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말이 되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몸·영혼 바뀌는 체인지담·현대판 귀신담…노골적 판타지 '황당무계식' 시청률에 매몰미드·일드 베낀 '비현실' 다뤄 안타깝기만은유하고 보듬고 해학있는 작품 만들어야한국드라마는 끝없이 비현실로 치닫고 있다. 옛날엔 보통사람의 현실을 담백하게 다룬 드라마도 꽤 했다. 연예인들이 뭔가를 하는 소위 '예능'프로, 일반인의 삶을 보여주는 '리얼다큐',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 나오는 '리얼예능'. 실상은 연출이거나 '악마의 편집'이더라도 그 '리얼'을 표방하는 프로들이 득세하는 것에 비례해, 드라마는 '현실'로부터 멀어졌다. 몸이나 영혼이 바뀌는 체인지담, 시간·공간 이동담, 현대판 귀신담, 초능력 히어로담…. 이런 노골적인 판타지에 시청자는 익숙해졌다. 저게 말이 되냐고 따지는 이는 드물다. 그 어떤 판타지도 없으면 시청률이 바닥이다. 드라마는 으레 황당무계한 것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듯하다. 드라마의 만화화라고 해야 할까.물론 괴력난신(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을 이르는 말)이 전혀 없는 드라마도 있다. 그렇지만 그 '현실적인' 드라마도 판타지다. 비극적·엽기적 출생의 비밀, 갑작스러운 중병의 발발, 못된 부자와 착한 서민의 운명적인 로맨스, 이중삼중사중의 짝짓기 연애, 정의로운 '사'들의 징치…. 전통적인 설정만으로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니, 5대 강력범죄가 난무한다. 만약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라면, 한국은 폭력·절도·성범죄·강도·살인이 비일비재하는 무법 천국이나 다름없다. 재벌은 사업에 힘쓰기는커녕 끔찍한 사고나 저지르고, 공권력은 범죄자와 결탁되어 있고, 그래서 범죄는 은폐되기 십상이고, '사'들도 거의 다 악당이고, 흙과 물에 억울한 희생자가 묻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범죄가 발생 중이다. 정의로운 영웅의 목숨을 건 활약이 없다면 구제불능이다.한국이 얼마나 정의롭고 안전한데. 한국인이 얼마나 훌륭하고 이타적인데. 한국재벌이 얼마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 드라마 만든 사람들, 애국심이 없네. 저런 사상이 의심스러운 드라마를 만들다니.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해서 발칵 뒤집히고는 하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을 가지고, 만날 일어나는 것처럼 호도하다니 불순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거짓말인 걸 알고 보는 괴력난신류보다 강력범죄드라마가 더 충격적인 판타지일 테다.전혀 판타지 같지 않은 드라마도 판타지일 수도 있다. 훌륭한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낭만닥터 김사부'와 '병원선', 지구대 경찰의 애환을 그린 '라이브', 감옥도 살만한 곳이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어안이 벙벙한 '슬기로운 감빵생활'. 근래에 참 보기 드문 '리얼한' 드라마들이다. 하지만 일선 의료인과 지구대 경찰과 교도소 경험자에게 그 드라마들은 얼마나 사실적일까? 어쩌면 예능과 다큐의 '리얼'도 조작된 드라마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리얼'이 괴력난신 판타지보다 어처구니없을 수 있다.판타지의 극한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최근 방영 중이다.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리고 대통령 포함 정부 요인 수백 명을 한꺼번에 죽인 '60일, 지정생존자'. 알다시피 미드 '지정생존자'를 그대로 베꼈다. 아무리 베꼈다지만, 한국에서 국회의사당을 날리다니! 미드에서는 총질이 자유로운 나라여서 그런지 정말 많이 죽는다. 한드에서는 웬만하면 죽지 않는다. 귀신인지 좀비인지는 미드처럼 죽여도, 감히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못했다. 그런데 '60일, 지정생존자'는 갑자기 수백 명을 죽여버린 것이다. 미드 수준을 한 방에 따라잡기라도 하겠다는 듯이.드라마의 '비현실'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미드에서도 베꼈지만, 일드에서도 많이 베꼈기 때문이다. 일본만화, 일본소설을 대놓고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도 수두룩하고, 한드에 일본에서 빌려온 판타지가 가득하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비현실'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닐 테다. 시청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니, 판타지 없는 드라마는 이제 불가능하다. 하지만 왜 꼭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만 애쓰는 걸까. 판타지라도 은유하고 풍자하고 보듬고 해학이 있고 의미가 있는, '말이 되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7-18 김종광

[춘추칼럼]청년창업과 도시재생

'청년창업가게 1호점' 지역변화 새싹 역할'갬성' 자극하는 거리풍경 바꾸는 것 중요오랜 문제점 파악후 해결 '지역재생' 필수많은 사람들 다양한 영역 활동 '변신 가능'최근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지역을 바꾸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서 유흥업소 폐업 공간에 '청년창업가게'를 오픈하는 것이다. 출발은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었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인근에 흔히 '맥양집'(맥주와 양주를 주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이라는 유흥업소가 밀집돼 있으니 유해환경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이에 대한 행정의 대응은 강력한 단속뿐만 아니라 주민협의체 등과 지속적인 협력이었다. 덕분에 업소 1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결과는 민원제기와 단속의 효과로 일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북구에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의 출구 전략을 고민했다. 단속 부서인 보건소와 성북문화재단이 함께 청년문화와 청년창업이라는 화두를 갖고 지역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폐업으로 빈 가게를 청년창업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행정안전부의 '청년창업공간만들기'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마련해서 3개의 청년팀을 선발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 십 년 된 건물은 구조적 문제와 복잡한 소유권, 법적 문제 등을 안고 있었으며 건물주를 설득해서 임대차계약을 맺는 일 등은 오롯이 실무자의 몫이었다.이렇게 수 개 월간의 노력을 기울인 탓에, 지난 7월 초 '낭만덮밥'이라는 청년가게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오픈식이 있던 날에는 그 주변의 왕복 800m 거리에 90개 부스가 참여하는 '두근두근 별길마켓'이라는 행사를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제공했다. 성인 대상의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야간에는 일반인들의 왕래가 드물어 동네상권은 활기를 띨 수 없었다. 휴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 1만5천여명의 주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은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주민들은 일시적인 변화 속에서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청년창업가게 1호점'은 지역변화의 새싹과 같다. 새싹이 자라나 나무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새싹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바꾸는 일은 공간과 거리를 바꾸는 일이자, 또한 '풍경'을 바꾸는 일이다. 도시 공간과 거리는 '계획'으로 바뀌지 않는다. 도로를 새롭게 포장하거나 가로등을 교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공간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거리를 찾아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찾기도 하지만,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면서 일종의 '갬성'을 느낄 수 있을 때 거리를 찾아온다. 비록 대단한 계획이나 예산,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재생'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오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는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다. 막대한 예산과 사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례들이 '도시재생'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이야기한다. 변화는 어떤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수많은 사건들이 축적될 때 변화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몇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갈 때 변화가 가능하다. 지역을 바꾸는 일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때 가능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외면한 채 마치 어떤 단면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의 실험은 그 복잡성을 인정하면서 지역공동체와 상생하는 청년창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곧 말로만, 계획서로만, 돈으로만 하는 도시재생이 아니라 진짜 도지재생, 지역재생을 상상하는 일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7-11 권경우

[춘추칼럼]왜 국내정치엔 과감한 상상력이 없는가?

