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

 

[홍창진 칼럼]폭력의 원리

사랑이란 명목 폭력행사 비합리적자기생각만 옳다는 이기적 욕심뿐일방적인 강요 지나친 소유욕으로심하게 화낸다면 자신 돌이켜보고상대하기전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40대 가장의 사연입니다. 1남 2녀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두 누이에게 부러움을 샀습니다.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편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하나뿐인 아들을 두고 "집안의 대들보", "가문을 책임질 사람"이라며 사교육은 물론 밥상에서조차 차별해서 잘해주었습니다.하지만 그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지만 "남자가 이 것도 못하느냐", "친척들 볼 낯이 없다"며 비난을 일삼았고,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시엔 심하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두려웠고, 자신만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성년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땐, 단지 아버지와 떨어져 살 수 있다는 이유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다들 괴롭다는 군대생활이 그에겐 오히려 휴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결혼을 했고, 분가를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나는 아버지처럼 자식을 억압하는 부모로 살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그런데, 어느 명절날 부모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던 차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절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며 손찌검을 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억눌려오던 아들은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몰라도 제 자식에겐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화를 낸 아들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다시는 본가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 채 말입니다. 그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아버지를 대해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한 한국의 가정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라 간과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심각하게 다뤄야 합니다. 어느 경우에서든 폭력은 훈육이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즉 가해자의 자기중심적인 아집일뿐더러, 나아가 인격 형성에 큰 장애를 줄 뿐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며,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아무 일도 아닌 듯 덮고 넘어가서는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게 됩니다. 한 번 발생한 폭력은 대부분 습관으로 고착되어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가정폭력의 해결책은 첫 번째가 '격리'입니다. 그다음 가해자의 치료가 따라야 합니다. 만일 가해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격리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데, 때로는 격리의 장기화 자체가 치료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에게 종교가 있다면, 가족이 함께 성직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폭력 가해자의 상당수가 남의 말을 잘 안 듣지만, 믿는 종교의 성직자의 말은 곧잘 듣기 때문입니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이기적 욕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자기 생각만이 절대 진리인 사람에게 자녀는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내 소유물 중 최고인 자식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 용서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폭언 혹은 폭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분명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 욕심, 나를 중심에 둔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간혹'은 병이 아니지만 '상습'은 병입니다.부부 사이의 상습 폭력,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도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느 한쪽이 사랑한다는 감정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자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닌,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살다 보면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상대가 잘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입니다. 화를 내는 직장상사, 술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친구들, 만나기만 하면 비난 일색인 가족들…. 그들 모두 내 생각이 옳고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살면서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상대를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혹시 자기애와 자기연민에 빠져서 멀쩡한 사람에게 상처나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살펴보길 바랍니다. 그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욕심, 내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이 도사리고 있다면 타인을 상대하기에 앞서 내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10-19 홍창진

[홍창진 칼럼]당당한 삶

삶은 나자신이 중심 힘든일 겪어도주어진 여건하에 지킬방법 찾아야경험상 '주변의 진상'들은 안변해그럴땐 '무시·긍휼의 법칙' 적용을부당 처사 분명한 시정 요구 내권리한 청년이 코로나 때문에 밥벌이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이 한시적으로 폐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덩달아 휴직할 수밖에 없었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급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겨우 어느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며칠 후, 한 손님이 아이스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사장님에게 배운 대로 만들었는데 돌아오는 말이 이랬습니다. "너무 차가워 머리가 아플 지경이네요. 다시 만들어주세요." 당혹스러운 속내를 감추고 다시 커피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또 커피가 너무 미지근하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도 못 만들면서 카페에서 일하느냐, 사장 나오라고 해라 등등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퍼부으며 말입니다. 결국 사장이 와서 환불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청년이 당한 수모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돌아간 뒤 사장으로부터 환불한 커피 값을 아르바이트 비용에서 차감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진상 손님에게 시달린 것만도 힘들었는데, 사장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나니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우니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진상 손님에게 시달린 것도 힘든데, 억울한 손해까지 입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러울지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주어진 여건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삶을 영위할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 주변인들에게 마음을 다치는 일이 거듭되면 결국 이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내 삶을 망치고 맙니다. 매일 겪는 힘든 일들을 상처가 아닌 보람으로 바꾸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겪은 일을 통해 내가 배우고 얻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 보면서, 내일은 조금 더 강한 내가 되리라 다짐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주변인들과의 관계 정립도 다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험으로 비춰볼 때 소위 '진상'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대할 때에는 일명 '진상 불변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첫째, 무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끝까지 그저 "예"라고 응대하는 것입니다. 속으로야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겉으로는 "예" 하며 무시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장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둘째, 그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각자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대부분은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를 무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사람을 성숙한 내가 좀 봐준다는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대해보십시오. 이 두 가지 지혜를 갖추면 몰상식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런데, 앞서 말한 청년의 경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사장의 처우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직원의 실수가 아님에도, 그런 비인도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법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청년의 입장에서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부당한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후회를 넘어 자책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당한 처사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자존심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며 보람을 만드는 기둥입니다. 코로나라는 재앙이 생계의 어려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스스로 부당한 처우를 받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인생은 변화무쌍합니다. 좋은 일도 있고 불행한 일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거친 파도 위에 있든 순풍을 타고 있든 흔들림 없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한 청년을 소개했지만, 그의 모습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나를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당당한 삶을 살게 되고 어떤 위기도 보람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9-07 홍창진

[홍창진 칼럼]원수는 내 운명

사람이 살면서 한번 척을 지게되면 화해를 시도해도 회복이 쉽지않다서로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용서 차원서 상대방 생각하기 때문미워할 바엔 곁에 두고 사는 지혜를가끔 신자들과의 모임에서 묻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원수진 사람이 없는 분 계십니까?" 원수진 사람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업을 같이 하다가 돈 문제로 친구와 적이 되기도 하고 연애 중에 상대가 신의를 저버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직장 동료가 자기를 헐뜯고 다닌 걸 뒤늦게 알고 척을 지기도 하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시댁과 원수가 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꼭 드러내놓고 다투지 않더라도 내 마음 안에서 이미 관계를 끊어버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한번 척을 지게 되면 나중에 화해를 시도한다 해도 관계가 회복되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잘못은 상대에게 있고 나는 용서하려는 차원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도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거기에는 이런저런 변명이 붙습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거나 지적을 하면 화해하려는 마음은 더 큰 분노로 바뀝니다. 일전에 미술인들과 미술 시장 활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의 낙후된 어느 지역에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재건축을 진행한지 15년이 되도록 진전이 안 돼 곧 계획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는 흉가나 다름없이 방치되어 있었지요. 만일 미술인들이 이 헌 아파트를 싼값에 한 채씩 매입한다면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에 위협받지 않는 것은 물론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신나게 이런저런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재건축 조합이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우리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에 앞장섰던 저와 집행부는 마치 사기꾼처럼 몰려 비난을 받았지요. "천주교 신부여서 믿고 함께했는데 이게 뭐냐! 신부도 사기 치냐!" 소액이지만 십시일반 부담했던 조합 회비를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는 이도 있었습니다. 운영비 한 푼 받기는커녕 오히려 쌈짓돈 털어 기부까지 했는데 결국 인연이 끊긴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어언 10여 년. 돌이켜보면 여전히 속이 상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서 그래도 관계를 회복해야겠다 싶어 인연이 끊긴 이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냉대로 마음만 혼란해질 뿐 마음이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밀 이삭을 심었는데 가라지 싹이 보이네요. 우리가 가라지들의 싹을 잘라버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놔두어라. 지금 가라지 싹을 뽑으려다 밀까지 뽑을 수 있다. 그러니 추수 때에 가라지와 밀이 선명히 드러나면 가라지를 뿌리째 뽑아 불에 태워버려라"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선한 이와 악한 이가 함께 살고 있는데 악한 이는 종말에 가서 내가 심판할 테니 너희는 남을 심판하려들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빗댄 것입니다. 원수져 싸울 때 보면 어느 한 쪽이 옳은 듯 보여도 서로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저이가 옳고 또 어느 측면에서 보면 그이가 옳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상황까지 결부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란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갈등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밀이고 상대는 가라지라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라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적으로 두고 심판하는 건 내 인생의 폭을 좁게 만들 뿐입니다. 결국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원수는 나의 운명입니다. 피하려 해도 원수 없이 살 수는 없는 게 인생사입니다. 보지 않고 멀리 지내도 기억에 남아 수시로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멀리 보내려 하면 할수록 그는 끈질기게 나를 찾아옵니다. 그럴 바에야 미워하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곁에 두고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하고 그를 풀어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7-27 홍창진

