할 수 있었다. ‘딱’하는 소리를 내며 쭉쭉 뻗어 나가는 공. 입은 쩍 벌어지고 엄지손가락은 저절로 올라갔다. 라이브존은 지하에 마련된 전용 라운지도 갖췄다. 이 곳에선 선수와 같은 높이에서 그라운드를 볼 수 있어 투수들의 낙차 큰 변화구가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경기가 끝난 뒤 관람한 지인에게 물었다. ‘5만원의 값어치를 했느냐’고. 그는 “대박”을 연발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각양각색 kt·SK팬 응원문화마법주문에 핸드폰 떼창까지프로야구장의 또 다른 맛은 먹거리 외에도 야구장 문화가 다양하다는 점이다.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는 마법사들이 즐비하다. kt wiz 팬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는 게 바로 마법사 모자와 빅또리 머리띠다. 이들은 마법사 모자를 쓰고 주문을 외우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마법을 건다. 그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날려준다면 마법이 통한거라는 게 팬들의 얘기다.SK의 베스트 응원 아이템은 ‘핸드폰’이다. SK는 8회 초가 끝나면 인천의 상징적 노래인 ‘연안부두’를 부른다. 이때 홈 팬들은 각자의 핸드폰 액정을 켜고 ‘연안부두’를 부르며 하나로 뭉친다. 이밖에 응원폼핑거, SK 마스코트인 윙고가 달려 있는 머리띠, 레드 깃발, 오렌지 배트스틱 등도 야구장의 또 다른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이색적인 경험을 통해 야구장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인천 SK행복드림구장. 관람객들이 탁 트인 외야 파티덱에서 펼쳐놓은 음식을 먹으며 야구를 관람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SK와이번스 치어리더 /SK와이번스 제공

2015-06-18 임승재·이원근

[금요와이드·야구장 투어] 수원 전통 ‘진미’들의 한방… 타팀 팬도 넘어간다

◈케이티위즈파크의 맛집들대형프랜차이즈 대신 지역업체 입점스마트폰 앱 예약 주문·배달 서비스■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수원 케이티위즈파크 2층 음식 코너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팬들을 유혹한다. 이 곳은 경기 시작 30분 전부터 북적인다. 관중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고, 아직 음식을 결정하지 못한 이들은 음식 코너를 서성이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이 곳 음식점의 특징은 대형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수원 지역에서 인기있는 업체들이 입점했다는 것이다. 수원의 명물 ‘진미통닭’과 ‘보영 만두’를 비롯해 사회적 기업의 유기농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과일 칵테일, 수원의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만든 돈가스가 준비돼 있다. 또 불족발, 통삼겹구이, 피자 등 다양한 음식들이 구비돼 마치 뷔페를 차려놓은 듯하다. 특히 1·2층으로 나뉜 컨테이너 박스로 푸드코트를 꾸며 이색적인 느낌마저 든다.2층 음식 코너 외에도 야구장 외야석 정면에는 야구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하이트펍이 있다. 하이트펍 티켓을 구매하면 바비큐 소시지·조각 피자·생맥주 등의 세트 메뉴를 즐길 수 있고 후라이드 치킨, 바비큐 소시지, 바비큐 통삼겹, 건조 오징어 등의 단품 메뉴도 먹을 수 있다. 외야 왼쪽엔 바비큐 존도 마련됐는데, 티켓 값에 훈제 치킨·바비큐 소시지·맥주가 포함돼 있어 한 번에 맛볼 수 있고, 핫도그와 핫바, 라면과 같은 간단 메뉴도 준비됐다.물론 이들 음식들은 모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위잽(wizzap)으로 예약 주문이 가능하다. 예매한 티켓이나 선물받은 티켓이 있는 사람은 지정된 장소에서 음식을 찾을 수 있고, VIP석과 테이블석은 한 매장에서 1만5천원 이상 음식을 주문했을 경우 배달받을 수 있다.◈케이티위즈파크 외야자유석 관람기캠핑장 못지 않은 잔디밭 음식 나눠 먹으며 이야기 꽃‘8천 원의 행복,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외야 자유석을 가보다’.야구장에서 텐트를 친 뒤 가족과 함께 경기를 관람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이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오래전부터 외야 관람석을 잔디밭과 수영장으로 바꿔 관람객들의 여가생활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국내에서도 일부 야구장이 외야 뒤편의 좌석을 제거하고 잔디밭을 조성,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체험을 제공했다. 보통 야구장의 외야석은 선수들과 경기 내용을 잘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다른 구역들에 비해 저렴하다. 지난 14일 찾은 수원 케이티위즈파크도 외야 자유석 가격을 1인당 주중 8천원(주말 9천원)으로 저렴하다.하지만 싸다고 얕볼 필요는 없다. 캠핑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구비해 놓고 색다른 야구 관람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은 물론 친구, 연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텐트 앞에서 자신들이 갖고 온 도시락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또 다른 야구 문화를 만들고 있다.연인들은 데이트장소로 이 곳을 자주 찾는다. 주로 영화관이나 고궁, 카페에 앉아 즐기는 연인보다 이 곳에서 야구 경기를 보면서 둘 만의 공간을 만든다. 가족들도 캠핑 이상의 여가를 즐긴다. 평소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가족들이지만, 야구장에 나와 음식을 나눠 먹으며 못 다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박진수(33)씨는 “가족들과는 처음 야구장에 왔는데 아이가 상당히 좋아한다”면서 “외야석이 잔디로 돼 있어 가족들과 와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이 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앞으로도 자주 찾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재학 딸기 주스·야신 고로케각구단 개성 살린 ‘먹거리 승부’수원 케이티위즈파크와 SK 행복드림구장 이외에도 각 프로야구장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야구팬들을 모은다.부산 사직구장에선 TGIF 스테이크 도시락이 인기다. 1만원에 파는 이 도시락은 인기가 많아 1,2회가 지나면 품절될 정도다. 마산에선 맥주가 거꾸로 올라오는 ‘디비어’와 NC 투수 이재학의 별명을 딴 ‘이재학 딸기 주스’도 NC팬들로부터 인기다. 디비어 잔 밑에 있는 ‘D’‘I’‘N’‘O’‘S’자석을 모으면 맥주 1잔이 무료다.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선 김성근 감독의 별명을 딴 ‘야신 고로케’가 있다. 야채가 신선하다는 뜻으로 치즈, 잡채 고로케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선 상추 튀김이 별미다. 상추에 튀김을 싸먹는 것을 말하는데 광주의 먹거리를 야구장에서도 맛볼 수 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외야자유석을 찾은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비큐 존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나누며 야구를 관람하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

