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없는 방향키 싸움… 국민의 노후, 한치 앞도 안보인다 공론화委,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로'재정 안정' 국힘 vs '소득 보장' 민주 엇갈려더 내기는 합의… 얼마나 더 받을지 공방남아여야 신임 원내대표 직접협상 타결 여지속尹 "22대 국회로 넘기자" 기자회견도 변수시민단체 "노후 보장 내버린 무책임 결정""지금 내는 국민연금을 더 내고 노후에 연금을 더 받으시겠습니까?"지난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진행한 공론화 조사에서 시민대표단 500인이 이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현행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월 소득의 몇 퍼센트를 내는지 의미)을 현재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노후에 받는 돈)을 40%에서 50%로 올리는 안(소득안정론)을 택했다는 의미다.하지만 공을 넘겨받은 국회 연금특위는 여야 간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보험료율은 13%로 합의했지만,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3%를, 소득보장을 중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45%를 주장하면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양당은 서로에게 "연금개혁 의지가 없다"며 책임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21대 국회 내 처리를 공언했던 연금개혁은 '2%p'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사실상 좌초됐다.양당이 어떤 방식의 합의를 하더라도 연금 고갈 시점은 최소 8~9년 늘어나고, 누적 적자 규모도 2천766조~4천318조원 줄어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회의 '네 탓 공방' 속 다시 한 번 '연금의 개혁'은 22대 국회로 미뤄졌다.국민연금은 17년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의 이유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 빈곤을 덜어 국가의 탄탄한 사회안전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월급(직장인)을 줄여 국민연금에 넣도록 강제하거나, 노후에 받는 연금 혜택을 줄여야만 한다. 이에 여야는 지속 가능성을 위한 '더 내기' 필요성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얼마나 더 받을 지'에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이 2%p 차다.정부는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재정 안정 달성이 어려워진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소득대체율을 높일 경우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연금 체계 자체를 바꾸는 '구조개혁'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모수개혁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국민연금의 핵심수치를 바꾸는 것이고,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국민연금 개혁 없이 현행 제도로는 2041년 적자 전환 후 1990년생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55년에 고갈된다. 이는 기금 운용 '사고'가 아닌,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가입자들에게 보험료의 두 배 이상을 연금으로 돌려주고 있어서다.이 같은 설계에서도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에는 미래세대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저출생 문제도 심각해지며 논의 필요성은 시급해졌다. 연금을 받을 사람은 더 오래 사는 반면, 보험료를 낼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서다.연금특위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연금개혁의 목표는 노후 생활 보장"이라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게 명확해졌다는 것이 (이번 공론화 조사의) 큰 의미"라고 말했다.반면 연금특위 여당 간사 유경준 의원은 "소득대체율이 보험료율보다 더 오르면 연금 재정 개선이 안 된다"며 "소득보장과 재정수지 개선 중 어디에 더 많이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45%, 43%로 갈리는데 우리는 44%까지 받을 수 있으나 민주당이 받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여야의 정쟁 속에 국회 연금특위 주호영 위원장은 지난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금특위 활동 종료를 알렸다. 1998년 1차, 2007년 2차 개혁 이후 17년 만에 입법 문턱까지 올랐던 연금개혁 논의가 무위로 돌아갔음을 알린 셈이다.정부는 '3대 개혁' 중 하나로 연금 개혁을 꼽았지만 그간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회 역시 2022년 7월 연금특위를 설치하고도 12차례의 회의만 열고 소극적인 활동을 하다 21대 국회가 끝날 무렵에서야 서둘러 결론을 내려 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최근 연금특위 일부 위원들이 합의안 도출도 못한 채 5박7일 일정으로 유럽 출장을 떠나기로 하며 비판은 거셌다. 이들은 유럽에서 연금 전문가들을 만나 막판 논의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논란이 이어지자 연금특위는 결국 출장을 취소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21대 국회에서 연금 개혁 논의가 완료되지 못한 것에 유독 아쉬워 하고 있다.여야 간사 역시 계속해서 논의를 이어갈 의지도 있어 직접 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되는 만큼 양당 신임 원내대표가 직접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김상균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장 역시 아직 남은 시간이 있다며 타결 여지를 남겼다.