정부, '비핵화 개념' 명확하지 않고 불분명'선 비핵화후 체제보장' 김정은 의지와 무관북·미정상 '판문점 깜짝 회동' 세계가 감동문대통령도 황교안 대표 만나 현안 논의해야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회동한 것은 분명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처럼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청와대에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째, 현 정부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과 목표는 무엇인가? 통상 정책은 개념에서 시작한다. 개념이 명확하고 정확해야 정책 목표가 분명해지고 국민 소통이 원활해진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개념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면 목표는 흔들리고 정책 효과성은 보장되지 않으며 정책을 둘러싼 정치 갈등은 심화된다.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올해 1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선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공유된 합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것이 하노이 2차 북미 회담 결렬의 핵심 이유일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0월 12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최근 연합뉴스 및 세계 6대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는 다소 다른 견해를 밝혔다.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변 핵심 시설만 제거해도 북한 핵 능력은 거의 사라지고 비핵화가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처럼 들린다. 정부의 비핵화 개념이 흔들리고 핵무기와 핵 물질이 폐기되지 않은 채 비핵화 협상이 종료되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된다.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종전선언에서 시작해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 관심은 북한의 비핵화 조건이 아니라 북한이 문 대통령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충실히 따를지 여부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비핵화가 이뤄지는가? 남북 및 북미 정상 회담을 수차례 했다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정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할 경우에 미국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시종일관 체제를 보장하지 않으면 비핵화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선 비핵화 후 체제보장'과는 결이 다르다. 분명, 북한의 비핵화는 김정은 의지와는 상관없다. 따라서 정부는 북핵에 대해 감성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셋째, 문 대통령은 국내정치에서 왜 기존의 정치 문법을 파괴하는 과감한 상상력을 통해 협치와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문 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킨 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은 기존의 외교문법 속에서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그 상상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으며, 역사를 진전시킬 힘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00년 한 해 동안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청와대에서 세 번 단독 회동을 했다. 6월 17일에 6·15 남북정상회담을 설명하기 위해, 6월 24일에는 의사들이 파업하는 '의료대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회동했다. 10월 9일 회동에서는 경제·남북문제 등 시급한 국정현안 해결을 위해 공동협력하고 영수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하는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상생과 대화 정치 복원을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깜짝 회동을 해서 판문점 회동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민생경제, 남북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파격을 보일 때다. 그래야만 정치 협치도 복원되고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질 것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7-04 김형준

[춘추칼럼]이제 남북·북미 대화의 시동 걸어야

방한 트럼프 메시지·정상회담 결과 '중요'이번 계기로 '북미 실무대화 재개' 바람직北, 의지있다면 하반기부터 '대화국면' 진입한미 만남후 '남북대화' 김위원장 판단 중요 오늘부터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G20 정상회의도 국제적으로 중요한 행사이지만 우리로서는 G20 직후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은 무엇보다 큰 관심사이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시기상으로 보나 여건상으로 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정확히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종료된 이후 북미 간에 이렇다 할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미국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제재해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다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은 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는 과정에 최근 양 정상 간에 친서 교환이 있었다. 친서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제안이 오고 가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와중에 시진핑 주석이 전격적으로 방북하였다. 중국은 대화의 모멘텀 실종과 함께 미국의 대북·대중 압박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출구전략을 찾던 북한으로서도 시진핑 방북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중회담 전에 북중회담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먼저 진행되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핀란드, 스웨덴 순방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를 통한 대화를 강조해 왔고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상반기가 지나는 시점에 전개되는 이러한 상황들의 핵심은 대화 재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와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계기에 남-북-미 3자 정상 간 깜짝 만남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한 분위기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 Top-down 방식으로 두 정상 간의 신뢰는 존재하지만 북미 간에는 아직 물러서긴 곤란한 쟁점들이 존재한다. 실무적으로 이러한 쟁점들을 다시 좁히지 못하면 정상 간 회담이 어렵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실무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의 실무협상 제의에 응하는 것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북한이 결단만 하면 북미 간 실무협상은 다시 재개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북한 외무성 등 실무자들이 다시 날선 비난들을 쏟아내고 있다. 폼페이오의 대북제재 발언을 격렬히 비난하였고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져와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다시 엄포를 놓았다. 실무회담이 개최되기 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번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및 한중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방북 결과를 전달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했음을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하반기부터는 다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남북 분단의 최전선인 DMZ를 방문하여 평화와 대화의 메시지를 발산하길 바란다.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대화도 복원되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내부적인 단속을 강화하고 협상 결렬의 책임을 총화하는 시기를 가졌다. 당국 간 대화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합의의 이행은 평화를 만들어 내는 신뢰의 힘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고 남북관계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경제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아직 북미 간 담판이 남은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북관계를 복원시킬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 직후 어떤 형태로든 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남북 간에 담을 쳐놓고서는 북미대화가 잘 될 수 없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및 북중간 대화가 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하반기에는 이러한 국면이 조성되어 조속히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기대한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6-27 양무진

[춘추칼럼]문학을 사랑하라!

문학인 많은 시대일수록 상식·도덕 잘 통해문학교육은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도와줘야시험문제 풀기위해 억지로 배우는건 엉터리아예 가르치지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접한다소설이 안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뉴스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허구(그럴듯하게 꾸민 일)보다 실제 사건이 더욱 흥미진진하고 날마다 계속된다. 그 어이없고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들에 대해서 '재미'나 '흥미진진한' 같은 표현을 써서는 안 될 테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작태와 대중의 반응을 보면, 너무도 즐기는 듯하다. 어쩌면 그토록 소설보다 더 '허구'스러운 일이 실제 남발하는 까닭은 소설을 안 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문학 따위가 사람에게 무슨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문학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시나 소설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10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지만 우리 국민이 문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초중고에서 문학교육을 하고, 문학에 최소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문학을 종교처럼 떠받들어 주는 것일 테다. 문학을 '긍휼히' 대우해주는 것이다.누가 생각하더라도 가장 먼저 태어난 예술은 미술, 음악, 무용일 것이다. 경험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렸든 재미로 그냥 그렸든 동굴 벽화로부터 미술은 발전했을 테고, 신호든 감정의 반영이든 노래로부터 음악은 성장했을 테고, 제의든 축제든 다 함께 어울리는 행위로부터 무용은 진보했을 테다.인류가 문자를 만들어내고서야 문학은 탄생할 수 있었다. 노래를 기록한 것에서 시가 나왔고, 공동체행사 대본으로부터 희곡이 생성되었다. 시로는 담아내기가 벅찬 이야기들이 수필이 되었고, 비로소 소설이 되었다. 시와 수필과 희곡과 소설을 평가하는 비평이 나왔다.이러한 문학이 없었어도 인류는 별문제 없이 존재했을까? 아마도 문학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긍정적인 사회를 이루기 힘들을 테다. 문학은 감정을 발달시킨다. 개별적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해타산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한다. 하여 타자의 처지를 헤아리게 만든다. 존중하게 한다. 배려하게 한다. 또한 문학은 생각하게 만든다. 관념이 고정되지 않도록 문제를 제기한다. 불의와 싸우도록 한다. 모순을 파헤치도록 충동한다. 이 끝없는 감정과 생각 행위, 즉 문학은 대단한 정신노동이다. 인류역사에서 문학하는 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문학이 사회 제 분야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늘 유명무실했지만, 사실은 절대적인 균형추이거나 없으면 안 되는 심장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문학과 더불어 발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동물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어느 시대나 일정 수준의 문학인(작가뿐만 아니라 문학을 애호하는 독자)은 존재한다. 어느 시대는 문학인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어느 시대는 급격히 상승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문학인이 많은 시대일수록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사회일 테다. 문학인이 희박한 시대는 야만사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과 감정을 조율할 줄 모르는 이들만 가득한 사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국어는 의당 가르쳐야겠지만, 국어 가르치듯이 문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문학을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이끌고 다각도로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을 도와주는 게 문학교육이어야 한다. 평가의 조건으로,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지문으로, 오로지 하나의 해석만 가능한 것으로, 게다가 억지로, 이런 식으로 배우는 건 엉터리다. 그런 식으로 배우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문학이라면 치를 떨고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와 희곡과 비평을 즐길 권리를 청춘들에게 빼앗은 것이다.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면,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문학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고 자기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문학을 즐길 테다.감정지수가 0인 듯한, 상식이 아예 없는 듯한, 타인의 마음을 한 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는, 시나 소설을 읽고 감동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파란만장한 뉴스는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문학을 사랑하라./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6-20 김종광