[홍창진 칼럼]가족은 운명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가장의 고민'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의 그늘차단할수록 옥죄는 부모 형제 굴레가족,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는 운명마음 열고 받아들이면 삶의 안식처아내와 자녀 둘을 둔 40대 가장의 고민입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 대학을 마쳤고 그 어렵다던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까지 꾸렸으니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생활이 안정된 후 그는 자녀교육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개인교사를 붙여 영재학교에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더 힘을 써서 미국 명문대에 진학시킬 계획입니다. 부모에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던 자신의 지난날과 달리 사랑하는 자녀들은 그 어떤 아픔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자신에게도 많은 보상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고급 주택에 최고급 승용차를 갖고, 주말이면 골프를 즐기면서 가난으로 맺힌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어느 한 가지인들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삶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모르는 괴로움을 간직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단순히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주 후에는 항상 폭력이 따랐습니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폭행했고, 어린 그와 동생들도 무차별적으로 손을 댔습니다. 그가 그토록 공부에 매진한 것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굳은 의지로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두 동생은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로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무위도식하는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지금도 매달 두 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내 모르게 동생들을 챙기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참고 견딜 만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두어 번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는 그를 고통으로 내몰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했고, 참다못한 어머니는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모형제와 지금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노력 끝에 이룬 자신의 가정이 부모와 형제들로 인해 망가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차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단하면 할수록 부모형제의 굴레는 강하게 자신을 압박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날이 계속되다 보니 불면증과 우울증이 찾아왔고, 급기야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좋은 집에 고급 승용차도 더 이상 뿌듯하지 않았고, 주말에 골프를 치러 나서도 기분만 더 가라앉았습니다. 그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무슨 일을 해도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별반 다를 게 없는 나날이 그를 조금씩 병들게 했습니다.가족은 운명입니다.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부모는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부정합니다. 꽤 긴 날을 한탄하고 우울해 하다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자신의 인생 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남보다 조금 부족한 그 아이가 자신에게 사랑을 알려주고, 살아가는 보람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그도 이제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는 어머니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트라우마로 사회에 적응 못하는 형제를 더 이상 부끄러워해선 안 됩니다. 가족은 객체인 듯 보여도, 한 나무에서 자란 가지라는 걸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됩니다. 아내와 자녀들도 그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아야 합니다. 용기를 내 부모형제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삶의 무게를 혼자 견뎌서는 안 됩니다. 가족은, 피하고 외면할 때 속박과 굴레이지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때 세상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든든한 안식처이자 버팀목이 됩니다.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감추고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내 인생의 일부로 생각하고 살다 보면, 현실이 바뀌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삶이 망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장애인 부모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 아이가 없었다면 평생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거고, 삶의 가치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6-15 홍창진

[홍창진 칼럼]정직한 사람이 만드는 사회

코로나 신천지사태 위기를 겪으며조사 불응·확진판정자 접촉 숨기기사이비종교 거짓말 행태 슬픈 현실위선 넘치는 우리사회 민낯 보는듯소외된 이웃 진심의 위로 손길 필요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고 바이러스 전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고 일상적인 생활에도 여러 제약이 따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에서 신천지라는 사이비 집단이 문제의 중심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 과정 중에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지요. 이런 시급한 상황에서도 전염 가능성이 있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거나 조사에 불응해 국가의 방역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한 신도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과 접촉한 사실도 숨긴 채 병원에 출근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종교 행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사이비 종교나 사기 등 '사' 자로 시작하는 현상의 특징은 철저히 속이려는 대상의 입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4년째 취업 준비 중인 청년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취직입니다. 그러면 취업을 미끼로 접근합니다. 취직을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가난'입니다. 가난은 배움도 부족하게 하고 인맥도 부족하게 합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결국 취업 현장에서도 소외되게 마련입니다. 가난이 서러운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고 기회에서 밀려난 열패감과 열등의식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는 이런 위로를 잘해줍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위로를 전하기 위해 지도자급이 아닌 같은 처지의 동년배 교도를 접근시킵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처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순간 이미 한 청년의 영혼은 그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다음 단계는 공동체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집단 활동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직업을 제공합니다. 다단계식 직장을 통해서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자기들만 구원된다는 선민의식만 심어주면 그때부터는 행복이 충만한 로봇으로 변신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받은 고마움에서 시작했지만 지도부와 그의 측근 집단이 설계한 영혼 탈취 프로그램에 의해서 상식을 넘어서는 로봇으로 변신합니다.사이비 교주들은 목적이 뚜렷합니다. 거짓 신을 만들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기는 재물만 가로채 가지만 사이비 종교는 재물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영혼까지 가로채 갑니다. 그래서 사기는 당하는 순간 바로 알지만 사이비 종교는 당하고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는 수없이 많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고 그 소외된 심정을 정직하게 위로해주는 이웃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정치권의 정의사회 구현은 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기성 종교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위로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지만,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들의 골수를 빼먹고 싶은 사이비 교주들뿐입니다.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밀려나면 사이비와 사기는 이 사회에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19와 신천지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거짓 사랑과 거짓 위로를 통해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위선자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위선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닥치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흉측한 우리 사회 민낯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정상화할 수 있을까? 신천지를 제거하면 가능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소외 계층에게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이비가 거짓 위로로 팽배하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보통의 정직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사이비들 때문에 두 번 소외당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3-23 홍창진