김상균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장은 9일 CBS 라디오에서 "(합의) 불발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남은 시간이 아직도 길기 때문에 타결 여지는 남아있다"며 "확신은 아니지만 (개혁안 통과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내용이 변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말해 여야간 극적 타협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최소 70년을 끌고 가야 하는 계획인데 21대 국회 연금특위의 실적으로 조급하게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22대 국회로 넘기고, 다만 제 임기 안에 확정되도록 정부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다면 22대 국회는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특위를 새롭게 구성하고, 바뀐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금제도 학습도 진행한 이후 논의가 이어져야 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는 이점을 고려해 22대로 넘어가더라도 공론화를 거쳐 내놓은 두 안을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2대로 넘어가면 처음부터 특위 구성원들도 새로 구성되는 만큼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은 크다. 또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통령선거도 있어 논의가 한없이 늘어질 가능성도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연금개혁의 고갈 시점은 더욱 눈앞에 다가온다는 점이다.국민 노후소득보장을 미리 대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 노동·시민사회는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양대노총 및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300여개가 속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과 정의당은 지난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가 오는 29일까지 남아 있는데도 활동을 서둘러 중단했다"며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 책임을 내버린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의 말처럼, 아직 21대 국회는 19일이 남아있다. → 일지 참조 /오수진기자 nuri@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4월 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4.4.23 /연합뉴스
"14년간 불법기관 3조 편취… 특사경 지연땐 재정누수 커져" 저출산·고령화 등 지출증가 예상… 보험재정 수입확충·효율화 필수특사경 권한남용 우려있지만 일반국민 대상 제외·수사권 제한될 것3개월내 수사종결 장점 연간 2천억 절감… "건전한 의료생태계" 포부인천·경기지역 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지역 전문가'가 1천600만 지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엄호윤(57)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인천경기지역본부장은 공단 통합 이후 근무기간 23년 중 본부 주요 보직 기간을 제외한 17년여를 줄곧 인천경기지역본부에 종사했다. 지역본부 말단 직원부터 본부장의 자리까지 이른 흔치 않은 '토박이' 지역본부장이다. 본부 일선에서 공단 차원의 굵직한 과제들을 진두지휘한 뒤 지난 3월 지역본부장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여 지났지만, 적응 기간이 무색할 만큼 지역의 대내외적 과제 수행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 공단 지역본부로서 책임이 막중할 엄 본부장의 취임 일성을 들었다.■취임 후 2개월, 소감 밝혀본다면조직 내 최대 규모인 인천경기지역본부의 본부장 취임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특히 과장부터 부장 시절까지 긴 기간을 이곳에서 보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의 평생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1천664만명, 전국 인구 32%에 달하는 인천·경기 지역민들의 건강한 일상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취임과 동시에 지역 현황과 과제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고, 특히 지역사회와 소통을 강화하고자 힘쓰고 있다. 소비자시민단체, 의약단체 등 공단 이해관계자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지역 지지기반을 촘촘히 다지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기 위해 지난달 시흥지사와 오산지사를 시작으로 현장 경영도 추진하고 있다. 지역별 건강 격차를 해소하고 생애 전 주기 건강지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본인이 진두지휘했던 역점 사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시행된 소득정산제도다. 소득정산제도는 보험 가입자의 실제 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를 사후정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전 국민의 형평성 있는 보험료 부과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였다. 본부 자격부과실장으로 근무하며 추진한 사업 중 가장 큰 변화를 낳은 사업이기도 했다. 처음 실시하는 제도를 어떻게 하면 국민들께서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할 것인지를 가장 고민했었고, 지사 현장에서 겪을 민원 혼란도 큰 우려점이었다. 제도 시행 2년차인 올해도 본부를 필두로 언론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정산 대상자 및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사전 안내와 현장 민원 대응책을 마련해 소득정산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다른 사업으로는 10년여 동안 이어지고 있는 '담배 소송'이다. 공단은 지난 2014년 흡연의 건강상 폐해를 지적하며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1월 1심 패소 판결 후 현재 항소심 변론이 진행되고 있다.2021년부터 2년여 동안 법무지원실장으로 지내면서 담배 소송에서 공단이 승소한다면 흡연의 폐해와 치명적인 중독성을 밝히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국민 건강과 재정 보호 관점에서 의미있는 판단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최근 공단은 보험료 부과 기준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는데건강보험은 전 국민 가입을 원칙으로 직장가입자·피부양자·지역가입자로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다. 직장과 지역가입자 간 상이한 부과 기준으로 생긴 공정성의 문제는 공단이 해결해야 하는 오랜 숙제다. 지난해 시행된 소득정산제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출발이었다면, 올해는 이 연장선에서 지역가입자의 재산·자동차 보험료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가 시행됐다. 