[춘추칼럼]지역문화와 생활문화

지금은 자율적 주민활동 영역 훨씬 많아져일방적 문화정책 아닌 구체적인 출발 필요국가·기초지자체 차원 정책 더 중요한 이유가장 작은것부터 시작해야 미래 꿈꿀수 있어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조건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SNS와 인터넷 등 디지털문화는 개인의 일상을 더 이상 개별적인 수준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단면을 접하게 되면서 대중들은 자신의 일상을 구성하는 계기나 동기를 발견하는 훈련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단위의 실제적인 삶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우리 삶과 관련한 많은 영역이 생활단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동과 노인 등 직접적인 복지제도와 개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은 생활단위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다.바야흐로 '지방소멸' 담론이 회자되는 시대에 지역문화를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지역문화는 지역을 왜곡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라는 단어는 '경제 프레임'을 통해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적 효과 등 산업의 관점에서 지역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지역문화는 가장 객관적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환경, 기타 자원 등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다. 물론 지역의 토착권력과 같은 왜곡된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프레임 차원에서는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다음으로 지역문화야말로 무너져가는 지역사회와 지역경제 등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지역의 붕괴에 이르는 작금의 현실은 우리의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분절적이고 개별적으로 바라보면서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지역문화의 활성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중 하나로 생활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생활문화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정책 용어로는 '생활문화'가 통용되고 있으나, 보는 관점에 따라 생활문화와 생활예술 등 용어가 혼용되기도 한다. 핵심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과 문화(예술)를 연결지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생활문화'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 차원에서 생활문화를 어떻게 구성하고, 담아내고, 풀어내는가에 따라 지역문화의 지형도가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생활체육과 독서동아리 활동을 포함한 생활문화 영역은 모든 세대를 아우를뿐만 아니라 그 영역이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바라볼 지점이다.생활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인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지역문화는 특정 권력과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자율적인 주민활동 영역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정책 또한 생활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이때 두 가지 정도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생활문화가 동아리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자신들의 활동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무대나 공간의 절대적인 부족이다.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개별적인 민원이 아니라 지역문화정책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생활문화가 장르나 분야에 따른 구분이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활동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장르와 분야 간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이들이 함께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광역과 기초 지자체에서의 생활문화 관련 조례 제정 또한 시급하다. 생활문화 활성화가 지역문화를 바꾸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방적인 문화예술진흥정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문화정책뿐만 아니라 기초 지자체 차원의 문화정책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는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복제하고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이 부분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면 지역문화를 통한 지역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이지만, 이를 간과하게 되면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6-13 권경우

[춘추칼럼]김·민·조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정부, 대통령 무시 김정은 발언에도 무대응폭력성 도넘은 민주노총은 강건너 불구경인사검증 실패 조국 민정수석 유임 아쉬워대통령 권위 누구 앞에서도 무너지면 안돼문재인 정부가 정치 실종, 경제 부진, 외교 고립, 사회 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 속에서 이른바 '김·민·조 왜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민주노총,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11일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 당국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5월 초 두 차례에 걸쳐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금지된 '탄도미사일'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이런 저자세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 여론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작년 5월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잘 한다'(83%)가 '잘 못한다'(7%)를 압도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올해 5월 조사에선 긍정(45%)이 거의 반 토막 났고, 부정(43%)은 6배 이상 많아졌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의 대통령을 무시하면서 마치 은혜를 베푸는 듯한 '굴욕적이고 시혜적인 평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많다. 정부가 5일 국제기구의 대북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미국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차갑다. 한국갤럽 조사(5월 14~16일)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대북 지원 중단'(54%)이 '인도적 지원은 유지'(38%)보다 훨씬 많았다. 민주노총의 폭력성과 무모함이 도를 넘었다. 현대중공업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수천명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주주 총회장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하며 경찰관에 폭력을 휘둘렀다. 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전국 건설현장이 멈췄다. 일용직 근로자 상당수가 공사 중단으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법을 집행해야 할 공권력이 민노총의 눈치를 보고 관련 부서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다. 민노총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법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노조의 임금 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합법적 투쟁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영상의 문제에 노조가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민노총의 폭력 시위는 권력과 강자를 향한 저항에서 멀어지고 있다.정부는 이익단체를 넘어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변한 민노총의 불법과 폭력에 대해 원칙과 결기로 법 집행의 엄격함을 보여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인사검증 실패와 조직 기강해이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작년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 비서관실 소속 특별 감찰단 10명이 부적절한 골프 접대에 연루되어 모두 교체됐다.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론이 거세게 제기되었지만 문 대통령은 "특검반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조 수석 경질론을 일축했다. 최근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이 물러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안 맞는 인사가 있어 심려 끼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면서 사과했다. 그동안 조 수석과 함께 인사 검증 실패 논란의 당사자로 비판이 제기됐던 조국 민정수석은 이번에도 유임됐다. 아무리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하더라도 잘못을 했으면 공평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래야만 기강이 선다. 국민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위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작아져서는 안 된다. 단언컨대, 대통령의 신성한 권위가 작아지고 무너지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6-06 김형준

[춘추칼럼]함께하는 남북협력과 통일교육

이념·정권따라 변하지 않는 정치교육 지침서독 '보이텔스바흐 합의' 우리에게 큰 시사지자체, 주민에 남북교류 따른 평화적 효과지역경제 이득·통일과정 기여등 잘 설명해야지난주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통일부에서 주관하는 통일교육주간이 마무리되었다. 국민들로 하여금 평화통일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올해 7회 행사를 종료하였다니 매우 좋은 발상이 아닌가 싶다. 프로그램을 보니 콘퍼런스, 공모전, 체험학습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간 북한과 통일문제를 다룬 교육자로서 볼 때 이러한 프로그램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앞으로 한 가지 보완할 점이 있다면 이러한 프로그램의 지방 확산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지만 서울 못지 않게 통일문제에 대한 지방의 관심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정상회담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와 협력의 주체로 올라섰다. 그간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는 중앙부처 차원의 교류의 부차적인 의미로서 기능하였고 규모와 기간 등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남북교류와 관련된 예산과 조직을 대폭 확대하였고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대북교류가 체계를 갖추고 실질적으로 남북관계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전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체계가 잡히면 향후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대비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한다면 지방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지역민들의 남북관계,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은 필요성이 더욱 커 보인다.우리와 같은 분단을 겪었던 독일은 전형적인 연방제 국가로 지방자치의 역사가 깊다. 통일 이전에도 주정부의 자치가 확고히 보장되었고 자매결연 등 지자체들이 동서독 교류에 직접 나서기도 하였다. 동독 탈주민들의 수용에 있어서 주정부는 연방정부와 협력해 나갔고 통일 이후 재원분담에서도 주정부는 고통을 분담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주정부가 지역 주민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적시성 있게 설명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한국에도 잘 알려진 '정치교육센터'는 연방센터도 있지만 각 주마다 지역센터가 있어 지방 특색에 맞는 이슈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활동을 해왔다. 분단시기 정치교육센터는 자유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확고한 전파 역할을 하였고 기본권, 시장경제 등에 대한 교육 홍보활동도 수행하였다. 통일이후에는 통일에 따른 통합의 가치를 설파하였고 현재는 올바른 정치체제와 선거제도 등에 대한 정보를 적실성 있게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필자는 수년 전 지방정치교육센터를 가볼 일이 있었는데 실로 체계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놀란 적이 있다. 또 한가지 특색 있는 통일교육에의 함의는 서독에서 추진된 '보이텔스바흐 합의'이다. 냉전이 한창 중인 1970년대 중반 서독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치열한 논의 끝에 이념과 정권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정치교육 지침을 마련하였다. 한번 합의한 원칙은 대체로 지키는 독일의 특성에 따라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교육은 강제할 수 없으며 토론과 논쟁을 통해 독립적인 관점과 사고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체적인 인식의 형성을 위해 다양한 가치와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편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합의를 이뤄나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 특히 통일이라는 민족의 명운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절차가 더욱 긴요하다고 하겠다.지방자치단체는 북한과의 교류협력도 중요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남북교류에 따른 평화적 효과와 지역경제에의 이득, 나아가 통일과정에의 기여 등을 지역주민들에게 잘 설명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정보가 부족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참여형 방식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중앙정부도 그들만의 사업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민간단체와 적극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배가해야 할 것이다.지방에는 지방정부뿐 아니라 민주평통, 민간단체, 지역통일관 등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들이 각기 따로 수행하는 통일교육 프로그램들을 하나로 엮는다면 더 효과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내년 통일교육주간은 통일문제에 대한 범국민적인 사회적 합의의 장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5-30 양무진