[홍창진 칼럼]좋은 친구

나이 들수록 '내 주변 관계 유지얼마나 잘하나'가 행복지수 가늠깊은 고독·우울증에 시달린다면친구관계 돌아보라고 말해줘주저말고 서로 사랑나누길 바라얼마 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요즘에는 회갑이라고 해도 친지나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지 않고 부부 동반, 혹은 친구끼리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여행 경비를 드리는 것으로 회갑 선물을 대신합니다. 간혹 누가 회갑연을 한다고 하면 웬 구시대 유물이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지인을 모두 불러다 잔치를 벌였습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가난을 몸소 실천해야 하는 성직자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회갑잔치를 벌이느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초대장까지 만들어 보냈습니다. 다만 초대장엔 '선물은 사절, 회비만 받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한마디로 회갑연이라고 해도 각자 회비 내고 밥 먹자는 얘기였죠. 회갑 잔치를 하지 않는 이유가 수명이 늘어서라고 합니다. 회갑을 맞는 게 전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장수를 축하하려면 칠순, 아니 팔순은 돼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부터 내려오는 이런 잔치들이 꼭 장수만을 축하하는 의미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갑, 칠순, 팔순은 물론이고 모든 생일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일은 나와 사랑을 나눈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큰 의미가 되었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요즘의 생일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유대의 끈을 돈독히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일마저 혼자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SNS만 봐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생일을 보낸다는 사연이 종종 눈에 띕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번거로워하는 이도 있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혹시 나를 사랑해주는,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요? 중국 사람들은 친구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저 아는 사이를 '친구', 관계를 맺은 지 3년 이상 되었고 서로 해를 끼칠 일이 없는 가까운 이를 '좋은 친구', 나를 대신해 감옥살이까지 해줄 사람을 '오랜 친구'라 부른다고 합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들을 살펴보면, 우리도 이 기준으로 친구를 구별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생일에 혼자 보내지 마십시오. '좋은 친구'는 꼭, '오랜 친구'는 반드시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시기 바랍니다. 바빠서, 혹은 부담을 주기 싫어서 생일 초대를 하지 않는 건 친구를 밀어내고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일 년 중 생일잔치에 몇 번이나 초대되고 있습니까? 설혹 초대받았더라도, 내 생일에 그를 초대한 적이 없다면 그 자리가 겸연쩍고 민망할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초대 자리를 피하게 되고, 친구 사이가 소원해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좋은 친구'가 그냥 '친구'로 바뀌고, '친구'는 '남'이 될지도 모릅니다.나이가 들수록 행복지수를 가늠 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나를 둘러싼 관계의 넓이와 깊이를 얼마나 잘 유지하고 키우느냐'입니다. 젊은 시절은 그저 자기 잘난 맛으로 행복지수를 올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인생은 고독해집니다. 이 고독이 깊어지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과 우울을 호소하며 저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친구 관계를 돌아보라고 말해줍니다. 친구들에게 소외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는 사실 한 번 틀어지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친구 관계는 회복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친구 관계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제 회갑 잔치의 제목은 '세 번째 스무 살 잔치'였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장수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늙어간다고 생각하니 나이 먹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되레 살아온 시간이 내게 이 사람들을 선물해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생일잔치를 벌이고 사랑의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20-02-10 홍창진

[홍창진 칼럼]마음의 유익균

비만 큰영향 미치는 장내 유해균유익균 많으면 날씬함 유지 쉬워우리 마음 속도 마찬가지로 작용고독을 택하면 유해균 키우는 것몰두할 수 있는 즐거운일 찾아야'비만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시대적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비만은 건강을 해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아침방송만 해도 비만 탈출 비법을 종종 소개합니다. 저 또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관련 방송을 보면 일단 채널을 고정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니, 비만의 원인이 단지 과식에만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과식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장내에 있는 유해균이라고 합니다. 우리 장 안에는 수많은 균이 존재하는데,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으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반면 유익균이 더 많은 사람은 설사 과식을 좀 하더라도 날씬한 몸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비만을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장내에 유익균을 키워야 하고, 운동이나 식이조절은 그다음이라는 것이지요. 가만히 보면, 유익균과 유해균은 장내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고백성사를 하러 성당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작년에 범한 죄를 또 짓고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어느 꼬맹이는 고백소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동생에게 욕도 했고, 서로 백 번도 넘게 싸웠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청년은 직장동료가 너무 미워 마음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중년의 주부는 "남편만 없으면 죄지을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불안과 분노를 안고 살다 보면 불면증도 쉽게 찾아오고 마음의 괴로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그저 우울하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은 일단 서로 같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생깁니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시달립니다.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어떨까요. 아주 작은 이해관계 하나로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달팽이가 껍질 속에 숨듯,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고독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끊고 혼자 있기를 택하는 건, 괴로움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장에 빗대어 말하면, 고독을 선택하는 건 유해균을 키우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은 한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하거나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좀먹는 걱정과 슬픔을 날려버리려면, 마음 안에 유익균을 대량 투입해야 합니다. 마음의 유익균 중 대표격은 '몰입'입니다. 주어진 일에 보다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가치를 느낄 만한 대상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유익균은 '명상'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유익균은 여행이든 운동이든 자기가 제일로 좋아하는 취미에 심취해 사는 것입니다.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짜증 내는 일이 없습니다.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오래 담아두면 앙금이 생깁니다. 앙금을 없애려고 수저로 휘적거리면, 물만 흐려질 뿐 컵 바닥에 눌어붙은 침전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럴 땐 앙금이 있는 채로 수돗물을 콸콸 쏟아부으면 됩니다. 힘찬 물줄기에 앙금이 사라지고 어느덧 컵은 깨끗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안의 괴로움, 슬픔, 우울 짜증을 억지로 없애려는 건 마치 비만에서 탈출하겠다고 억지로 배고픔을 참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억누르고 참다가 결국엔 폭발하고 맙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면 유익균을 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겠다고 그에 집중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에 안정을 주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장에 좋은 유익균을 넣어주듯, 우리 마음 안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 넣어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2-30 홍창진