지난 2월부터 지역가입자의 재산 보험료 부과 시 기본공제 기준을 5천만원에 1억원으로 확대했고, 가액 4천만원 이상 자동차에 부과되던 보험료는 전면 폐지했다. 이런 변화로 인천·경기지역에서만 지역가입자 112만세대의 보험료가 월 평균 2만7천원 인하되면서 납부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이 밖에도 외국인 및 재외국민 피부양자의 보험 가입 기준에 6개월 이상 거주 조건을 두어 일부 외국인의 진료 목적 입국 악용 사례를 방지했고, 실거주 목적 대출을 받은 1세대 1주택자나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금융부채 공제제도'도 디딤돌·버팀목 대출까지 공제를 확대 시행하는 등 합리적이고 공정성 있는 부과 제도로 개선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인구 위기 시대, 안정적인 건강보험 재정 대책은공단은 최근 3년 연속 흑자 재정을 이루었으나, 저출산·고령화 및 만성질환자 증가 등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급여비 지출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대비해 보험재정의 수입기반을 확충하고 지출 관리를 합리적으로 전환해 재정 효율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 5월 20일부터는 타인의 건강보험증(신분증)으로 부정수급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본인확인 강화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며, 과도한 의료 남용을 방지하고 적정 진료를 이끌어내기 위한 캠페인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부당하게 진료비를 편취하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적발과 재정 환수도 전사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공단 특사경(특별사법경찰)' 도입도 강조해왔는데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필히 재정 누수의 주 원인인 '불법개설기관'을 근절해야 한다. 지난 14년여 동안 이들이 부당하게 편취한 금액만 3조4천억원에 이른다. 이는 인천·경기 지역가입자가 1년 동안 납부한 보험료와 맞먹고, 공단이 의약단체에 제공하는 수가를 5.6%나 인상할 수 있는 금액이다. 불법개설기관 근절에는 동의하나 공단 특사경 도입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 수사기관이 아닌 기관에 고발권과 수사권을 부여해 남용될 것이란 지적 등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과 정상적인 의료기관 등은 수사 대상이 아닌 데다 수사권한도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 의심기관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그럴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으로 공단은 그동안 불법개설기관을 전문적으로 단속해 온 경험이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1천447건의 불법개설기관 단속 경험을 축적해오면서 빅데이터를 융합한 감지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어 전문성이 보장된다. 특사경 도입이 지연될수록 부당수급 금액은 커지고 피해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특사경이 도입될 경우 국민이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인가불법개설기관을 보다 신속히 단속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는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후 결과 회신까지 평균 11.5개월이 소요되고 있다. 수사가 장기화될수록 그 사이에 재산을 은닉하거나 폐업해 버리기 때문에 환수는 더욱 어려워진다. 공단 특사경은 사건을 인지한 시점부터 송치까지 3개월 내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연간 2천억원의 재정 누수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절감된 재정은 수가 인상과 급여 확대 등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의료생태계 유지라는 본래의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지역 주민들께 한 말씀 전한다면인천경기지역본부는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건강수준 향상을 목표로 국민 중심의 서비스 기반 확대, 의료 소외계층 지원 등 건강보험의 사회적 책무 이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 7월이면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 35주년을 맞는다. 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의 역할이 나날이 커지는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제도 운영을 통해 국민의 대표 사회보장제도로 자리매김하는 건강보험이 되겠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건강'이라는 삶의 원동력을 놓치지 마시고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행복한 일상을 지키실 수 있도록 공단이 늘 함께하겠다.글/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엄호윤 본부장은?▲2024년 3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경기지역본부장▲2023년 9월~2024년 3월 〃 자격부과실장▲2021년 7월~2023년 8월 〃 법무지원실장▲2020년 5월~2021년 6월 〃 급여사업실장▲2020년 1월~2020년 4월 〃 진주산청지사장▲2017년 1월~2018년 12월 〃 인천경기본부 행정지원부장엄호윤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경기본부장은 취임 후 두 달이 된 소감으로 전국 인구의 약 3분의1에 달하는 인천·경기지역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사람사는 이야기] 10여년간 활동… "고맙다할때 보람"외국인 노동자·범죄 피해자 지원도공로 인정 '국민훈장 무궁화장' 영예"법적 문제로 속만 태우고 살던 분이 오랜만에 사무실에 찾아와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갈 때면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이임성 변호사는 종종 사무실을 나와 법적 조력이 필요한 소외계층을 찾아 나선다. 법을 몰라 손해를 보거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는 한 줄기 희망 같은 존재다.이 변호사는 의정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끝으로 검사 생활을 접고 변호사로 변신해 10여년 전부터 경기북부지역 곳곳을 누비며 소외계층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의정부·양주·동두천·포천시 등에서 자문변호사·마을변호사로 일하며 정기적으로 법률소외계층을 만나 도움을 준다. 