[춘추칼럼]학생 '자봉' 이대로 좋은가?

대부분 혈세로 치르는 단체의 '행사 보조'중·고생 함양할게 없는것 많아 '재고' 필요등급·경쟁 치열·위화감 조장 등 부작용만진정 없애려면 대입 필수조건서 제외해야자원봉사 줄임말로 '자봉'이 널리 회자된다. 자원봉사는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가 없이' '자발적', 이거 되게 힘든 일이다. 어쩌면 '자봉'은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대가 없다'지만 실상은 있고, '자발적'이라지만 본질적으로는 강제적인 봉사행위들을 뜻하는 신조어일지도 모른다. 사실 '대가 없는' 것도 문제다.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의 최고 덕목은 일한 만큼 받는 것이다. 모든 부당한 노동문제는 노동한 만큼 대가를 주지 않았거나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마땅한 사회에서 대가를 받지 않는 노동의 범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일자리가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작금에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들에,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면, 더는 자원봉사일 수는 없겠지만, 일자리는 늘어나고 소비경제는 개선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학생의 자봉은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봉사시간 혹은 봉사점수. 게다가 학생들의 '자봉'은 자발성을 매우 의심받는다. 대학입학과 각종 공무원·취직시험에 자봉을 필수조건으로 만든 자들의 취지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자봉은 그저 더욱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무원이나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스펙일 뿐이다.마침내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만 13~18세의 청소년은 학생이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회'를 이룩했다.(물론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공부 대신 노동을 하는 청소년도 상당하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학생을 누가 '자봉'이란 이름으로 무료노동의 세계로 내몰았는가? 그들이 '자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숭고한 가치, 정말 그런 것을 학생이 얻는다고 보는가? 설령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그걸 학교에서 배워야지, 무료노동판에서 얻으라는 건가? 공부는 학원 가서 하듯이 인격도야는 사회 가서 하라는 건가? 도대체 학교는 왜 있는 건가?자봉에도 소위 등급이 있는 모양이다. 알짜(지속성이 있고 시험관에게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봉은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결국 스펙 넘치는 부모를 가진 학생에게 주어진다. 시험관이 별로 쳐주지 않지만 시간은 채울 수 있는, 배경 없는 평범한 중·고등학생이(학생 본인이 아니라 부모님이)그나마 쉬이 구할 수 '시간' 자봉은 대개 행사보조다. 국가보조금을 받는 무수한 단체들이 각종 행사를 꾸준히 벌이기 때문이다. 대개 선착순이기 때문에 행사정보를 빨리 얻고 빨리 신청하면 된다. 국민혈세 받아서 그 행사 치르는 단체가 미래를 이끌어나갈 국민(청소년)을 무보수로 부려먹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다른 자봉은 몰라도 중·고등학생의 자봉만은 재고가 필요하다. 학생이 자봉을 통해 함양할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크다. 학생(부모)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해 치열한 경쟁과 학생 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뿐이다. 자봉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청소년은 왜 꼭 편의점, 피시방, 주유소, 식당 같은 데서만 일해야 한단 말인가? 일을 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생활이 가능한 청소년에게 현재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자리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은 공부(자아계발과 품성과 인격을 넓히기 위한 활동 포함)하고 독서해야 하는 이들이다. 공부 안 하는 시간은 놀아야 한다. 학생이 노는 게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가?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보자.자원봉사가 아닌 자봉이 진정 사라지려면, 대입 시 필수조건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자봉 때문에 얻는 게 있는 자들은 자봉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애쓸 테니 쉽지 않을 테다.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른들끼리 대가를 주고받으며 일하자. 학생인력이 꼭 필요하다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자./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5-23 김종광

[춘추칼럼]지역문화와 학습공동체

한국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변화, 기술 발달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 압축 근대화와 도시화에 대한 대응 등은 단순한 국면 전환을 넘어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다가온다. 특히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담론은 우리 인생의 노화처럼,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다. 물론 중앙 정부 차원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사업에 5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준비함으로써 위기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사업 주체에 따라 도시재생이 실제로 도시를 바꾸고, 지역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는 의문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가운데 주목하는 것으로 대학과 지식사회의 풍경이 있다. 현실은 '풍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처참하고 가혹하다. 작년 대비 올해 대학의 강좌수는 6천655개 줄었다. 그 수업을 감당하던 시간강사들의 비명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들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자신과 가족만 들을 정도의 신음소리로 이 찬란한 5월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기본적으로 대학의 문제이자 국가 학문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영역에서 대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동시에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지역문화 차원에서 지식연구네트워크와 같은 공동체를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식사회의 문제를 지역문화생태계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찾자는 말이다. 지역사회는 교육과 복지, 문화, 환경, 의료 등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현안들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파편적이고 전문화된 지식만 넘치는 사회에서 총체적 지식의 향연을 지역사회에서 만들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식의 문제를 대학과 지식인 등 특정 주체에게 '위탁'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지식생산의 구조와 방법을 지역문화 생태계 구조에서 고민할 때가 되었다. 지역문화생태계 관점에서 그동안 마을만들기와 마을공동체 복원사업 등은 혁신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살리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피로감에 물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아무리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는 활동과 주체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대안이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활동을 넘어 학습공동체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공동체의 학습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의 공유 차원이 아니라 지식과 토론을 통한 공동체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때 학습공동체의 물리적 토대는 도서관과 동네책방,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사립작은도서관 등이 촘촘하게 되어 있는 곳도 많다. 평생학습기관도 중요한 공간이자 자원이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자 학습의 공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가 배우는 공간이다. 지식인과 대중, 전문가와 일반인, 예술가와 주민 등의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역사회라는 특정한 시공간적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 발휘될 수 있는 일종의 '선한 영향력'이다.다음으로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학과의 연계는 대학에 갇혀 있던 교수와 연구자, 학생들이 실제 지역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지역사회에서는 지역과 아무 관련성이 없는 외부의 전문가를 불러 일회성 행사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문화진흥원은 '인문활동가 지원사업'을 전국 단위로 수년째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전문가들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과 성과가 지금 하는 것처럼 개인연구자에 대한 일시적 인건비 지원 형태로 그친다면 '인문활동'은 지역의 자원으로 축적될 수 없을 것이다. 인문활동가 사업을 통해 발굴된 지식연구자들은 지역의 도서관과 독서동아리, 시민교육, 평생학습, 예술가 등 다양한 자원들과 연계할 수 있는 출구 전략이 절실하다. 지식인의 역할과 임무를 묻는 시대는 끝났다. 지식인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혹은 전문가로서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삶의 공간에서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차원의 실천이 필요하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 차원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지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짜 지식이 필요한 시대이다. 마을공동체, 시민자산화, 사회적경제, 공공미술, 문화예술교육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지식이 필요한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5-16 권경우