[홍창진 칼럼]친절할 준비

내 기분 상관없이 누굴 만나든지무조건 '친절, 친절, 친절!' 외친후억지로라도 환한 미소 짓기로 결심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울감 횟수가점점 줄어드는 '작은 기적'을 체험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남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랍니다.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나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일까요? 휴대전화를 열고 최근 문자를 나눈 열 사람을 차례차례 떠올리면서 점수를 한번 매겨 보십시오. 과연 이 사람이 나를 친절하다고 생각할지 따져보는 겁니다. '그렇다'는 1점, '잘 모르겠다'는 0점, '아닐 것 같다'는 -1점으로 정하고 총점을 산출해보십시오. 상대가 아닌 내 생각이 기준이다 보니 이 점수는 십중팔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그 점수에서 50%는 삭감해야 객관적인 점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 늘 다니던 체육관에 회원 등록을 다시 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늘 친절하던 직원이 그날따라 너무 신경질적으로 업무 처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사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내 돈 내고 이용하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욱이 그 사람의 월급은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다행히 잘 참고 등록을 마쳤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서비스 데스크에서 그분을 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처럼 또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가서는 당시 전후 과정을 설명하고 그땐 왜 그랬는지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되레 "제가 그랬었나요?"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수차례에 걸쳐 사과를 거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두고, 적어도 업무에 임할 때만큼은 친절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고 자부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마음속 기분이 표출되게 마련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 자체가 밖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족 간에 다툼이 있거나, 병에 걸렸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말하지 않아도 그 상황이 밖으로 표현됩니다. 반대로 승진이나 시험 합격 등 기쁜 상황도 밖으로 드러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성당의 신부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위로와 기도를 구하고자 찾아오는 분도 있고, 성당 업무 처리를 위해 대면하는 분도 있습니다. 보다 친절하게 그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내가 친절했는지 불친절했는지는 만남이 끝난 후에 바로 압니다. 조금이라도 불친절했다면 상대방의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고, 체증이 느껴질 만큼 마음이 답답합니다. 아들의 암 발병으로 반죽음이 돼 찾아온 어머니를 대하면서 그분의 아픔에 깊이 동참해야 하는데 "열심히 기도하세요"라는 건조한 답변을 드리고 면담을 마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신자는 성당의 발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건의합니다. 그에 대해 별 설명도 없이 "안돼요"라고 퉁명스럽게 답변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가끔 있는 일입니다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제가 가끔 하는(몰라서 그렇지, 자주일 수도 있겠네요) '불친절 실수'는 주로 제 기분이 우울할 때 벌어집니다. 결국 저는 기분이 좋으면 친절한 사람이고, 기분이 나쁘면 불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건데,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래서 저는 내 기분과 상관없이 늘 친절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좀 우울한 기분이 들더라도 누구를 만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친절, 친절, 친절!" 세 번을 외친 다음 억지로라도 이가 드러날 만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남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친절의 준비 자세를 갖추는 일종의 주술과 예비동작인 셈입니다. 내 기분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위로받고 어떤 사람은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일입니다.그런데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들던 우울한 기분의 정도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들던 우울이라는 녀석의 방문횟수가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속담처럼, 친절할 준비를 꾸준히 하다 보니, 내 안의 우울감도 따라 줄어드는 작은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1-18 홍창진

[홍창진 칼럼]마음의 문턱

상대방이 호의적이지 않는 이유는생각보다 높은 내마음의 문턱 원인누군가 말문 닫는다면 나를 돌아봐그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관찰하고적극적으로 물어 관계를 회복해야산다는 건 결국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서로 주거나 받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를 시작으로 형제, 친구 이어서 학교와 직장 인연까지 평생에 걸쳐 무수한 인간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여러 관계 속에 돈이든 마음이든 무엇을 얼마만큼 주고받느냐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가 평가됩니다. 그 평가에 따라 상처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지요.나는 이 정도면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턱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때 상대는 아쉬워하고 아쉬운 표현을 들은 사람은 "너는 내게 무얼 해주었느냐"며 화를 냅니다. 하지만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봐야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서먹해지고 맙니다.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입니다. 그 프로그램은 어떤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5분간 대화 없이 눈 맞춤을 하고 그다음 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제가 본 장면에서는 스물여섯의 미혼모가 일곱 살 난 아들과 출연했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는 순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젖은 눈을 쳐다보다말다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약간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눈 맞춤이 진행되기 전에 왜 어린 아들과 눈을 맞추고 싶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실 엄마는 스물이 채 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아빠와 그의 집안에서 낙태를 종용해 결국 외부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아빠 없이 홀로 아이를 낳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일곱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가출을 했다는 겁니다. 엄마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5분간의 눈 맞춤을 끝낸 엄마와 아이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먼저 물었습니다. "왜 그때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 거니?" 한참 동안 몸을 꼬며 말을 않던 아이가 엄마의 거듭된 질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큰 소리로 말했잖아."그토록 사랑한 아들이지만 마음만 앞섰을 뿐 표현은 늘 큰 소리로 화난 듯 말하기 일쑤였던 겁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려니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겠습니까? 각박한 현실을 홀로 맞서 살아내려니 사랑하는 아이에게조차 지친 마음과 짜증이 묻어나온 것입니다. 아들을 얼싸안으며 엄마는 "앞으로 절대 큰소리로 말하지 않을게. 엄마가 잘못했어"라며 울먹였습니다. 아이는 엄마 품 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매일 뽀뽀해주고 안아줘."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처럼 나를 돌아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을 향한 내 마음의 문턱이 무척 낮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친구와 동료에게 나는 할 만큼 잘하는데 왜 나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투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높은 내 마음의 문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상대를 관찰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주 물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말문을 닫는다면 그건 내 마음의 문턱에 하자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그를 세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그 답이 구해지면 내 문턱을 더 낮춰서 그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많이 행복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10-07 홍창진

[홍창진 칼럼]열린 마음

'밥 잘 사주는' 누나·오빠들 인기내 것 내어주는 건 사실 쉽지않아결혼 후 가정 이루면 닫히는 지갑산술적 돈 계산만 하면 친구 떠나베푼 지출 내역 많을수록 더 행복성당의 남자 청년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사람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입니다. 여자 청년들은 밥 잘 사주는 잘생긴 오빠를 제일 좋아하지요. 젊은이들뿐이 아닙니다. 칠십이 넘은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지갑을 잘 여는 사람이 제일 인기가 좋습니다. 밥을 사준다는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내 것을 준다는 기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것을 내어주는 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비롯해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가진 것을 움켜쥐고 끌어안기 바쁠 뿐, 여간해서는 선뜻 내놓지 않는 것이 보통의 모습입니다. 나 혼자 사는 것도 너무 힘겨워 작은 것 하나 나눌 여유가 없다는 사고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가족조차 나누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고 사정이 어려운 형제가 생기면 없는 형편에서도 서로 돕곤 하지만, 결혼으로 각자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 돈 지갑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유산이라도 좀 남기면 변호사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 것을 챙기기에 안달하지 먼저 나서서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럴 때 유독 공평한 것이 정의라고 강조합니다.천주교 사제로서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한결같이 깨닫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간 서로 사랑하며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하나같이 바쁘고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피하기만 합니다. 가끔 안부라도 묻는 사람이라곤 병자 방문이라는 성당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찾아주는 성당 신부가 고작입니다. 그러다가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가족마저 떠나고 돈 주고 고용한 간병인만 남고 맙니다.어느 환우 분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꺼져가는 생명 하나만 겨우 쥔 채 깨달은 것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를 진정 사랑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가진 걸 함께 나누었더라면 그도 기쁘고 나도 기뻤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외롭게 살아왔을까요? 가족조차 나 중심으로만 사랑했지 그들이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했습니다. 너무 외롭고 쓸쓸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처절히 후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00세 시대'라는 보험회사의 선전 문구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한다며 50세부터 남은 50년의 생활비를 저축하고 노후를 위협하는 지출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삭막한 셈법으로는 친구에게 밥 한번 사기 어렵습니다. 병문안을 가서 봉투를 전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모처럼 오랜 친구끼리 가진 모임에서 식사비용으로 회비를 내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회비 내기도 어려운 친구들은 점점 모임에서 사라집니다. 돈을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친구가 떠나갑니다. 그러나 돈을 마음의 크기로 계산하면 친구들이 모입니다. 우선 마음을 열고 친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친구를 만나서 그가 아픈지, 기쁜지, 외로운지 살펴야 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다 보면 밥 살 일이 자연스럽게 생기겠지요. 어느 순간에는 내가 얻어먹을 날도 있을 겁니다. 서로 챙기고 사랑해주는 관계 속에서 돈은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을 너무 산술적 계산에 맡겨두어선 안 됩니다. 숫자로 따질수록 친구는 사라지고 결국 외로움 속에 홀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통장의 잔고가 여생의 행복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생명과 재물은 절대 한 세트가 아닙니다.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순간 내 곁에서 울어줄 친구는 통장 잔고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생의 행복은 친구에게 베푼 지출 내역이 많은 사람에게 더 유리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8-26 홍창진