아무리 자질구레한 사건이라도 그들에겐 큰 문제이기에 그들의 얘기를 소홀히 들을 수 없다.이 변호사는 "간단히 풀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해 혼자 속을 끓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시는 분들이기에 최대한 경청하고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최근 들어 변두리 산업단지나 농촌에는 외국인 신분이거나 이주민이란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피해를 보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접하게 된 이 변호사는 양주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자문위원을 맡아 딱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법률 구조자가 되어 주고 있다.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은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경기북부지역 범죄피해자센터에서 범죄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법률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고등법원 의정부 원외재판부를 유치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숨은 공로가 알려지면서 지난달 '법의 날' 때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가 되자 자기 일인양 주변에서 축하가 쇄도했다.이 변호사는 "지역사회 소외계층 중에는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해 더 어렵게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며 "누군가는 그들의 고통을 대변해줘야 된다"고 말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시간 빈곤' 누구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인데, 일할 때를 제외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자유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보통 돈이 있고 없고를 두고 빈곤하거나 풍요로움을 따지는데 시간에도 비슷한 개념을 적용한 것이죠.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가난할 수도, 부유할 수도 있습니다. 준서의 어머니를 만나며 우리가 깨달은 점은 가족 간병이라는 굴레에서는 중산층도 '시간 빈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산층에게는 '경제적 여유'라는 막강한 조건이 있긴 하나, 시간에 있어선 이들 역시 불평등하게 흘러갑니다. 가족 간병을 하지 않는 보통사람들과 비교해서 말이죠. 준서의 어머니이자 간병자,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가 자신에게 주어진 간병의 조건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막막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가족 간병과 일상의 공존을 부단히 지켜내고 있지만, 그의 삶은 어딘가 여유가 없고 숨이 차 보였습니다. 지난달 27일 경인일보 취재진은 고양시 일산동구의 김은희씨 자택에 방문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언론 등을 통해 으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 간병 가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그저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집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준서는 여느 초등학생들의 모습과 똑같았고, 취재진에게 인사를 하러 잠시 나왔다가 다시 영어 공부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차츰 김은희씨의 삶이 고요 속 곧이어 몰아칠 태풍처럼 다가왔습니다. 김은희씨는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5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 속 차트를 확인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멀티태스킹을 하듯 머릿속으로는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 심상치 않다 싶으면 서슴없이 준서에게로 가 '무언가'를 먹으라고 말한 뒤 다시 인터뷰 중인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무언가는 혈당을 곧바로 높이는 데 탁월한 오렌지 주스였습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가만히 지켜보니, 마치 한치라도 어긋나면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지는 상황을 가정하듯 오차없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짜인 김은희씨의 일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김은희씨는 매순간 준서의 혈당과 사투 중이었는데 마치 기계처럼 1분 1초의 공백 없이 효율적으로, 정확하게만 움직여야 했습니다. 널찍한 거실과 주방에는 5분마다 갱신되는 혈당 차트를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 공기계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주방과 옷방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는 트레시바와 글루카곤이 가득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노트북 화면에는 준서의 혈당 등 건강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베이스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학벌과 직장, 한 달 1천만원가량인 수입. 김은희씨를 둘러싼 외적인 조건들이 그가 경제적으로 중상위 계층임을 말해줬습니다. 이 점을 김은희씨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희귀병을 간병하며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넉넉함'을 꼽았으니 말이죠. 그러면서도 가족 간병 때문에 일상을 포기한 채 고군분투하는 환우와 그 가족들을 염두에 둔 듯 “소득과 지식과 이런 모든 게 1형 당뇨 간병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같아요. 기회에 따라서 아이를 관리하는 게 엄청나게 차이가 나거든요. 저희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굉장히 정보 격차가 심한 거죠. 