[춘추칼럼]5무(無) 늪에서 벗어나야 성공한다

지지층만 챙기고 반대층 배제 '통합 상실'62% '경제정책 잘못'·협치없는 적폐청산책임없고 자기 확신만·현실외면 이념치중문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이했다. 5년 단임제 국가에서 국민들은 집권 2년이 되면 초기에 갖고 있던 새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접고 정부의 능력과 성과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심판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45%로 김대중 전 대통령(49%)에 이어 2위였다. 그러나, 취임 직후 80%대의 높았던 지지가 40% 포인트 가량 급락했다. 역대 대통령처럼 처음엔 화려했지만 종반에는 초라하게 전락하는 '시화종빈'(始華終貧)의 정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왜 문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급락했을까? 치명적인 다섯 가지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첫째, 약속만 있고 실천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층만 챙기고 반대층은 배제함으로써 통합과 공존의 길을 잃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아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탕평 인사 대신 코드 인사가 판을 쳤다. 둘째, 의욕만 있지 성과는 없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저소득층의 지갑을 채워주겠다고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73조8천억원의 일자리 예산을 편성·집행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일자리는 창출되지 못했다. 핵심 노동력인 30~40대 취업자는 25만명이나 감소했다. 작년 4분기 소득하위 20% 계층의 근로소득은 37%나 줄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62%가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잘못한다'고 평가한 반면, '잘한다'는 평가는 23%에 불과했다. 셋째, 적폐청산만 있고 협치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사회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적폐)청산이 이뤄진 다음,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다"면서 "살아 움직이는 적폐 수사를 정부가 통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야당과 보수 세력을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에 동조한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면 협치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대통령이 '선 적폐청산 후 협치'를 주장하면 이는 정치를 포기하고 힘으로 통치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럴 경우, 분열과 갈등의 정치는 심화되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넷째, 자기 확신만 있고 책임은 없었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것에 대해 무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의롭고 공정한 자신들만이 국민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잘못된 확신속에서 '계도 민주주의'에 도취되어 있다. 더구나,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관대하다. 드루킹 댓글 조작 연루,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민주노총의 법치 훼손 방치, 인사 검증 실패 등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또한, '편의주의적 정의'에 매몰돼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정의를 내세우고 불리하면 관행을 들먹인다. 이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이고 위선이다. 다섯째, 이념만 있고 실용은 없다. 경제, 외교·안보, 고용·노동에서 현실을 외면한 채 좌파 이념에 치중하면서 실리를 추구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년 남아 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고, 성과가 없는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어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삼아 뜨거운 협치를 하고, 내각과 집권당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어 청와대 중심의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불어 노선과 코드를 뛰어넘는 대탕평 인사를 단행하고,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실리적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대통령은 민심과 동떨어진 인식을 바꾸고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며 정책과 검증에 실패한 인사들에 대해선 추상같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 성과, 실천, 협치, 책임, 실용 등의 가치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5-09 김형준

[춘추칼럼]장기전은 비핵·평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北, 하노이회담이후 남북관계 소극적인 모습남북미협상 유리하게 하려면 통미봉남 안돼북미, 중재자역인 '우리' 활용 대화 나서야올해 '비핵화 협상' 향배 가를 중요한 타이밍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이후 두 달여가 지났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이면서 중재자인 우리의 당초 목표는 하노이 회담에서의 합의를 근거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포함한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평화체제의 일정표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채택이 불발됨으로써 이러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협상이라는 것은 늘 희망적(wishful)인 것은 아니다. 잘될 것도 안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타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지난 하노이 회담은 결과물 없이 종료되었지만 북미 양측의 주장이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주 우리는 4·27 판문점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이하였다. 결론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 평화 발전에 기여한 점은 정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2017년 북미 간 충돌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합의한 점이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상시협의 틀을 만든 것은 주요한 성과이다. 체육, 문화, 종교 등 사회문화 분야의 민간교류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 선언이 담긴 의미와 내용을 감안할 때 남북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장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다시 남북관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북한은 정세가 유리하지 않은 국면에서는 남북관계에 속도 조절을 시도해왔고 통미봉남을 통해 우리와의 대화를 배제하려 하였다. 반면 우리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대화를 병행해 나가는 입장에서 두 가지 트랙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상황을 관리해 왔다. 북한이 앞으로 남-북-미 협상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통미봉남으로는 안된다. 남북관계에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 있는 경제협력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해 나감으로써 남북관계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정상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상 차원의 만남을 통해 다음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양측은 지금 협상장 밖에서 날선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협상 실무를 관장하는 실무대표들끼리 맞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양측 실무대표들이 앞으로 만날 수 없다. 북미 모두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를 십분 활용하여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조급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 북핵 협상 30년 동안 우리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무수한 협상의 과정 속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 있는 적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놓쳐 30년이 흘렀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때가 그랬고 9·19 공동성명 이후에도 그랬다. 시기가 늘어지게 되면 상수보다는 변수가 많아진다.그간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비핵화 협상은 포괄적인 합의와 압축적인 단계 이행을 통해 일거에 끝내야 한다. 협상 시간이 지연되면 주변국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당사국들의 리더십이 바뀐다. 협상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명분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협상의 동력이 약화된다. 냉전 해체는 개혁개방론자인 고르바초프가 당시 소련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여건이 마련될 수 있었다. 독일통일은 동독변혁기에 콜 총리가 주변국들을 설득하면서 통일의 기회를 살려나갔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것이 없다는 입장이면서 대선 때까지 핵동결 국면을 끌고 나갈 것으로 보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시한을 설정해 놓고 미국의 입장 변화를 종용하고 있다.올해가 지금까지나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 향배를 가를 중요한 타이밍이다. 올해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비핵화 방식에 있어서의 포괄적인 합의를 이루고 비핵화에 따른 신뢰조치가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미 모두 장기전에 대비할 만큼 타이밍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남북미 모두 국내 정치적인 요소를 뛰어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5-02 양무진