[홍창진 칼럼]부부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일방적일땐 상처… 공감능력 필요인격은 물론 '마음'까지 보살펴야이혼위기 왔을 때 이혼은 답 아냐부부의 인연 지속위해 '사랑이 답'부부로 인연을 맺고 사는 일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둘을 연결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부부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이어서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주고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받는다면 반드시 한 편에 상처가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랑을 유지하려면 공감능력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살피고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공감능력이 부족해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국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때로 돌아서는 부부가 많습니다. 연애 감정도 사라지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지치면서 어느새 부부의 알맹이인 사랑은 사라지고 결혼 전 솔로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알맹이를 잃고 거죽만 남은 채 홀로 된 사람들은 가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알맹이를 채워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한 부부 생활을 다시 시작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전에 맺은 부부의 인연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식어버린 자기감정만 보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랑에 있어 감정은 일부일 뿐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부 사랑은 두 인격이 진지하게 나누는 보다 책임 있는 행위입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한 축구 선수에게 다시 한 번 공을 차도록 기회를 주는 심판은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의 알맹이를 누군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사별이나 사기 결혼 외에 재혼을 반대합니다. 최근 저명한 인사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며 지금 배우자와의 이혼을 법정 다툼으로 몰고 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세상의 평가도 다양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을 지속할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신성함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일전에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성당에 초상이 생겼습니다. 50대 후반에 5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거자였습니다. 그는 성당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이어서 한 달에 한 번 성당의 봉사자들이 방문해 간단한 식음료를 챙겨드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봉사자들이 한 달 주기가 되어 그 집을 가보니 그는 이미 3주 전에 사망해 시신에서 악취가 나고 있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연고자를 찾았습니다. 동생이 천주교 신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봉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동생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당시 큰 수도원 원장님이었습니다. 저도 명성을 들어 잘 아는 신부님이었지요.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로마 유학을 거쳐 수도원장에 이르는 종교계의 엘리트였습니다.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도원을 들어갈 때만 해도 형님은 사업가로 성공한 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부양은 걱정하지 않고 신부의 길을 선택했는데 갑자기 닥친 사업실패와 이혼이 형님을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장에라도 수도원을 나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내가 맺은 하느님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부들은 하느님과 사랑에 빠져 하느님과 결혼하는 사람들이니 그분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신부의 알맹이는 하느님 사랑이니까요.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하는 사랑은 그와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공감능력이 없는 아이처럼 자기만 좋으면 내 짝은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단순한 자기감정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인격은 물론 세세한 마음까지 보살피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내가 너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혼의 위기가 왔을 때에 이혼은 답이 아닙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공감능력을 회복해 부부의 인연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만 주고 본인도 상처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7-15 홍창진

[홍창진 칼럼]안락사

여론조사 따르면 국민 80%가 찬성우리나라 아직까지 법적으로 금지죽음, 한사람의 인생 투영하는 거울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 되짚어두려워 외면 '마지막 선물' 놓치는 것한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0% 이상이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게 보내기 위해서, 두 번째가 남은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자발적 안락사를 돕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최근 3년간 두 명의 한국인이 이미 이 단체를 통해 죽음을 맞이했고,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한국인이 백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호주의 과학자 구달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다만 작년부터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되자마자 연명치료 거부 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서는 등 '자발적 죽음'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적어도 한 달에 다섯 번 이상 죽음을 마주합니다. 신자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종부성사라는 종교의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의연했던 사람이더라도 죽음 직전에서는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은 조금이라도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그러나 인간의 수명이란 이미 정해진 것이고, 그 마지막을 잘 수용하는 것이 인생을 완성 짓는 마지막 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본인도 가족도 모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단순히 생명이 꺼지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최대한 고통 없이 죽기를 원합니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조력으로 죽음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겪게 되는 고통은 삶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많은 환자들은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또한 자기 인생에 함께한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전 생애 중 죽음을 앞두고 겪는 고통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값진 순간일는지 모릅니다.죽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살면서 나누고 베풀 줄 알았던 사람들은 죽음도 건강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까운 지인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중병으로 말도 잘 못했던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미소로 맞기로 결심하고, 남은 이들에게 그 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생명은 값진 것이고 고통 중에도 빛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죽음을 앞둔 고통 중에 깨달은 것입니다. 그를 찾아왔던 많은 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반성했습니다. 건강한 몸을 하고도 온갖 불평으로 소중한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반면 사는 동안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죽음 전에 겪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인생을 혼자 살아왔던 그는 죽음을 만나면서 더욱더 외로움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더할 나위 없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요즘 안락사에 관한 시류는 죽음을 그저 한순간 벌어지는 현상학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는 생애 전반을 두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나 가족은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이라도 인생의 의미를 잘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고통이라는 과정도 자연의 섭리이고 이 고통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게 해줍니다. 고통이 두려워 죽음을 앞둔 시간을 외면하려는 것은 어쩌면 생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을 놓치는 것일지 모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변을 못 가린다고 흉보지 않습니다. 생을 마감하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어느 누가 존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죽음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우리는 지금 죽음의 일부를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6-03 홍창진