저번에 TV에서 애 아빠 혼자서 혈당 관리하기가 너무 벅차서 나중에는 아이가 쓰러진 장면을 봤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라며 왠지 모를 미안함까지도 내비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지난 1월 충남 태안에서 1형 당뇨를 앓는 8세 자녀와 부모가 동반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수개월간 병원 치료비 부담과 혈당 관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1형 당뇨 간병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정부 차원의 지원 강화에 대한 논의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죠. 지난해 2월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에서 실시한 1형 당뇨 간병 실태 자료를 보면, 앞선 비극의 사회적인 원인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응답에는 1형 당뇨병 환자와 환자의 가족 1천51명이 참여했습니다. 1형 당뇨는 중증 난치성 질환입니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병이라, 지속적으로 '혈당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건 결국 '경제적 부담'이 이 병을 간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인 셈입니다. 아울러 '혁신적인 의료기기의 늦은 국내 도입'에 대한 응답이 높은 데는 준서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준서가 주사의 공포에서 벗어나 최신 의료기기로 보다 원활하게 혈당을 관리할 수 있었던 데는 최신 의료기기가 출시됐다는 정보에 접근할만한 환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죠. 이런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간병가족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김은희씨 사례를 통해 우리는 '가족 간병vs일상'이 아닌, '가족 간병―일상'이라는 명제를 성립하게 하는 필요조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족 간병과 일상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 말이죠. 영어로 된 해외 의료사이트를 해석해 1형 당뇨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정보 우위력', 언제든 준서에게 달려가 줄 친정어머니가 있는 '돌봄 인력', 그리고 가감 없이 의료비를 지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 김은희씨의 가족이 가족 간병을 하고 있음에도 일반 가정처럼 외형적인 완벽함을 유지하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여유'과 '돌봄 인력'은 가족 간병을 위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가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간병이 필요한 시대에 사는 우리 - 간병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면 상당수 시민들도 이에 동의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그런 요소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경제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긍정하면서도, 경제적 준비는 충분히 되지 않은 현실. 두 질문에 대한 답변 사이에 벌어진 간극은 환자의 가족들이 간병을 도맡게되는 '돌봄 인력' 부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서로 상관 없는 듯 보이는 세 질문이 누군가의 삶에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아마도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릴겁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갑자기 쓰러져 가족 간병을 해야하는 상황은 대개 예측 불가능할 때 찾아오는데 경제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가족말고는 아픈 사람을 돌봐줄 수 없다면, 그때 우리의 일상은 더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정상가족'에 해당하는 김은희씨의 일상에 가정해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 3가지 필요조건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김은희씨의 삶도 분명 삐그덕거릴 겁니다. 만약 친정어머니라는 '돌봄 인력' 즉, 가족 도움이 없다면 남편과 김은희씨 중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고 준서를 옆에서 돌봐야 합니다. 둘 중 하나 일을 그만둔다면 최신 기기를 구입하는 등 의료비에 쏟을 비용도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수입이 절반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필요조건인 '경제적인 여유'가 사라집니다. 이래저래 딜레마를 마주하는 셈이죠. 한치라도 어긋났을 때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대비하며, 현재 김은희씨는 '시간 빈곤자'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국 가족 간병을 도맡은 사람이 '시간 빈곤자'가 되고 마는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경기도 내 가족 돌봄 문제의 쟁점과 대안을 연구했던 김정훈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개인이 좋은 삶과 자기 행복권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데 자기 행복권을 추구한다는 건 시공간이 같이 주어져야 하는 겁니다. 시간 빈곤은 결국 '시간 결핍'을 뜻하는 거죠. 가족 간병을 하는 동안 그 시간을 이제 잃어버린달까요. 가족 간병 즉, 돌봄 이외의 시간에 대해 자기가 계획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돌봄을 선택하는 순간 이 계획 자체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조금 복잡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1형 당뇨를 앓는 아들 준서를 돌보고 있는 김은희씨의 일상은 정말 무사한가요. 한국 사회, 가족 간병, 오차 없는 시간…. 무수한 전제를 떠올리면서 답변을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0년' 초등학교 5학년, 부모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집에 모셔와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가족의 간병은 20대 성인이 돼서야 끝이 날 수 있었습니다. 간병은 가족의 시간과 연동돼 모두의 삶을 뒤바꿨습니다. 부모님의 일상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 곁에 항상 누군가 있어야 했고 잠깐 외출하더라도 집을 오래 비우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치매까지 앓자 간병은 더욱 고됐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식사를 챙기고, 때마다 병원을 모셔야 하는 모든 일이 어린 눈에도 버거웠습니다. 