[춘추칼럼]예술가는 동냥아치가 아니다

경쟁 치열 '국가보조금' 계륵이거나 필요악'e나라도움 시스템' 이용 어려워 포기 일쑤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 넘어 통제하려나간소·간략화 촉구하며 '도움' 용어 바꿨으면예술에 '국민의 혈세'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을 테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들만의 행위에 왜 세금을 낭비한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로또 등의 복권, 토토 경마 경륜 경정 강원카지노 같은 국가공인 '도박', 술 담배 등에서 뜯어낸 나랏돈 중의 일부를, 예술에 쓰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신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한 건전한 정신, 정서, 인식의 함양 또한 나라를 나라답게 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옛날에 자식이 '예술'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화를 내셨다. "굶어 죽으려고 환장했니?" 예술가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직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직업도 아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대중이 아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버는 예술가도 1%는 된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나름대로 권위와 권력을 누리는 예술가도 5%는 된다. 예술가의 50%는 취미생활로 즐긴다.하지만 예술가의 40% 정도는 '직업예술가'로서 살기가 녹록지 않다. 잠잘 데 있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만사 편안한 세상이 아니다. 예술가 또한 없으면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때가 숱한 그것들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직업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수입을 보면, 사실 그 본 예술행위로 버는 돈 보다 강의와 심사와 관련 알바 등의 부수입이 훨씬 많다. 이 생계형 예술가들이 바로 국가보조금 타 먹는 예술가들이다.'창작지원금' 형태로 나오는 국가보조금은,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자족감을 준다. 내가 대중이 자기 돈을 직접 들여 소비해주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창작지원금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생산하는 진짜 예술가라고! 공연예술 작품은 국가보조금을 받아야만 제작 자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3천만원 정도 지원받았을 때, 수십여명이 한두 달 이상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인건비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보조금 선정 사업이기 때문에 일단 제작에 들어갈 수가 있고 후원도 받을 수 있고 대중의 참여를 얻어낼 수 있다.국가보조금은 예술가에게 계륵이거나 필요악이다. 받고 싶지 않지만 받지 않으면 예술이 불가능하다. 받고 싶다고 쉬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예술가로 살기 어렵다는데 왜 그렇게 예술가는 많은지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보조금 받겠다고 경쟁하는 것부터가 왠지 서글프다. 국가보조금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다.'e나라도움'은 보조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보조금의 중복·부정수급을 방지하며 보조금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조금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다고 한다. 말은 번드르르 좋은데 실시 3년째, e나라도움 시스템은 악명이 드높다. 공무원은 '써보니 참 편리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예술가들에게는 고난도 수학문제나 다름없다.일단 지원할 때부터 쉽지 않다. 하다하다 안돼서,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이 수두룩하다.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배부른 소리 같지만 더욱 난관이다.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 보조금 처리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 정보화하여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데, 이 '자동화, 정보화'가 예술가에게는 산 넘어 산, '넘사벽'이다. 기획재정부와 재단의 담당공무원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하여 정말 큰 도움 받아서 겨우 해낸 이가 대부분이다. 예술가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감내해야만 마침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을 넘어 통제하려는 것일까? 예술가가 그 예술에 충실해야지 보조금 타내는 지엽적인 과정에 정열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꼭 필요하다면, 예술가도 좀 쉽게 할 수 있도록 간소화·간략화되기를 촉구한다. 일단 '도움'부터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가를 무슨 동냥아치 취급하는 말 같다. 예술가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이들이지 거지가 아니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4-25 김종광

[춘추칼럼]손을 씻는 일

중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공과 사적인 것…구분없이 혼돈의 삶은 발악 아니면 침묵뿐'성실함 공백' 우리사회 한계·문제점 드러내 자기 위치에서 해야할 일 파악하는 것 중요"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우리 훌륭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거예요. 성실한 연구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해야 하는 걸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고려대 김승섭 교수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회역학 연구를 통해 탁월한 결과물을 내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훌륭한 연구자'가 아니라 왜 '성실한 연구자'일까?의사이자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 역시 성실함을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필요한 덕목을 담은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곽미경 옮김/웅진지식하우스/2018)에서 우선적으로 '성실함'을 강조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매년 미국인 200만명이 병원 입원 중에 감염되고 그중 9만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감염 예방 측면에서 의사들이 지켜야 할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손을 씻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의사들이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언제부터인가 성실함의 가치는 폄하되거나 부정되어 왔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성실함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볼 때 긍정적일 수 없었다. 아울러 독재 정권과 같은 비정상의 사회에서 역시 개인의 성실함은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어쩌면 성실함은 본래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국면과 현실에 맞게 그 가치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우리의 삶은 평면적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떠 있는 수많은 추측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이 있다는 것마저도 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증거'와 '증언'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편에서는 비방과 비난, 혐오와 저주의 언어가 난무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기쁨과 행복과 쾌락을 이야기한다. 둘의 공통점은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말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왜 구분해야 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구분과 갈래가 없는 상태에서 남는 것은 발악 아니면 침묵뿐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고등 교육을 통해 우리가 듣고 배운 지식은 구체적인 현장과 사실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성실함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데에는 성실함을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나 자질 정도로 폄하한 탓이 크다. 사실 성실함의 가치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에 있다. 앞에서 지적한 우리 사회의 한계와 문제점은 성실함의 공백을 보여준다. 성실함은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1595년(을미년) 4월 29일 이순신은 일기에 "새벽 2시부터 비가 내렸다. ……노윤발이 미역 99동을 따왔다."고 썼다. 김훈 작가는 100동이 아니라 '99동'이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이순신의 정신이 바로 이 사실에 입각해 있으며, 그 사실의 힘으로 전쟁을 치른 것이라고 했다. 고문과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적어도 신에게 아직도 12척이 남아 있다"고 보고한 것도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순신의 언어와 행동은 사실에 기초한 성실함에서 나왔다.성실함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하지 않은 삶을 잘 살아내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성실함은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실은 곧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꾸준함을 통해 드러낸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알아가고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손을 씻는 일'과 같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4-18 권경우

[춘추칼럼]'국민 모두의 대통령' 위한 통치 연합 필요

문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 49%' 최고치경제위기·인사참사·靑도덕적 해이등 불만선거연합 세력들과 유착 '스스로 동력 상실' 이념적 편향 경제·외교정책 과감히 바꿔야민심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4·3 보궐선거에서 여당은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전례 없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불과 10개월 만에 민심이 판이하게 돌변하고 있다. 범여권은 단일화를 하고도 영남에서 진보성향 유권자가 가장 많은 경남 창원·성산 선거에서 504표 차이로 신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통영시장과 고성군수 선거에서 모두 싹쓸이했지만 통영·고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선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23.5%포인트 차이로 완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4월 첫째 주(4월 2~4일) 조사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41%로 추락하면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평가는 49%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층의 긍/부정률은 37%/54%, 저소득층에서는 31%/60%였다. 현 정부 핵심 지지층이었던 학생(33%/56%)과 서울(38%/52%)에서도 긍정평가가 30%대로 급락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 만에 왜 이런 엄청난 민심 이반이 발생했을까? 경제 위기, 인사 참사, 청와대의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선거를 치르듯이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셀리그맨(Seligman)과 카빙톤(Covington) 교수는 '선거연합과 통치연합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 위기를 분석했다. 그들은 새 대통령이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선거 연합을 깨고 다른 세력으로 통치 연합을 만들면 필연적으로 리더십의 위기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992년 대선 당시 선거연합인 3당 합당의 한 축이었던 충청의 김종필 총재를 집권당에서 쫓아냄으로써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의 DJP 연대에 정권을 빼앗겼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호남세력에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무너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선거연합과 통치연합의 부조화가 아니라 두 연합의 비정상적인 유착으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를 포함한 진보 시민단체, 그리고 운동권 세력과 거대한 선거연합을 만들어 집권했다. 그런데 집권 후 이들 선거연합 세력들에 대한 부채 의식과 지나친 유착으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친노동 정부를 등에 업고 오만의 극치를 보이며 안하무인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가령,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을 저지하겠다며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찰서에서 취재 중인 기자를 집단 폭행했다. 공권력이 민노총의 눈치를 보면서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노총 공화국이다"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시민단체는 극도로 정치화되면서 정부의 각종 인사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행정부, 청와대, 사법부, 공공기관의 핵심 인사가 진보 시민단체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 공정해야 할 인사가 오로지 '정치 공학'에 의해 움직인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인사참사가 끊이지 않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 정부에서는 운동권 인맥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핵심 요직에 포진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강한 이념적 편향성으로 경제 정책은 현실성이 무시되고, 외교 정책에서는 오랫동안 다져온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법치 훼손, 인사 참사, 정책 실패를 몰고 온 파행적인 선거연합을 깨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만드는 새로운 통치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4-11 김형준