2015-06-18 이원근

[금요와이드·야구팬들을 위한 ‘야구장 투어’] 이맛에 간다

가족·동료·연인과 함께 스트레스 해소피자·바비큐·김밥 ‘구장 먹거리’ 푸짐나만의 패션자랑·응원전 ‘또다른 재미’이번 주말 야구장에 한 번 나가보면 어떨까.가까운 공원이나 영화관 등도 좋지만, 이번 주말에는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 투어도 괜찮을 듯하다. 파란 하늘에 넘실대는 구름과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야구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팀 또는 선수를 목청껏 외쳐본다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한꺼번에 날아갈 것이다.특히 9회말 2아웃,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에서 짜릿한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프로야구를 현장에서 지켜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프로야구는 국내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다. 이는 직장인 뿐 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경기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가족·직장 동료·친구·연인 등이 함께 야구장을 가고 싶어도 즐길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팬들을 위해 이번 주 금요와이드가 준비됐다. 프로야구장에서의 특색있는 먹거리와 야구 문화를 즐겨보자.야구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응원할 팀을 정하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올해 kt wiz가 참가해 10개 구단이 존재한다. 서울 지역은 LG 트윈스·두산 베어스·넥센 히어로즈가 있으며, 인천 지역은 SK 와이번스, 경기도 수원 지역은 kt wiz, 충남 한화 이글스, 대구 삼성 라이온즈, 부산 롯데 자이언츠, 광주 KIA 타이거즈, 창원 NC 다이노스 등이 있다.내가 응원할 팀과 야구장 표를 구했다면, 이번에는 ‘먹거리 문화’를 즐겨야 한다. 야구는 1~9회까지 각 9회의 경기를 두 팀이 돌아가면서 공격과 수비를 진행하기 때문에 3시간 이상의 경기 시간이 걸린다. 이런 긴 시간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그렇다면 야구장에선 어떤 음식이 좋을까. 호프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치맥(치킨+맥주)’이 단연 일품이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 동안 쌓인 피로도 풀고, 바삭한 치킨을 뜯다 보면 야구 보는 재미가 쏠쏠해 진다. 또 각 야구장에는 만두, 햄버거, 피자, 주먹밥, 김밥에 이어 바비큐까지 다양한 먹거리들이 준비돼 있다. 원하는 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재미 또한 야구장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배도 부르면 즐길거리를 찾아보자. 국내 프로야구는 구단별 야구 문화가 다르다. 각 구단 치어리더들의 다채로운 응원전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고유의 응원가를 따라부르면 어느새 선수와 한 마음이 된다. 또 일부 팬들은 다양한 액세서리와 응원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패션을 완성, 야구장 문화를 즐긴다.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야구장.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쌓였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는 야구장으로 떠나보자.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1982년 출범 당시 삼성, 해태, 롯데, OB, MBC, 삼미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가 올해 KT위즈의 가세로 10개 구단 체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700만 관중을 동원하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 연인, 친구끼리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대표 먹거리인 치킨을 즐기는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야구장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1982년 출범 당시 삼성, 해태, 롯데, OB, MBC, 삼미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가 올해 KT위즈의 가세로 10개 구단 체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700만 관중을 동원하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 연인, 친구끼리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다양한 응원 도구를 이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연출하는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야구장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1982년 출범 당시 삼성, 해태, 롯데, OB, MBC, 삼미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가 올해 KT위즈의 가세로 10개 구단 체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700만 관중을 동원하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 연인, 친구끼리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다양한 응원 도구를 이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연출하는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야구장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1982년 출범 당시 삼성, 해태, 롯데, OB, MBC, 삼미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가 올해 KT위즈의 가세로 10개 구단 체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700만 관중을 동원하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 연인, 친구끼리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야구장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1982년 출범 당시 삼성, 해태, 롯데, OB, MBC, 삼미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가 올해 KT위즈의 가세로 10개 구단 체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700만 관중을 동원하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끼리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다채로운 방법으로 야구장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2015-06-18 신창윤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한국 속 두 개의 중국… 두 개의 얼굴