할머니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시작한 간병이지만 지난한 돌봄에 부모님은 지쳐갔습니다. 일과 간병에 자녀 양육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쉴새없이 들이닥쳤습니다.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해소할 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족의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그렇게 10년을 간병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할머니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집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간병=가족',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이 당연한 명제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파괴될 만큼의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는 게 당연한가, 간병과 일상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가. 마음 속 오래 품었던 그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답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여러 연령, 다양한 상황에 놓인 가족간병인을 만났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시간빈곤' '간병약자' '언젠가·누구나' '선택할 자유' 라는 공통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모든 인터뷰를 1인칭 시점에 담은 건 언젠가 가족은 아플 것이고, 당신도 가족간병인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일'이라는 공감 아래,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를 시작합니다. #'반추'. 다음은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빈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불행. 결코 김은희씨 가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여겼습니다. 일산 신도시의 50평대 넓은 집, 단란한 4인 가족, 전문직, 고학력 엘리트. 사람들은 김은희씨 같은 가정을 정상가족, '중산층'이라고 부릅니다. 이 울타리는 아주 견고하며 여전히 탄탄합니다. 어느 날 한순간 삶에 밀려들어 온 불행조차도 노력으로 극복할만하게 해줄 만큼. “엄마, 나 몸이 이상한 거 같아." 2021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준서(가명)의 몸무게가 불과 일주일 사이 10kg이나 빠졌다. 장염이 심하게 걸린 걸까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아이가 쓰러졌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대체 내가 뭘 잘못 했을까. 원인 모를 죄책감을 나 스스로 만들면서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준서의 눈꺼풀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무얼 먹었는지를 물어보기도 하다 피를 뽑았다. 지난한 검사가 끝나자 의사의 입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나왔다. '1형 당뇨'.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되지 않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더라, 평생 안고서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더라…. 괜찮아. 침착하자. 해법이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수천 번 읊조렸지만 무언가 원망스러워졌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것도 답답했다. 왜 이런 불행이 내가 아니고 하필이면 우리 아이에게 찾아온 걸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온종일 막막함과 이유 모를 원망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준서를 보며 생각을 정리해갔다. 내가 흔들리면 준서의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뒷목이 서늘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이 내 아들의, 우리 가족의 일상을 무너뜨리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들과 나, 그리고 친정엄마.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나란히 한 곳에 꽂혔다. 혈당 그래프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준서와 엄마가 모니터 속 차트를 바라봤다. '아침엔 현미밥 먹었지. 어제 운동은 수영했고, 오렌지 주스는 10분일 거야. 10분….' 5분 마다 업데이트되는 차트를 보며 머릿속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우리 엄마와 준서가 잘 이해하도록 설명할지 고민했다. “엄마, 여기 잘 봐. 다 영어로 적혀 있긴 한데 뭐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익숙해질 거야. 이럴 때는 오렌지 주스야. 내가 카톡으로 '주입' 이렇게 보내면 여기까지 한 칸만 먹이는 거야. 준서도 똑바로 잘 들어. 할머니도 없고 엄마랑 아빠 회사에 가 있을 때 학교에서는 준서가 혼자서 해내야 해." 준서가 오렌지 주스를 몇 모금 마셨다. 팔뚝에 붙인 연속혈당측정기가 성가신지 계속 만지작거리는 게 눈에 걸렸다. 액상 과당이 식도를 타고 위까지 내려가길 기다리며 10분을 지켜봤다. 이번엔 조급해하지 말자. 침착하자. 하강하던 그래프가 멈췄다. ISF(인슐린 민감도·인슐린 1단위를 주사할 때 떨어지는 혈당 수치) 계산에 생긴 오차를 만회했다. “봤지? 그래프 떨어진다고 무서워서 계속 주스 주입하면 큰 일 나는 거야. 차트가 5분마다 바뀌니깐 일단 지켜보고 또 주입하고 그래야 돼 엄마." 막막함에 발만 동동 구르던 시기도 금세 지나갔다. 준서가 처음 쓰러지고 3년이 흐른 사이, 주사요법에서 허리춤에 차는 최신 인슐린 펌프 기계로 바꿨다. 더는 고혈당 위험에 시달리거나 주삿바늘을 무서워하는 준서와 씨름할 일도 줄어들었다. 준서의 혈당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해줄 외국 사이트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정해진 대로 루틴을 따르면 우리 가족의 일상은 굳건했다. 10시까지 출근해 7시에 퇴근하는 사이, 연구실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5분에 한 번씩 차트를 보며 준서의 혈당을 체크한다. '주입'.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 준서는 간식 가방에서 주스를 꺼내 먹으면 된다. 