[춘추칼럼]한반도 평화의 봄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DMZ 개방, 평화·환경보호 가치 조화 필요내주 한미정상회담, 중재노력 재가동 시점국제사회규범 준수하되 우리역할 해 나가야변화폄하·갈등 부추기는 정치적 목적 무책임지난 9·19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로 열린 DMZ가 일반인에게 개방된다고 한다. 모든 구역이 개방된 것은 아니지만 올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비무장지대가 국민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분단 70여 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 평화와 개방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활용에 있어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 사례는 한국에도 이미 잘 소개되어 있다. 먼저 온 통일로서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교훈을 준다. 독일은 통일 직전과 직후부터 국경개방에 대비하여 동서독의 환경운동가들이 국경지역을 어떻게 보존하여 후대에게 물려줄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였다. 환경이나 인권운동의 역사가 깊은 유럽에서는 환경단체들이 중심으로 동서독 국경을 보존하는 문제에 대해 팔을 걷고 나섰다. 통일과 함께 진행된 이러한 환경보호 운동이 없었더라면 과거 동서독 국경지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 열린 DMZ 평화안보 체험길도 궁극적으로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방안과 연계되고 국민들의 평화 요구와 환경보호 등 다른 가치들이 잘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완전한 분단 해소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안전문제도 고려해야 하며 향후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남북 간 진지한 협의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독일의 한 통일인사는 자신들의 그뤼네스 반트에 비해 우리의 비무장지대의 상징적 가치는 훨씬 더 광범위하다고 귀띔해 주었다. 독일은 동서독 장벽이 건설된 지 30년 만에 통일을 했지만 한국의 분단은 70년이 넘어섰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환경과 생태적 측면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무장지대는 지금 우리에게는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지만 앞으로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는 평화와 번영의 산 교육장이 될 것이다.이처럼 한반도에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년 만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었던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물론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내주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비핵화 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 간 서로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진 만큼 이를 절충하기 위한 우리의 중재노력이 다시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 다시 열릴지는 모르지만 다시 열리게 되는 북미회담에서는 더 이상의 지연과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북미 간 포괄적인 로드맵을 합의하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배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옵션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이제 곧 1주년을 맞는 4·27 판문점 선언에 따른 남북 간 합의사항의 이행도 다시 탄력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난 남북관계사에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늘 서로 영향을 받았다. 비핵화 협상이 더디면 남북관계도 더디었지만 그런 국면에서도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또한 전개되었다. 남북관계의 자율성 확보는 지금 국제사회가 취하고 있는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기 위함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규범은 준수하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연결 고리들이 있어야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레버리지가 확보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보고 소통한 사람들끼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과정들을 인정하지 않은 시도도 있다. 며칠 전 "한미동맹 공조의 틈을 벌리고 한반도 평화의 물길을 되돌리고 남북미의 대화 노력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갈등과 대결의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그런 점에서 이해할 만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무장지대 평화 안보체험길의 기회를 우선 주었으면 한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변화를 폄하하고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무책임하다. 틀린 것이 있으면 건설적으로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 맹목적인 비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꽃샘추위도 있는 봄이지만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왔는데 봄을 맞이하여야 하지 않겠는가./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4-04 양무진

[춘추칼럼]5%의 농촌소설

씨가 마른것은 쓰는 작가가 아닌 읽는 독자사투리좀 썼다고 '이문구 따라했네'식 매도조작된 '농촌 판타지' 예능 볼때마다 불편대중들 읽든 말든 '진짜 농어촌' 기록돼야'농촌'은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사회'다. 각기 생각과 습성을 가진 농민과 '농가인구(현재 농가로 정의된 개인농가에서 취사, 취침 등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와 비농업인이 가족끼리 동네사람끼리 면·읍민끼리 군·시민끼리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곳이다.소설은 당대의 사람과 세태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농촌인구가 마구 줄어들면서 농촌소설도 마구 줄어들었다. 급기야 농가인구수는 242만, 농가인구 비율은 4.7%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임촌, 어촌 사는 인구를 더하면 5% 정도 된다. 신기하게도 21세기에는 농(어)촌소설도 5% 정도 생산되고 있다.5%는 정말 바라보기 나름인 듯하다. '농촌소설 쓰는 작가가 씨가 말랐다'다거나, '농촌소설이 멸종했다'고 볼 수도 있다. 씨가 마른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다. 소설 자체를 읽는 한국인구가 5%가 될까 말까 한 판이다. 그 소수정예 독자가 그 많은 소설 중에 농촌소설을 찾아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심지어 농촌소설 좀 쓴다는 작가도 자기만 농촌소설을 쓰는 줄 알 정도로 안 읽는다.읽히는 문제와 상관없이, 농촌소설은 필요한 만큼 생산되고 있다고 봐도 좋을 테다. 5%의 농촌을 5%의 작가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5%의 농촌소설이 안 읽히고 안 알아주는 것 다음으로 섭섭한 것이 '다름'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촌만 나왔다 하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제강점기소설 같다고 여기는 분이 태반이다. 그나마 소설을 읽은 분들도 '사투리를 썼으니 이문구 따라했네'라는 식이다. 2000년대에도 여러 작가가 저마다 고유의 문체와 시각으로 5% 농민의 현재와 사상과 세태와 생활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개별성과 고유함을 알아봐 주기는커녕, 모조리 '이문구소설' 같다고 매도하고 있다.나는 아이돌 그룹 구성원이 다 똑같아 보인다. 나는 농촌소설에 관심이 많고 사랑하니까 농촌소설 쓰는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각기 다름을 아는 것일 뿐이다. 농촌소설에 관심 없는 분에게 농촌소설은 내가 구별하지 못하는 어떤 아이돌 그룹의 1인일 뿐이다. 대중독자가, 사투리 나오고 농촌 나오면 이문구소설 같네, 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 감사해야 마땅하다. 고(故) 이문구의 '우리 동네'를 읽어본 분도 정말 귀한 세상이다. 그런데 농촌소설은 진짜로 왜 안 읽히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라면 5%는 읽혀야 되는데 말이다. 5%의 농촌소설이 진짜 농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농촌소설은 소설의 속성상 농촌의 이면과 그늘을 묘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중이 듣고 보고 읽고 싶어하는 농촌얘기는 예능 같은 것이다. 예능(藝能)이 어째서, 연예인이 일반인 대신 먹어주고, 얘기해주고, 웃긴 짓 해주고, 사연팔이 해주고, 감성팔이 해주고, 사회봉사해주고, 군대생활해주고, 세계여행해주고, 낚시해주고, 1박 2일 놀러가 주고 하는 프로그램들을 뜻하게 된 걸까?아무튼 예능프로의 8할이 농어촌 찾아가서 웃다 놀다 먹다 힐링하다 오는 것이다. 한국 농촌이 모자라 전 세계의 오지 농촌을 찾아다닌다. '시사교양'이나 '다큐'를 표방하지만 결국엔 '예능'하는 프로도 허다하다. 농어촌에 사는 것이 얼마나 '극한'스러운지 보여주는 '리얼다큐'들도 농어촌이 아니면 제작조차 힘들다.농촌소설은 5% 이하인데, 농촌예능·리얼다큐는 80% 이상인 묘한 시대다. 농촌소설은 지금의 농촌에서 농가인구와 그 외인이 얽히고설켜 치열하게 사는 삶이 기록되어 있다. 영화로 치면 '다큐영화'일 수밖에 없다.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농촌은 그런 진짜농촌이 아니라 먹방화되고 힐링화되고 예능화된 판타지농촌이다. 나는 농촌예능·리얼다큐에서 그려지는 '농촌'은 조작된 농촌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대중이 보고 싶은 것을 담았을 뿐이다. 농촌을 동물원이나 식물원처럼 그린 예능을 볼 때마다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진짜 농어촌을 다룬 소설 또한 5%는 꾸준히 생산되어 대중이 읽어주든 말든 알아주든 말든, 진짜 지금의 농촌을 기록해나갈 것이다. 농어촌의 최후까지./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2019-03-28 김종광