한국 관광지 vs 중국인 민낯 ‘다른 풍경’요우커 관심·제노포비아 해결… 과제로익숙한 음식 새로운 공간 색다른 시간… 인천 차이나타운낯선 음식과 언어 이방인의 풍경… 수원 안산 중국인 거리두 개의 차이나, 두 개의 타운#11일 오후 1시 인천 차이나타운. 좁은 골목 양쪽으로 높게 솟은 붉은색 건물들이 빽빽했다. 공화춘, 자금성 등 어디선가 한번쯤 봤음직한 중화요릿집 간판들이 시선을 끌었다. 삼국지 속 인물들이 그려진 벽화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가족·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메르스 공포 속에서도 식당마다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점심식사를 하려는 발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거리에서 중국어는 잘 들리지 않았다. 대학생 강모(25)씨는 “이색적인 풍경이 신기하고 짜장면도 맛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아 중국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지난 10일 오후 10시 수원 고등동 갓매산삼거리. 어둠이 내린 도로 양 옆으로 羊肉串(양꼬치), 中國食品(중국식품) 등이 적힌 간판들이 붉은 빛을 뿜어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중국어로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양꼬치 식당은 쉽게 눈에 띄었지만 짜장면을 파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양꼬치 집 테이블 위에는 칭따오 맥주와 소주 병이 함께 어우러졌다. “이곳 중국인들은 양꼬치에 주로 맥주를, 한국 사람들은 소주를 찾는다”는게 상인의 귀띔이다. “양꼬치가 예전보다는 대중화돼 주말에는 한국인들도 오지만 평일엔 대부분 중국인 손님들”이란다.붉은색 건물에 한자 간판. 겉모습은 얼핏 비슷하지만 한 쪽 마을(town)엔 짜장면, 다른 마을엔 양꼬치가 있다. ‘중국에는 없는’ 짜장면이 중화요리의 대명사격으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중국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인 양꼬치는 아직 한국인들에게 다소 ‘낯선’ 음식이다. 두 개의 차이나타운은 마을을 대표하는 음식들과 어쩐지 닮은 모습이다. 청나라 말 터를 옮겨온 화교들의 음식점 몇 곳에서 시작한 인천 차이나타운이 지자체의 손을 거쳐 한국인들의 관광지로 거듭난 곳이라면, 수원 고등동은 코리안드림을 품은 중국인들의 생활이 날 것 그대로 묻어있어 한국인들은 발 들이기 머뭇거리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한국 속 두 개의 중국은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선 익숙한 음식을 새로운 공간에서 맛보며 가족·연인·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수원·안산 등의 중국인 거리에선 낯선 음식과 언어 사이에서 잠시나마 이방인이 된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과제도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요우커 1천만 시대를 앞둔 지금 화교는 줄고 중국 관광객을 사로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등동 등의 중국인 거리는 외국인 범죄가 이슈화될 때마다 한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기곤 했다. 지난 1일 한·중 FTA 정식 서명으로 한·중 관계엔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신흥부국’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정작 우리 안의 중국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두 개의 차이나, 두 개의 타운을 조명하는 이유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며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화교 중산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삼국지 속 인물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5-06-11 강기정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중국인 19만명의 안식처 경기도