캠핑을 갈 때면 풀충전된 배터리, aa 건전지 여유분, 트레시바, 글루카곤, 알코올 스왑 등을 챙긴다. 생야채는 칼륨이 많고, 때로는 신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먹는 걸 조율할 필요도 있다. 저녁을 차릴 때면 나도 모르게 마트에서 파는 모든 채소의 성분을 줄줄 꾄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24시간 머리속에서는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래도 남들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준서 옆에서 밀착 케어할 필요가 없다는 데 감사했다. 15분 거리에 살면서 손자를 돌보러 기꺼이 달려와 주는 친정엄마에게. 그리고 무수한 지식과 경제력 따위의 내게 주어진 조건들에 감사했다. 중산층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는 나의 노력이 무용하지 않음을, 노력하면 난치병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줬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흘러가야 하는 삶이지만 아주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말하자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보는 거다.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블루투스에 오류가 나서 차트 업데이트가 되지 않거나, 우리 엄마가 갑자기 아프거나, 준서와 연락이 안 되거나, 변수가 생겨 그래프가 요동치거나…. 그러면 나는 문제를 일으킬만한 요소를 마음속에서 하나하나 소거해간다. 이를테면 배터리 방전을 대비해 보조 배터리와 유선 충전기를 가방에 챙기는 거다. 시스템 업데이트를 하다 데이터가 날아가는 걸 막기 위해 백업의 백업을 해두는 거다. 안심이 되다가도 가끔은 왠지 모를 서글픔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난다. 간병을 하다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 고군분투해도 간병과 일상 사이에서 무게 추가 간병으로 쏠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분명 알고 있다. 환우회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으면서 목격한 무수한 사람이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거라며, 그래도 우리집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며, 그렇게 긍정해보지만 정체모를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혜연·공지영·한규준기자 pi@kyeongin.com
전국에 번진 '그날의 외침'… 역사에 꺼지지않는 들불로 1986년 민주헌법·노동3권 요구… 학생·노동자들 자발적 나서군사정권 무리한 탄압 이어져… 작년 37년만에 국가가 인정기념사업회법개정 통과 불구 광역시중 유일하게 기념관 없어인천민주화운동센터 "민주화 집중 조명 노력" 市와 협의중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의 옛 시민회관 사거리. 유난히 화창하고 더웠던 날씨에도 이곳에는 학생과 노동자 5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1만여 명의 진압경찰에게 격렬하게 맞서며 군부독재 퇴진, 민주헌법 쟁취, 노동3권 보장을 외쳤다. 이들의 외침이 바로 1987년 일어난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 '인천 5·3민주항쟁'이다.■ 민주화를 바라는 인천시민들의 열망1980년대는 인천 민주화운동이 정점을 이뤘던 시기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목소리를 군사정권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과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산발적으로 거리 투쟁을 하던 시민들이 군부독재를 막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고자 하나로 응집한 결과가 바로 인천 5·3민주항쟁이다. 이는 특정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닌, 학생과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인천 5·3민주항쟁을 시작으로 학생과 노동자들은 인천 거리 곳곳에서 집회를 이어갔고, 이는 군사정권이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민주화 단체를 소탕하는 발단이 됐다. 이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무리한 탄압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1987년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이날 역시 인천에서는 학생과 노동자 1만5천여 명이 부평역과 부평시장 일대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등 '6·10 인천시민대회'가 열렸다. 인천 5·3민주항쟁이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도 이러한 관점에서다.■ 37년 만에 국가가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으로그동안 지역에서는 인천 5·3민주항쟁의 의미를 알리고, 이에 맞는 법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2020년 6월 인천지역 국회의원 11명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고, 인천시의회도 그해 12월 '인천 5·3민주항쟁 법적 지위 확립을 위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힘을 보탰다.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관련 단체도 인천 5·3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알리려는 각종 사업을 추진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해 7월, 인천 5·3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7년 만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인천 5·3민주항쟁을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이 뼈대다. 개정 전에는 2·28민주운동, 3·8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만 민주화운동 관련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았다. 