[홍창진 칼럼]유혹

욕심앞에 휩쓸리기 쉬운 세태속내것에 집착하다 파멸초래 일쑤사회냉대 체험 장애아동 부모들사랑 실천없으면 이웃 함께 불행유혹 물리친 사람 주위에 행복줘살다보면 여러 가지 유혹을 만나게 마련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돈, 권력, 이성의 유혹이 아닐까 합니다. 이 세 가지 유혹에 잘못 빠지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뉴스나 신문에서 종종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후배나 자녀들에게 잘못된 유혹에 현혹되면 한순간에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서민들의 각박한 삶에서 유혹을 받는다고 할만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조직을 배신하고 정보를 넘기면 몇억원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사람도 없고, 반대로 돈으로 남을 매수할 일도 없습니다. 직장에서 한 단계 높은 자리로 승진 정도는 할 수 있을지언정, 누군가의 삶을 쥐락펴락할 만큼의 권력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성의 유혹으로 말하자면 물 건너간지 오래입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내게 누가 다가오겠습니까. 말하자면 유혹을 당할 상황이 원천봉쇄된 것이지요.그러면 이 시대의 서민들은 유혹이라는 현실에서 완전히 해방된 걸까요?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혹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출세한 사람이나 서민이나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욕심은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유혹은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더 자주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최근에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어머니가 친구 두 명과 함께 딸의 1년 선배를 심각하게 구타했고 그 영상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같은 댄스학원을 다니는 1년 터울 두 여학생은 댄스교습 후 함께 술을 마시고 각자 귀가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온 딸을 본 중2 어머니는 딸을 다그치는 중에 중3 언니와 함께 마셨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아이를 불러내 본인의 친구 두 명과 함께 무자비하게 구타한 것입니다. 거친 폭력에 아이가 항의하자 가해자는 엄마 같은 심정으로 잘 되라고 때렸다고 했고, 아이는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지 않느냐며 맞섰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항변에 가해자는 이렇게 퍼부었습니다. "너는 엄마 없잖아. 이 ***야!(욕설)" 아이는 오래전에 부모가 이혼해 엄마 없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욕심은 내 것만이 우선이라는 애착에서 나옵니다. 내 딸만이 귀중하기 때문에 내 딸을 망치는 남의 딸은 처단의 대상이 됩니다. 자기 것에 너무 애착한 나머지 남의 것을 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노후자금을 마련해놓고 그것에 집착해 가난한 친척을 외면하는 일, 동료를 밀어내고라도 내 자리를 지키고 싶어 내 공만 앞세우는 것 등 양심의 문을 닫게 하는 수많은 갈등 상황이 바로 이 시대의 유혹입니다.15년째 장애어린이 합창단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어린이의 부모들도 오랫동안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자기 아이를 보살피기만도 벅찬 상황에서 다른 분들의 아이들까지 서로 걱정하며 보살펴줍니다. 뿐만 아니라 비장애가정인 친척들의 살림도 걱정해 줍니다. 누가 보더라도 부족한 형편인데도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분들이라고 왜 유혹이 없겠습니까? 이분들도 자기 것은 하나라도 더 지키고 싶고, 남과 나누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녀의 장애에 대한 이 사회의 냉대를 체험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나도 이웃도 함께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유혹은 달콤하여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되돌리기 어려운 고통을 초래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유혹을 거부하고 사랑을 선택하면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달콤합니다. 하나를 지키려는 상황도 알겠고, 이 시대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나 나눔의 문 하나 정도는 열어 놓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유혹은 욕심을 자극해 사랑을 마비시킵니다. 사랑의 마비가 감정조절 장애입니다.이런 사람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사랑하려는 유혹을 물리친 사람은 따뜻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4-22 홍창진

[홍창진 칼럼]상실

보이지 않는 가치 '사랑' 잃어버려마음 한구석 인두로 지진듯 '아파'자기중심적 사람 이웃에게 상처만사랑한것 후회도 괴로워도 마세요서로 다독여주며 살아가면 되기에살면서 생기는 아픔 중에 가장 큰 것은 상실로 인한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나 사고로 생긴 아픔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복됩니다. 그러나 상실로 생긴 아픔은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마음 한구석을 인두로 지져놓은 것처럼, 이 아픔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실은 어떤 대상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상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재산을 잃어도 회복할 수 있다면 상실이 아닙니다.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 역시 상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분실입니다. 상실은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평생을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크나큰 상실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인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육십 대 중반의 어느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이 어머니는 최근 상실의 아픔으로 식사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다니던 성당에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아들로부터 사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사랑을 상실했습니다.그분은 몇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모든 유산을 아들에게 넘기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매달 아들이 보내주는 소정의 생활비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활비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면 아들은 그제야 짜증을 내며 돈을 보내왔습니다. 아들의 형편이 걱정이 돼 연락도 못하고 기다리면, 두 달이 지나서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견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부부가 찾아와 이제부터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살겠으니, 살고 있던 어머니의 집을 팔고 살림을 합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선뜻 그러자고 허락하고 아들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다던 아들 내외는 살림을 합친 뒤 돌변했습니다. 용돈을 주기는커녕, 어머니를 혼자 둔 채 자기 식구들끼리 외식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빈말이라도 함께 가자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저 손주들 뒷바라지만 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 살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정신이 나갔느냐", "돈이 어디 있느냐"며 화를 내더라는 겁니다. 아들의 사랑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상실에서 오는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어 지금까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줄 믿고 아들의 사랑을 간직하고 살다가 그만 그 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어머니 입장에선 상실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큰 가치는 없습니다. 사랑보다 재산을 더 탐한 아들의 욕심 때문에 어머니는 깊은 상실을 겪고 말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랑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모두 사랑의 고리로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물론이고 이웃과 친구와 동료에 이르기까지 크기에 차이는 있어도 모두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잘 살펴보면 유독 자기중심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이웃에게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그러나 결국 사랑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마십시오. 상실감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을 재주로 타고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실로 괴로워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서로 다독여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3-11 홍창진

[홍창진 칼럼]약속

사람과 사람 연결하는 끈과 같아지키면 이어지고 안 지키면 끊어져세상의 모든 약속은 경중이 없어평생 같이 살 사람 잃지 않는 행위나 먼저 반드시 지키는 사람 돼야약속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키면 이어지고 안 지키면 끊어지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은 쪽은 충실히 지키려 하고 관계를 지속하건 안 하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쪽은 약속을 소홀히 합니다.인간관계는 일을 하면서 생기기도 하고 일상의 사교를 하면서 생기기도 합니다. 일은 자연스럽게 갑과 을이 형성됩니다. 보통 갑은 약속을 어겨도 용서가 된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을은 갑의 약속 불이행으로 관계를 끊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약속을 잡고 그것이 이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사교는 갑과 을이 없습니다. 따라서 약속의 불이행은 머지않은 시기에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일이든 사교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절교를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는 사람 명단에 있을 뿐, 의미 없는 인사만 나누는 사이로 먼발치에 둡니다. 그가 아무리 갑이라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연극인들 식사 모임에 초대되어 회식을 하던 중에 어떤 청년이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이제 연기를 시작한 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1년도 지난 일이라 잊고 지냈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문자로 신년 인사드리고 싶다고 날짜를 달라고 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밤 급한 오디션 하나가 생겨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약속도 못 잡았는데 그리고 그 약속에 맞추어 다음 약속의 동선도 맞추어 놓았는데 다 흐트러지게 되었습니다. 신인에게 오디션은 중요한 일이고 본인이 생각할 때는 약속을 파기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OK, 파이팅"이라는 답신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청년이 다음에 또 약속을 잡자고 하면 잡지 않을 것입니다.소중한 것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지나고 보면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 연결되고 그 신뢰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누군가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확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이고 기쁨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신뢰는 좋은 일을 도모하게 되고 함께한 일에 대한 결실도 좋게 됩니다. 약속은 사람하고 하는 것이지 일의 가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약속을 취소하는 이유가 일에 대한 가치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일만 남습니다. 국가의 수장들도 국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하고, 정치인도 국민과 약속을 하고, 조그만 조직에서도 리더와 구성원이 약속을 합니다. 가족들끼리도 약속을 하고, 연인들끼리도 약속을 하며 친구들끼리도 약속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약속은 경중이 없습니다. 모두 귀중하고 존엄합니다. 왜냐하면 약속은 존엄한 인간들끼리 하는 존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약을 해놓고 다음 약속이 자기 기준으로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선약을 취소하는 행위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어기는 행위입니다.세상에 지키지 못하는 약속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생각하거나 지나친 욕심으로 사람보다는 일을 우선으로 택하기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 가족의 급한 병환이나 급한 업무 등 상대가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평생 같이 살 좋은 사람들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행위입니다.따라서 우선 본인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이웃에게 존중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십시오. 그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존감도 없는 사람이고 누구를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이별하세요.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만 인연을 맺고 살아가십시오. 좋은 사람들과만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1-21 홍창진