일자리 찾아 수원·안산 등 둥지샤브샤브 ‘훠궈’ 한국인에 입소문안산시 원곡본동 872의 3. 영화 ‘황해’의 주인공 구남이 한국에 돈 벌러 온 아내를 찾던 곳이다. 구남의 뒤로 스쳐 지나간 영화 속 풍경은 일거리를 찾기 위해 모여든 중국인들을 위한 원곡동(원곡본동, 원곡1~2동) 식당과 가게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사는 동네답게 세계 각지의 문화가 뒤섞인 곳이지만, 그 중심가에는 한자로 쓰인 붉은색 간판들이 늘어서 있다.경기도는 지난 3월 기준 중국인이 19만6천923명을 기록할 정도로 전국 광역단체 중 중국인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중국인들은 공단이 있거나 서울과 가까운 안산 단원구와 시흥, 수원 팔달구에 집중돼있는데, 이들 지역은 자연스레 ‘중국인 거리’로 모습을 바꿨다. 중국인들 사이에선 정겨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선 색다른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대표 음식은 단연 양꼬치다. 서울 대학가 주변과 이태원 등에서 양꼬치의 이색적인 맛에 반한 이들이 차츰 중국인 거리로 향하고 있는데, 특히 원곡동의 양꼬치는 국내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중국 현지에서 즐겨 먹는 샤브샤브 ‘훠궈’ 역시 중국인 거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다문화 마을’인 안산 원곡동과 달리, 시흥 정왕동(정왕본동, 정왕1~4동)과 수원 고등동은 인근 전통시장과 더불어 조금씩 눈길을 끌고 있다. 전국에서 세번째로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시흥은 정왕시장 쪽에 중국인들을 위한 가게와 음식점들이 밀집해있는데, 원곡동보다 복잡하지 않아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글 =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중국인 거리로 자리 잡은 수원시 고등동 갓매산삼거리에서는 양꼬치 등 다양한 중국음식을 맛볼수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15-06-11 강기정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수원시 고등동 중국인 거리

조선족 범죄 부정적 인식깨야25년전 수원 고등동에 살았던 김모(53·여)씨는 최근 우연히 이곳을 다시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젊은 직장인들이 모여 살던 작은 동네가 어느새 ‘중국인 거리’가 돼 있었기 때문. 한 슈퍼마켓 주인은 “10년전부터 중국 음식점이 하나둘 생기더니 3~4년 전쯤에 비슷한 가게가 곳곳에 들어서 딴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수원 고등동의 변화상은 중국 동포들의 한국 진출 역사와 맞물려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산업연수생 자격 등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 동포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서울 구로와 영등포, 안산·시흥 등 공단 주변에 모여 들었고, 2007년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방문취업제 실시 후 집값이 좀 더 싸고 서울로 가기 편한 수원역 주변 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리도 모습이 바뀌어, 양꼬치·우육탕 등 중국인에게 친숙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자리를 잡았다. 중국 노래방과 술집 등은 물론 환전소와 식료품점 등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도 쉽게 눈에 띈다.‘코리안드림’은 불법체류와 외국인 범죄라는 어긋난 형태로 나타나,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중국인 중 7.8%가 불법체류자다. 여기에 오원춘·박춘풍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중국인 거리엔 한국인들의 제노포비아가 집중되기도 했다. 중국인 거리가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지자체와 주민들이 스스로 상생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성수동 공단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들의 거주지였던 서울 자양동은 2011년 동일로 18길이 ‘양꼬치 거리’로 지정되며 변화의 물꼬를 텄다./글 =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2015-06-11 강기정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일본 ‘브라질타운’

1990년 취업 허용에 급증포르투갈어 간판들 즐비우리나라에 수원 고등동 같은 ‘중국인 거리’가 있다면 일본에는 ‘브라질타운’이 있다. 1990년대부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온 일본계 브라질인들(일계인)이 일본 군마현 오이즈미초에 브라질타운을 형성했다. 중국인 거리에서 한자 간판과 양꼬치 판매점 등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브라질타운에서도 브라질 현지 음식점과 포르투갈어 간판을 쉽게 만날 수 있다.전남대 임영언·김재기 교수가 지난 2011년 발표한 논문 ‘일계인 디아스포라의 귀환과 브라질타운 형성에 관한 연구-군마겐 오이즈미초 일계 브라질인타운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일본인들이 남미로 이주했는데, 1990년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일계인 2·3세의 취업을 허용하면서 브라질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일계인들의 유입이 급격히 늘었다. 이들은 주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밀집지역 오이즈미초로 몰렸다. 현재 오이즈미초는 일본에서 가장 외국인이 많은 지역으로, 지난 2011년 기준 이곳에 사는 외국인의 71.6%는 일계인이다. 자연스레 일계인들을 위한 브라질타운이 오이즈미초에 형성됐다. /글 =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2015-06-11 강기정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매해 400여만명 찾는 인천 차이나타운