[춘추칼럼]혁신의 길

인간 존재 유한성 그대로지만 변화는 계속요즘 '세상 바꾼다' 의미 실험·창조성 뒤따라변하는 것·안 변하는 것 사이서 살아가는 법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봄이 왔다. 누군가에게는 올 거 같지 않던 봄이, 또 누군가는 그렇게 기다렸건만 끝내 보지 못한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 계절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변하지 않는 사실 속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변화'가 담겨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은 그대로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조금 더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세기에는 이 말이 주는 느낌이 비교적 명확했다면, 지금 21세기에는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주제가 되었다. 전자는 '혁명'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혁명은 확실한 언어로 설명되거나 이해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과거 많은 이들이 혹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에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되거나 이해된다. '혁명'의 자리에는 '혁신'이 자리 잡는가 하면, 이와 연결하여 '실험'과 '창조성'과 같은 단어들이 뒤따른다. 사회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모든 것은 개인의 변화보다는 각자가 살아가는 조건으로서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 변화는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라기보다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변화이고 새로운 관점의 발견이다. 그것은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한 영국의 대표적인 혁신기관 네스타(NESTA)의 대표 제프 멀건(Geoff Mulgan)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는 이 시대의 모든 이론이 아주 단순한 오류에서 출발했다고 비판했는데, 그 오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회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혁신은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처리하는 일을 보게 된다. 그것은 유무형의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복잡한데 단순하게 반응하면 온전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이 바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뭔가 옳은 일이 이뤄지길 바란다면, 당신이 직접 하는 게 최선이다." 샤를로트 드 빌모(Charlotte de Vilmorin)의 말이다. 프랑스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나 휠체어를 타야 했던 그녀는, 2015년 휠체어 탑승 차량을 알아보다가 엄청난 비용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방법을 찾다가 몇 달 후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개조용 차량 공유 플랫폼 휠리즈(Wheeliz)를 열었다. 프랑스에 장애인을 위한 개조 차량이 10만대 정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공유 플랫폼을 연 것이다. '휠리즈'는 2017년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꼽혔다.혁신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직접 느끼는 문제들을 바꾸거나 해결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터가 더 나은 공간으로 바뀌고, 우리의 공동체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바뀌는 것을 추구할 때,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인 계기와 활동을 조직하고 수행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기술은 발달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다른 한편, 세상은 그대로이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꽃은 피고 진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서 변화와 혁신은 시작된다. 변화와 혁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온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개인만이 가능하다. 비록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공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차이가 드러나는 서로 다른 조건 위에서 비로소 변화를 위한 혁신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한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조건의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사이'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2019-03-21 권경우

[춘추칼럼]선거제도 개혁의 해법은 없나?

첫째, 정당 득표만큼 의석 배분 '비례성 원칙'둘째, 정국운영 안정 '권력구조·선거제 조화'셋째, 정치권 이해관계 보다 '국민공감 우선'3원칙 바탕 '위원회' 발족 案도출 가장 합리적여야가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첫째, 비례성의 원칙이다. 정당이 얻은 득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선거구제 단수 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난 2016년 총선의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5.5%와 35.5%를 득표했고, 실제 의석률은 41.0%와 40.5%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44석, 새누리당은 18석을 더 많이 획득했다. 한편,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6.7%와 7.2%를 얻었지만 의석률은 12.7%와 2.0%에 불과했다. 국민의당은 무려 45석, 정의당은 17석 적게 배당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 야3당은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준연동형'과 같이 연동의 수준을 낮추자는 입장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투표로 총 의석을 결정한 후, 당선인은 지역구 의석을 먼저 배당한 뒤 그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둘째, 제도의 조화성이다. 무엇보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은 정국 운영의 안정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제도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필연적으로 다당제가 되기 쉽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통상 여러 정당들이 참여하는 연립 내각이 보편화되어 있어 정국 운영에 별로 문제가 없다. 반면, 대통령제에서 다당제는 여소야대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고 이념이 다른 정당들간의 연정이 쉽지 않아 늘 정국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 또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한 데 야당이 여러 개로 쪼개져 있으면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권력구조개편과 선거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셋째, 국민 공감의 원칙이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접근할 경우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성에 대한 논의가 실종될 위험성이 크다. 가령,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비례성은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의원정수의 과다한 증가다. 지역구 의석이 정당에 배분된 의석보다 많을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의원정수를 기존의 300석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초과 의석이 발생해 의원 정수는 최소 350명까지 늘어 날 수도 있다. 이 제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지난 2017년 9월에 치러진 연방 의회 선거 결과, 명목상 의원 정수는 598명이었지만 초과 의석이 무려 111석 발생해 총 709명이 선출되었다. 더욱이 지역구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정당이 비례구에서만 80석을 배당받았다. 과연 이런 결과들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도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치적 약자인 여성의 국회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여성 대표성 제고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들에게 유리한 원칙만을 고집한다면 합의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은 물 건너간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보다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제도개혁 위원회'를 발족시켜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의석 규모와 상관없이 단 1명만 위원회에 참석시키고 과반수 이상은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 국민이 공감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19-03-14 김형준

[춘추칼럼]대북강경론을 경계한다

북·미, 어느 누구도 '회담 실패' 판단 안해양측 파이 '공정 배분' 심판役 우리가 해야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문제 '분리' 바람직 '한반도 비핵화' 中역할 견인위해 소통 중요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것에 대한 분석과 후속작업들로 분주하다. 우리 정부는 북미회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떠났고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열어 우리의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북미가 진정으로 중요시하는 부분에 대한 협상카드가 분명해졌다. 미국은 북한이 전체 핵프로그램을 꺼내놓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해제할 생각이 없으며,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교환방식이 아니고서는 핵프로그램 모두를 꺼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측의 차이는 지난 30년 북핵협상의 핵심 사항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역사적인 북미 정상 간 세기의 담판이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비핵화 과정과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실패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 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어느 누구도 이번 회담이 실패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북한 언론은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보다는 양 정상 간의 건설적인 논의에 맞춰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자회견과 트위터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는 변함없으며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축소되었고 북한도 핵능력과 관련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대북강경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과거에도 협상이 실패를 하면 늘 핵포기불가론, 협상무용론, 선핵포기론 등이 자리를 잡았다. 실패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이뤄진 것처럼 다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을 규정하기에 앞서 냉정하게 회담의 결과를 분석하고 더 좋은 합의를 위한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협상은 크기가 정해져있는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가 아니다. 파이가 같은 비율로 나눠지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협상 당사자 모두가 그 결과에 만족하면 협상은 '잘' 된 것이다. 또한 양측이 파이의 배분에 있어 문제가 생기면 협상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의 파이가 작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협상 당사자 간 협상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앞으로의 협상은 현재 이번 북미회담의 논의구조를 넘어 파이를 키우는 협상이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최대한 파이를 키워 모든 핵프로그램과 대북제재 해제를 일괄 타결하고 신속히 동시병행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번 회담을 두고 Top-down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나 사실 이번 협상은 Top-down과 실무협상이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다만 최고지도자들의 결정 부담을 덜고 합의 없이 종료되지 않도록 다음번 협상에서는 대부분의 사항이 타결된 이후 정상회담 일정을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양측간 파이가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는 심판의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유도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심판은 한쪽이 소극적으로 공격을 할 경우 주의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양측의 샅바가 헐렁해지면 타이트하게 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제재를 포함한 경제보상조치가 북핵협상의 핵심이 되는 만큼 양측의 신뢰를 조성하기 위한 밑바탕을 우리가 조성해야 한다. 지난 스웨덴의 사례처럼 남북미 3자 실무협의체가 지속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무협의의 결과가 남북미의 정상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재개를 본격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현장확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비록 제재의 프레임웍에 속해있지만 또한 남북관계 차원의 사안이기도 하다. 비핵화 협상에 이 문제들이 연동되어 버리면 남북관계 차원에서 우리의 레버리지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분리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신속히 유도하고 우리의 레버리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중국 또한 이번 북미회담이 협상 없이 종료된 데 대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중국과 우리가 다른 것이 없는 만큼 전략적 소통을 통해 중국의 역할을 견인하는 방법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미세먼지처럼 뿌연 한반도 정세이지만 우리가 이번 회담 결과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더 큰 합의를 이루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고 성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03-07 양무진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