[홍창진 칼럼]한반도 평화

'확실한 핵 포기'·'체제 보장 유지'북미간 불신에 국민들 의견도 갈려'교황 방북' 새로운 전환점 될수도이제 우리는 운명의 길 가야할 시점진지한 소통으로 내부 갈등부터 해결근래 들어 남한과 북한은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양쪽 정상이 벌써 세 차례나 회담을 가졌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북한 노동자 연맹이 휴전선 아래로 내려와 축구 경기를 했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남측 관계자들이 바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남북 간의 철도 연결을 위해 실사팀이 실험 운행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는 약 10년에 걸쳐 매년 한두 번씩 평양을 다니며 민간 차원의 교류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남북 교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북측 젊은 리더는 과거의 체제로는 이제 더 이상 지도자로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립각만 고집해서는 고립만 가중될 뿐 국민을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제의 안정 없이는 체제가 붕괴될 것이고 국가의 존립마저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이제 우리는 통일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양측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인가? 남측이 북측을 흡수하는 형태가 되나? 아니면 연방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양 체제는 각각 유지되나? 국가 구성 체제부터 주변 열강들과의 이해관계까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잘 진행되는 듯 보이던 남북의 평화 로드맵이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엔은 북한의 모든 경제 활동을 제재하기로 결의한 바가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고 다음 일을 도모해야 하는데, 도무지 이 제재가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은 보다 더 확실한 핵 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은 여러 차례 핵 포기를 언급은 했지만 확신이 들 만큼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양자는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미국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도 남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북한은 자신들이 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순간, 미국이 약속한 체제 보장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북미 간의 불신에 더하여 남쪽 국민들의 의견도 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미국처럼 과거 경험에 견주어 북한을 불신하는 쪽과, 이제 북한은 경제 개방 외에 살 길이 없으니 핵 포기에 관한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자는 쪽으로 선명하게 나뉘어 서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타협과 양보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남북의 평화 로드맵은 이 불신 때문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완만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교황의 방북은 이 불신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톨릭 신자이고 유엔 상임이사국과 영향력 있는 회원 국가들 역시 대부분 가톨릭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교황의 방북이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의 평화를 위해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한반도는 평화로 향한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느리게 가든 빨리 가든 이 운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며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북한과의 관계 구축에 앞서 우리 안의 갈등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입장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라 몇십 년에 걸쳐 축적된 것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진지한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야 합니다. 정치권도 치적을 통한 인기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SNS시대에 토론의 장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소통에 참여하는 각 개인도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먼저 상대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상대의 주장만 헐뜯지 말고, 그 주장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곱씹어봐야 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서는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체제가 하나라고 의식이 하나가 되는 건 아닙니다. 과정 없는 평화는 머지않아 또다시 분열을 만들 것입니다. 다음은 한반도 평화를 꼭 이뤄내야 한다는 소신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남과 북은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단 북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 역시 이대로는 출구가 없어 보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을 어떻게 갖추고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12-10 홍창진

[홍창진 칼럼]평등 사회

우리나라 성범죄는 남녀 사이에서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힘 있는 자가 행사하는 '인권유린'범죄없는 성숙한 사회 만들기위해서로 배려·존중하는 마음 지녀야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Me Too) 운동'을 체험하면서 양성 평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구별될 뿐 차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언론을 통해 수많은 성폭력 고발 사례를 접하면서 그동안 묵과하던 행동들이 범죄가 된다는 것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친근감의 표시로 변명되던 술자리 스킨십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사람도 많으리라 봅니다. 지난 3월 문화체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특별 조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성추행 고발을 접수했습니다. 100일간 진행된 특별 조사는 상당수의 고발 건이 시효가 만료되는 등 가시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성적 측면에서 얼마나 불평등한가에 대한 실상이 제대로 드러났고, 이것이 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소속되어 있는 천주교 성직자계도 이번 미투 운동으로 큰 충격을 겪고 내부적으로 쇄신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성 평등에 관한 인식 전환을 체험 중에 있습니다. 특히 교구 소속 사제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닷새간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해당 사제에게는 정직이라는 중징계가 처해졌습니다.6년 전부터 서울대병원 부설 서울 해바라기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립양성평등원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이수했고, 나름 준전문가 입장에서 성폭력 사례를 수십 차례 상담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피해자를 대면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왜 성범죄가 발생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범죄는 권력이 있는 쪽이 권력이 없는 쪽에 행사하는 인권유린입니다. 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다움을 버리고, 인성보다 동물성에 충실하려는 저급한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입니다.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없는 노인과 어린이를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권력이 존재하는 어느 조직에서든 성범죄는 일어납니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조직 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은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큰 권력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성범죄의 이면에 권력의 횡포가 숨어있다고 볼 때, 이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성범죄가 만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인성이 문화를 만들어야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동물처럼 힘의 논리에 의해 문화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공포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범죄를 없애려면 우선 인권운동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평등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 때문이다"라고 요약되는 이 선언문은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좋은 문화의 산물입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생활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한 성당, 즉 한 조직의 최고책임자입니다. 당연히 막강한 권력이 주어집니다. 더군다나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조직구성원인 신도들은 신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돌아보면 신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경험이 많습니다. 성당 운영위원회 회의 때 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지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종교인과 신도는 구별될 뿐 차별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를 잊고 주어진 권력을 남용한 것입니다.가정에서 쉽게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자녀의 인권을 무시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권 의식이 없으면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합니다. 성범죄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성범죄 없는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대상이 누구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10-29 홍창진