공갈빵·화덕만두 먹거리 군침 중국풍 건물 이색 데이트 코스1884년 선린동 일대에 중국 조계지(조선 말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던 치외법권 구역)가 들어선 후 청나라 영사관을 중심으로 화교들이 본격 진출하면서 탄생한 인천 차이나타운은 그동안 한국인들에게 ‘작은 중국’으로 인식돼왔다. 짜장면이 처음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짜장면의 고향’답게 차이나타운에는 많은 중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짜장면을 처음 만든 곳으로 알려진 그 옛날 ‘공화춘’의 이름을 딴 곳부터, 원조 ‘공화춘’ 사장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곳까지 각양각색의 중화요릿집들이 ‘짜장면 거리’를 이루고 있다. 평일에도 점심시간만 되면 곳곳에서 짜장면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려는 이들이 몰려든다. 중국 춘장에 캐러맬을 혼합한 오리지날 한국식 짜장면과, 오이채·계란 프라이 등을 곁들여 먹는 짜장면, 대만·중국 현지에서 노하우를 익혔다는 하얀 짜장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2012년에는 옛 공화춘 건물을 개조해 전국 최초로 ‘짜장면 박물관’이 문을 열기도 했다.우리네 송편처럼 중국에서 추석 때 먹는 과자인 월병과 중국식 호떡인 공갈빵 역시 차이나타운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다. 대만 출신 화교들이 많아 대만의 대표 간식인 펑리수도 만나볼 수 있다. 월병 안에 팥소나 말린 과일을 넣었다면, 펑리수에는 파인애플 잼을 넣은게 특징이다. 커다란 화덕에서 구워내 ‘화덕만두’라고도 불리는 옹기병과 밀가루 반죽 안에 팥과 크림치즈, 초코 등의 소를 넣어 굽는 빵인 홍두병 역시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이색적인 먹을거리와 중국풍 건물들이 어우러져,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최근에는 동화 속 내용을 벽화에 담은 ‘동화마을’이 바로 옆 송월동에 조성되며 연인과 가족들 사이에서 새로운 데이트 코스, 가까운 가족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천 중구에 따르면 지난해 차이나타운을 찾은 관광객은 410만명에 달한다./글 =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중국에는 없는 짜장면의 고향인 인천 차이나타운은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점심식사를 하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짜장면 박물관.

2015-06-11 강기정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세계속의 차이나타운

1840년대 교역 통해 성장美 샌프란시스코 등 유명1842년 청나라는 아편전쟁을 끝내기 위해 영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영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등 서양 국가들과의 교역이 확대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터를 옮긴 중국인들이 하나둘 모여 꾸린 마을이 차이나타운이다. 서구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요코하마가 유명하다.전세계 차이나타운 중 가장 규모가 큰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1850년부터 중국 광둥에서 이민온 화교들이 몰린 곳으로, 현재 4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화교들을 위한 상점이나 학교·공공기관·은행 등이 잘 갖춰져있고, 식료품 등이 저렴해 화교뿐 아니라 많은 이주민들이 오가며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관광 코스 중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다.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1859년 요코하마가 개항할 때 유럽 상인들이 중국인 통역관을 대거 들여왔는데 이 통역관들의 거주지가 시초가 됐다. 이후 일본에 진출한 중국 상인들이 학교와 상점을 짓고, 중국인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차이나타운이 됐다. 이곳 역시 요코하마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글 =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

2015-06-11 강기정

[경기·인천 속 작은 중국]얻을 것 없는 요우커들, 서울로 유턴

11일 찾은 차이나타운에는 짜장면을 먹고 선물용 월병을 손에 든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카페리로 인천항에 들어오는 중국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아오긴 하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처럼 여행 정보를 얻거나 하루쯤 고국 음식을 맛보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화교보다 지자체가 중심이 돼 관광지로 개발한 것이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데, 인천을 비롯한 한국 차이나타운이 정작 요우커들에겐 외면받는 이유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4년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 중 4.4%만 인천을 방문했고, 이중 63.4%만 차이나타운에 갔다.그동안 전국 지자체가 요우커를 겨냥해 추진한 차이나타운 개발 사업들은 줄줄이 무산됐다. 지난 2004년 고양시 대화동 6만9천여㎡에 조성하려던 고양 차이나타운 사업은 개발 주체의 자금난으로 5년만에 중단됐고, 서울시 역시 화교들이 모여 살던 연희동·연남동 일대를 중국문화특화거리로 조성하려다 주민반대로 계획을 철회했다.차이나타운이 한국인들뿐 아니라 요우커들에게도 ‘한국 속 작은 중국’으로 거듭나려면 중국 관광객들의 실질적 여행 거점이 돼야 한다. ‘화교 마을’ 서울 연남동이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화교들의 투자로 최근 몇년새 요우커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된 게 한 예다. 이곳엔 화장품과 인삼 등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물품을 한번에 구매할 수 있는 전문 면세점과 중국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노점들이 몰려있다. 여기에 홍대 앞 음식점·카페들이 하나둘 자리를 옮겨오면서 ‘강북의 가로수길’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글 =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2015-06-11 강기정

[금요와이드·국립묘지를 가다] 현충원 찾는 다양한 사람들

한국·베트남전쟁 사망자 친척 추모방문‘자식에 손주까지’ 대가족 50년째 찾기도“보고싶은 사람인데, 자주못와 미안하지”국립묘지에는 오늘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산화한 영령이, 또 그들을 그리는 이들이 찾아온다. 현충일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달 31일 서울 동작동의 국립서울현충원. 매일 오후 2시에 열리는 봉안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소방상이유공자 1명과 군경유공자 1명, 한국전쟁 참전용사 4명의 봉안식이었다. 유골이 봉안식장에 도착하자 경례와 함께 분향, 조총 발사와 묵념으로 조용히 식은 진행됐다. 검은 상복을 입은 유족들이 고요하게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유골이 안치되는 충혼당의 한 관계자는 “하루 평균 3~4명의 봉안식이 거행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마지막 길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고 있다”고 나지막히 말했다.50년째 자식도 없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삼촌의 묘를 찾는 예순살의 조카는 묘비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선양(63)씨의 삼촌 고(故) 이한명씨는 한국전쟁 당시 봉화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삼촌이지만, 자손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한 아버지가 꼭 삼촌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해 매년 현충일마다 찾고 있다. 이씨는 “20살 때 죽은 삼촌을 늘 그리워하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며 “우리 세대의 형제들은 그래도 삼촌을 기억하고 때마다 묘지에 찾아왔지만, 이제 내가 가고 나면 가족들에게 삼촌이 잊혀질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30년째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형을 그리워하며 현충원을 찾는 동생도 있다. 장지일(64)씨는 매년 6월이 되면 제사음식을 준비해 형의 묘소를 찾는다. 형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3일 전에 전사했다. 장씨는 “4남매 중 돌아가신 형님이 특히 나를 아꼈다. 월남 가는 날 큰 형님과 내가 말렸지만,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며 마지막 모습을 회상했다.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대를 이어 현충원을 찾는 가족도 눈에 띄었다. 한귀자(67·여), 귀석(65) 남매는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위패를 보기 위해 50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오고 있다. 남매의 아버지는 시신조차 찾지 못해 현충탑 안에 위패만 봉안돼 있다. 이 날도 열댓명이 넘는 대가족이 아버지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귀석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돌봐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며 “어린 손주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아버지와 같은 호국선열들과 우리 역사를 잊지 않고 계속 존경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지키는 경비원 홍기원씨는 매주 화요일, 아주 특별한 손님을 맞는다. 홍씨는 “화요일마다 이희호 여사가 묘소를 방문해 기도를 한다”며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고령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주 거르지 않고 오셔서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홍씨가 어느 날 휠체어에 의지해 묘소를 찾은 이 여사에게 “매주 이렇게 찾아오시느라 고생하신다”고 말을 건넸다. 이 여사의 대답은 이랬다. “보고싶은 사람인데, 자주 못와 미안하지….” /공지영·유은총기자 jyg@kyeongin.com▲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4일 오후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시민들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분향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월남전에 참전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조목연(72)씨의 영결식에서 국군의장대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형 장지연씨의 기일에 맞춰 30년째 전남 순천에서 서울 현충원을 찾는 동생 지일(64)씨 부부.▲ 한귀자(67), 한귀석(65) 남매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아버지 한명화씨의 위패를 참배하기 위해 자녀를 비롯해 손자·손녀와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

2015-06-04 공지영·유은총

[금요와이드·국립묘지를 가다] 권율정 대전현충원장 인터뷰

위인들 묘역 현장답사로 보훈교육야생화 단지·생태공원 힐링나들이“지금 현충원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곳으로 남을지, 산 자를 위한 곳으로 다시 태어날지…. 우리는 산 자를 위한 현충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권율정(53) 국립대전현충원장은 국립묘지가 역사와 정치이념 논란으로 점철된 현재를 벗어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산 교육의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해 미국의 국립묘지 140여 곳은 미국인 모두가 그 곳에 안장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성소이자 정치적 사회적으로 갈라진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의 광장”이라며 “현충원도 안장과 참배를 넘어 사회통합을 이루는 성스러운 장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국립묘지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피력했다. 그는 “일제 강점 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유공자부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 유공자를 비롯해 최근의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 용사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지켜낸 족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는 현충원 뿐”이라며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국립묘지”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유가족들 조차 찾지 않는 현충원의 현실을 바라보면 암담하다. 권 원장은 국민들이 언제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국립묘지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실제로 대전 국립현충원은 ‘열린 현충원, 밝은 현충원’을 가치지향점으로 삼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초등학생에서 노인층까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역사교육과 함께 직접 역사 속에서 활약했던 인물의 묘와 현장을 답사하는 등의 보훈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일반인들이 매월 정기적으로 묘비단장과 묘역정리에 참여하는 묘역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체험식 호국교육은 현충원을 찾는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권 원장은 한국전쟁으로 국한돼 있던 현충원 역사교육을 일제강점기 부터 최근까지 확대해 과거와 오늘날 사회를 연결하는 평생교육의 장으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교육 뿐 아니라 힐링의 장소로도 변모하고 있다. 현충원 내에 야생화 단지를 조성하고 보훈 산책로를 만들어 생태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대전 현충원은 나들이 장소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권 원장은 “우리의 노력은 후손들에게 ‘살아 있는 현충원’을 전하는 첫걸음”이라며 “지금 현충원을 바라보는 논란을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극복할 과제로 삼아야 국립묘지의 의미를 세울 수 있다”고 밝혔다. /유은총기자 yooec86@kyeongin.com▲ 권율정 대전현충원장