[홍창진 칼럼]결심과 실천

'사랑' 말로 하기는 참 쉬워혈연외에 어떤 사랑도 없다면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행복이란 서로 움켜쥐는게 아니라주고 받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했습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믿는 자'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했지요.매 주말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행동의 중요성'을 전해야 하는 성직자들의 흔히 경험하는 속내를 김 추기경은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그 고백 이면에서 오히려 강한 실천 의지가 느껴집니다. 실천하지 못했다는 반성은 곧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바보 선언'을 한 그의 삶에서 여느 고위 성직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사회 참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어른조차도 결심에서 실천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멀고 험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떨까요?조카뻘 되는 어느 여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한인성당에서 교포 2세 남자를 만났습니다. 서른쯤인 여자는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미국 여행길에 혹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현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껴 몇 차례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자가 귀국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남자는 결혼을 결심하고 한국에 와 청혼을 했습니다. 여자의 부모에게도 허락받은 뒤 둘은 바로 미국에 건너가 남자의 부모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미국에 갔을 때 사업을 하는 남자의 고모가 여자의 취직까지 해결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한두 번쯤 큰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마침 그 여자에게 그런 행운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여자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예비 시댁 식구들과의 첫 식사 자리에 남자의 누나가 나왔는데 중증 발달장애자였던 겁니다. 물론 남자가 데이트 중에 장애인 누나가 있다고 얘기는 했지만,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니 충격이 무척 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둘이 있을 때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누님을 돌볼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는 자기가 맡아서 돌봐야 한다고….여자에게는 인생에 한두 번 찾아오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도 반대했고 친구들도 말리고 나섰습니다.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결혼할 수 없다.' 중증 장애를 지닌 누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건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자는 행운을 불운으로 결론짓고, 미국행을 포기하기로 했답니다.사랑을 말로 하기는 쉽습니다. 남의 위대한 사랑에 박수 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만일 중증 장애를 지닌 딸을 보살피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TV에 방영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감동의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여자도 그런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감동의 눈물을 흐리며 동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180도 달라집니다.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 다음에야, 헌신하는 사랑을 감내하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사막처럼 답답해질 것입니다. 혈연 외에는 어떤 사랑도 없다면 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요?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움켜쥐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기니까요. 어느 누구도 여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강요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그의 부모는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겠지요.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여자가 한 사람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삭막해지지 않으면 참 좋겠습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9-10 홍창진

[홍창진 칼럼]가벼운 마음

미래에 대한 걱정 쌓아둔다고당장 해결 되는 일은 없다주어진 현실 외면하라는게 아니라달라지지않는 일 고민에 발목잡혀고통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해마다 여름이 되면 성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캠프 준비로 바쁩니다. 당연히 신부는 봉사해줄 청년을 찾습니다. 그러나 요즘 도시 성당에서 청년 봉사자를 찾기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에 사는 청년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안고 있는 걱정이 있습니다. 바로 취업입니다. 취업문이 너무 좁은 탓에 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스펙을 쌓아야 합니다. 물론 봉사도 스펙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성당 오빠, 성당 언니 스펙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해외연수나 국내에서의 극한 체험, 전공과 관련한 자격증 취득 등이 그나마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스펙입니다. 어떤 청년은 스펙을 쌓기는커녕 당장 학비 마련도 힘겨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며 더위와 씨름하고 있습니다.이 위기를 넘기고자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습니다. '모집 인원 ○○명'에 지원자는 정말 0명이었습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겁니다. 청년들보다는 어머니들 사정이 좀 낫겠지 싶어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지만, 그분들 상황은 청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어머니들 대부분이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고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사 노동과 아이 교육까지 도맡아야 하니, 일요일에 성당에 나와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성당의 주일학교 교육이 아직 무급봉사에 의존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유급교사로 전환하지 않으면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마지막으로 아버지 봉사자를 모집해봤습니다. 공고를 내기도 전에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옵니다. "성당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빠들 죽어나가는 사정도 좀 들어주세요." "해고 걱정, 폐업 걱정, 대출 상환 걱정! 신부님,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버지 봉사자 모집은 방도 못 붙이고 계획을 철회했습니다.여름 캠프 봉사자 모집은 아쉽게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청년들과 어머님, 아버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많은 일을 감당하며 바쁘게 사는 것은 좋은데, 그분들에게서 지친 모습만 보일 뿐 희망이나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걱정과 불안만 가득한 그들의 눈은 다가올 미래를 암울하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우리 마음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면 얼마나 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음을 어떻게 측량할까 싶지만, 실제로 잴 수 있다고 해도 아마 0.0001그램도 안 될 겁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 마음이 걱정과 근심 때문에 천근 혹은 만근처럼 무겁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현실의 무게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밖의 위기가 산적해 있다고 해서 이를 고스란히 내 안으로 가져와 차곡차곡 쌓아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에 대해 걱정을 쌓아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당장 무슨 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신의 영역에 맡긴 뒤 걱정을 내려놓고, 우리는 그저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고민한들 달라지지 않는 걱정거리에 발목을 잡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고통으로 점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나게 됩니다. 30% 인원 감축을 통보한 직장 현실, 대출까지 받아 장만한 아파트가 급락해 이자도 못 갚는 현실, 가진 돈 모두 털어 창업을 했는데 경제 상황이 악화돼 폐업 위기에 몰린 현실은 분명히 내 노력과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이런 현실에 놓여 있다고 해도 그 현실이 내일 똑같이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간의 인생 경험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쁜 일이 항상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좋은 현실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는 것을, 신은 늘 그래 왔다는 것을.여름 행사 봉사자를 모집하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제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얹어 놓고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떠나 볼 생각입니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신부와 수영만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고, 나라도 없었으면 그마저도 못하지 않을까 싶어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7-30 홍창진

[홍창진 칼럼]종교의 영역

나의 종교로 믿음 생활하고 있다면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살펴라종교는 미래 보장해주는 보험 아냐신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 깨닫고욕심 버리고 평화 얻는게 참모습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새벽, 전등불이 환하게 켜지는 곳은 절, 교회, 성당 그리고 보험회사 사무실이다. 새벽 미사를 드리려고 졸음을 참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건너편 고층 빌딩의 5개 층에 벌써 불이 들어와 있다. 그 환한 불빛 사이로 '○○보험'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종교인들이야 혼탁한 세상을 깨우기 위해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다지만 저들은 무엇을 위해 새벽부터 이 부산을 떠는 것일까?사실 20~30년 전만 해도 보험회사는 지금처럼 성장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취업과 결혼, 집 장만, 육아 등 미래의 청사진을 자신의 힘으로 일굴 수 있었다.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보험 같은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보험 상품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보험회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을 과장되게 꾸며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셈이다. 어떤 비용 투자 없이 불안을 사고파는 것으로 영업이 되니, 일면 신기루 같은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영업 형태를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월 일부 종교에서는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두고 겁을 주면서, 절대자인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진다고 설교했다. 심지어 헌금을 내면 대신 기도해 불행을 막아줄 것처럼 유도하기도 했다. 일정 보험액을 내면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험회사가 떠들 듯이, 종교 역시 얼마나 정성을 바치느냐에 따라 미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었고,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면 큰 봉변을 당하는 줄 알고 그 가르침을 맹신했다.요새는 보험회사가 하도 영업을 잘해서인지, 일부 종교의 잘못된 행태가 많이 사라졌다. 불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이제 보험회사의 몫이다. 그나마 남은 영업수단이 장례 때 복을 빌어주는 일인데, 이 일도 상조회사가 나타나서 자리를 뺏겨버렸다.종교의 본래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게 해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의존해 마치 모든 일을 신이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즉,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의 정답이 실은 내 안에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돈을 내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무턱대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 게 아니라, 공부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이런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제 스스로 노력하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더 노력해야겠구나'하며 힘을 낼 것이다.하지만 여전히 종교를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입시 백일 전에 성당, 교회, 절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불경이든 성경이든 어느 종교 경전에서도 "복을 빌어라, 그러면 내가 복을 주겠다"고 가르치는 구석은 없다.내가 만일 어떤 종교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 종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라. 그리고 나는 어떤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보라. 종교는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이 아니다. 신을 통해 인간의 본 모습을 깨닫고, 욕심을 버리고 평화를 얻는 것이 종교의 참모습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6-18 홍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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