2015-06-04 유은총

[금요와이드·국립묘지를 가다] 후손들에 잊혀진 현충원

국가추모행사, 정치권 싸움장으로 변질일반인은 물론 직계가족까지 찾지 않아대학생 표본설문… 29%만 “가본적 있다”국립묘지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응축된 역사교실이다.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4·19, 5·18 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던진 영혼들의 엄숙한 도열은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웅변한다. 국난 극복의 영감이 충만한 곳, 모든 갈등을 소멸시키는 민족 공동체 의식의 발원이다. 하지만 현실의 국립묘지는 해원과 상생의 상징과 거리가 멀다.이희완 소령은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계가족들조차 찾지 않는 황량한 곳이 됐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안식을 취하는 곳이다. 지금보다 가치 있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한국전쟁 전사자 유가족은 자식도 없이 조국을 위해 전사한 삼촌의 묘를 찾아 “우리 가족들마저 삼촌을 잊어가고 있다. 국가와 사회는 이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조상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 같다”고 한탄했다.광복 70주년을 맞는 해다. 역사의 해석은 각각일 수 있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령 앞에서 대의를 모으지 못하는 우리는 너무나 부끄러운 후손은 아닌가.■산 자들의 당쟁에 수난받는 국립묘지 =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대한 앙금은 국립묘지를 수십년 째 괴롭히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들의 갈등은 봉합되지 못하고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5·18민주묘지는 수난받는 국립묘지의 대표격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정치권의 논란이 벌어졌다. 1997년 5·18 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2008년까지 행사에서 기념곡으로 불리던 이 노래는 정부 공식행사에 애국가 대신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보훈, 안보단체들의 반대로 8년째 정부와 정치권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올해도 결국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이 무산되면서 5월 단체와 유족, 5·18재단 등 관련 단체들은 국립묘지 공식 기념식에 불참, 5·18국립묘지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기념식을 진행하는 등 추모식이 양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지난 2월 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서울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야당의 수장으로 선출된 후 첫 행보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차례로 참배한 것. 야당 지도부가 당선 인사로 이 두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 그의 행보는 비상한 관심과 함께 그 해석을 두고 논란을 빚었다. 급기야 야당 인사들조차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로 대한민국이 바뀌겠냐”며 비아냥댔고 “박정희 시대에 대한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국립묘지는 갈등의 현장? = 현재 정부에서 공식 지정하고 관리하는 국립묘지는 총 8곳. 국립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 4·19민주묘지, 3·15민주묘지, 5·18민주묘지와 함께 국립영천호국원, 임실호국원, 이천호국원 등이다.우리는 국립묘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달 29일 경기도내 대학생 50명을 대상으로 표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곳의 국립묘지 중 알고 있는 국립묘지 수가 2곳 이하인 응답자가 전체의 95.4%에 달했다. 국립묘지를 실제로 방문해 본 학생도 전체의 29%에 불과했다. 방문의 이유도 대부분 초·중·고등학교 시절 단체 견학이나 봉사활동 성적을 받기 위해 방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국립묘지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질문에서도 학생들 상당수가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사회가 국립묘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3.7%가 ‘관심이 없다’ ‘정치적인 장소로 전락했다’등 부정적으로 응답했다.또한 국립묘지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서는 ‘정치적인 장소가 아닌 참배의 장소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국립묘지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젊은 층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장소로 변해야 한다’는 등의 희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지영·유은총기자 jyg@kyeongin.com▲ 4일 오후 이천시 설성면 국립이천호국원 6·25 참전용사 묘역을 찾은 한 유가족이 조국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위훈을 기리며 헌화하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2015-06-04 공지영·유은총

[금요와이드·국립묘지를 가다] ‘국립묘지 갈등’ 전문가 분석

국립묘지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과 관련 전문가들은 현충원이 제대로 된 과거 청산과 안장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점을 지적했다.김준혁(48)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제 1 국립묘지인 현충원은 본래 한국전쟁 이후 전사자를 안장하는 장소로 시작됐다”며 “하지만 광복 전후 완벽한 일제청산이 실패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친일 군·경들이 전쟁에 참전, 전사해 국립묘지에 안장되면서 현충원을 둘러싼 역사적 논란이 점화됐다”고 설명했다. 친일과 반공의 과공이 교차하는 역사적 교집합에서 균열이 생겼다는 얘기다.이런 논란이 국가적, 국민적 합의로 종결되지 못한 채 수십년 지속되면서 결국 국립묘지 안장자의 애국심에 대한 의심으로 번졌고, 국립묘지는 자연스럽게 ‘정치다툼의 장’, ‘고리타분한 공동묘지’ 쯤으로 취급되며 젊은 층에게 외면받게 됐다는 것이다. 노명우(44)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립묘지를 둘러싼 부정적 시각은 젊은 세대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겪는 전반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위로부터 강요되는 애국심이 문제”라며 “우리 국민에게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는 존재라기보다 시민에게 의무만 부과하는 존재로 군림해왔다. 국립묘지에 대한 무관심은 젊은층 뿐 아니라 평범한 모든 사람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이들은 국립묘지가 올바른 역사적 잣대와 미래상을 제시하는 사회통합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이 국립묘지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사회적 통합과 화해의 상징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나오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미래 공동체를 위해 보수와 진보 모두의 상식에서 용인되는 사람을 안장해 그들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은총기자 yooec86@kyeongin.com

2015-06-04 유은총

[금요와이드·국립묘지를 가다] 제2 연평해전 참전 이희완 소령

월드컵 함성노린 ‘北의 포성’ 젊은장병 목숨 앗아간 31분 전투국립묘지는 소임다한 군인 안식처… 묘비 수만큼 조국은 건재애국, 여기 깃들다 지난달 22일 국립대전현충원. 내내 유쾌했던 소령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미 각이 잘 잡힌 군복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모자를 반듯하게 매만졌다. 현충원 후방에 위치한 ‘제2 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을 안내하던 이희완(39) 소령은 묘역을 알리는 현수막이 시야에 들어오자 말을 멈췄다. 수많은 묘비가 자로 잰 듯 일렬로 쭉 늘어선 모습을 대면한 취재진도 잠시 말을 잃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장함에 가슴이 턱 막혀왔다.고(故)윤영하 소령의 묘역 앞에 그가 섰다. 말없이 경례를 한 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묘역을 바라보며 이 소령은 2002년 6월 29일, 뼈아픈 기억을 끄집어 냈다. 참수리 357호 부정장이었던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 해 6월엔 이상하리만큼 북한 함정과 대치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아마도 우리가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다는 걸 북한이 노린 것 같습니다. 그 날도 아침부터 작은 도발을 시작했고 결국 북한 함정 2척이 동시에 북방한계선인 NLL을 침범하면서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31분간 이어진 전투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북한 함정의 무력 도발에서 대한민국 바다를 지켜낸 대가로 젊은 장병들은 꽃 보다 붉은 선혈을 조국의 바다에 뿌려야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진두지휘하던 윤영하 정장님이 뒤로 쓰러지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정장님을 구하러 달려갔는데 정장님을 1m남짓 앞두고 저 역시 쓰러졌습니다. 포를 맞아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이 떨리는데 미동도 없는 정장님을 보니 일단 지휘를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부하들에게 몸을 은폐할 수 있는 공간으로 피하라고 지시하고 함수(배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전속력을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구조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포에 맞아 함정 곳곳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공간이 좁은 함정의 특성상 모든 사람을 동시에 구조하는 일은 어려웠다. 조타장이었던 한상국 중사는 결국 구조되지 못했고, 배를 인양한 뒤 시신을 건져야 했다.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그의 발목을 잡을 만한데, 그는 다시 군복을 입었다. 성치 못한 두 다리도 그의 군인정신을 지배하지 못했다. 이 소령은 국립묘지를 자주 간다. 그 곳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주는 전율이 좋고, 전투를 함께 치른 전우들과 소주 한잔을 하기도 좋아서다. 초등학생이 된 자녀들은 아빠와 함께 오는 국립묘지를 좋아한다. 가끔 아이들은 그에게 “아빠,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라고 묻는다. 아이의 천진한 물음에 묘지를 둘러보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묘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분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묘비 수만큼 대한민국도 그 분들 덕에 건재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국립묘지에 갈 것입니다. 제게 국립묘지는 소임을 다한 참군인의 안식처입니다.”현충일이 다가온다. 이날 현충원에는 성묘 온 몇몇 가족들과 장례를 막 마치고 국립묘지를 찾은 유가족들 만이 묘비를 지켰다. 끝도 없이 도열된 묘비들이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국립묘지는 어떤 의미인가.”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 부정장이었던 이희완 소령이 국립대전현충원 고(故) 윤영하 소령의 묘역 앞에서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5-06-04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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