관련법 개정으로 마침내 인천 5·3민주항쟁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인천 5·3민주항쟁의 법적 지위 확보는 벌써부터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동안 인천 5·3민주항쟁 기념주간이나 계승대회 등 이날을 기억하는 행사는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시민단체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해 열리는 '제38회 인천 5·3민주항쟁 계승대회'에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축사는 물론, 공로자 표창장 수여식도 예정되는 등 인천 5·3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일이 인천의 공식 행사가 되는 분위기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남은 과제는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이제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관련 단체의 마지막 숙원사업은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이다. 이들은 인천 5·3민주항쟁과 6·10 인천시민대회 등 인천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알리려면 반드시 독립된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역시 중 기념 공간이 없는 곳은 아직 인천뿐이다. 마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으로 인천에 민주화운동 기념 공간 조성을 위한 국비 확보 등 근거도 마련됐다.인천민주화운동센터는 인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당시의 기록과 유물 등을 보존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인천 5·3민주항쟁 기념주간을 매년 운영하며 각종 사진전이나 토론회를 열고, 주안1동 성당 등 인천에 남은 민주화운동 장소에 동판을 제작해 설치하며 더 많은 시민이 함께 역사를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이 사료들을 더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하고, 인천 민주화 현장을 직접 겪지 못한 젊은 세대들도 계승 노력에 동참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오경종 인천민주화운동센터장은 "관련법을 개정하고자 노력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인천시민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인천 5·3민주항쟁의 의미와 정신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나가자는 목표에서였다"며 "현재 신축 또는 리모델링 등 기념 공간 건립 방향에 대해 인천시와 협의 중으로, 인천의 민주화 역사를 집중 조명할 수 있는 독립된 기념관이 조성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일어난 '인천 5·3민주항쟁' 당시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일어난 '인천 5·3민주항쟁' 당시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일어난 '인천 5·3민주항쟁' 당시 모습.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제공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성당 입구에 이곳이 '인천 5·3민주항쟁'이 시작된 현장임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제공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성당 입구에 이곳이 '인천 5·3민주항쟁'이 시작된 현장임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2024.5.2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쉼터에 이곳이 '인천 5·3민주항쟁'이 일어났던 장소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설치돼 있다. 2024.5.2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무대 위 국악인은 '종합예술인'… 재즈 화음 조화로 경기민요 혁신" 한예종 연희과 진학 '인생 멘토' 김덕수 선생 만나 공연 롤모델 영감'꾸준한 창작 실험' 밴드 '프렐류드'와 앨범 '플라이 인 날아든다' 발매가장 큰 힘 된 건 아버지… 함께 연습 'KBS 아침마당 꿈의무대' 올라전통만 고집해서는 발전하고 나아갈 수 없고, 새로운 것만 시도해서는 전통을 계승할 수 없다. 옛것은 지키면서도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전영랑(40)씨는 전통을 보존, 계승하면서도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예인(藝人)이다.전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국악을 처음 접했다. 국악인이었던 이모의 권유로 시작했다. 부모 품을 떠나 4~5년간 이모와 합숙하며 국악을 배웠다. 소녀 전영랑에게 국악은 "24시간 붙어 있는 존재"와도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던 1999년 서울 금천구에 있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인천에서는 국악을 전공할 수 있는 학교가 없어 버스·지하철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서울 학교로 나서고, 저녁 어스름에 인천 이모 집에서 노래를 배우는 일과를 고교 시절 3년 내내 반복했다. 어린 조카를 국악인의 길로 안내한 이모는 지금도 인천 남동구에서 오동국악예술학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전영랑씨가 무대예술에 눈을 뜬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진학하면서다. 그곳에서 '인생의 멘토' 김덕수 선생을 만났다. 남사당패 출신 장구 연주가인 김덕수 선생은 징·꽹과리·북·장구 등 4개의 민속 타악기가 어울리는 사물놀이 창시자다. 김덕수 선생은 제자들에게 "무대에 오른 국악인은 '소리'만 하지 말고 다 할 줄 아는 종합예술인이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전씨는 다양한 악기, 소리, 몸짓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김덕수 선생의 무대를 보며 "앞으로 이런 공연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전영랑씨는 대학 졸업 후 김덕수 선생의 '한울림예술단'에 입단해 3년간 활동했다. 고교 시절 전공한 '경기민요'를 더 깊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 경기민요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한울림예술단 시절 인연을 맺은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Fly In(플라이 인) 날아든다'를 냈다. 김덕수 선생의 가르침에서 얻은 영감으로 국악과 재즈의 화음을 조화해 우리 고유의 민요를 표현했다.전씨는 "소리를 하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창작해야 한다는 것을 한울림예술단에서 경험했고 이를 바탕으로 젊은 재즈 뮤지션들과 소통하며 국악과 재즈가 함께하는 무대를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 공연이 열린 1천석 규모 LG아트홀이 모두 매진됐고 버클리대 출신의 뮤지션들과 경기민요를 전공한 소리꾼의 조화는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다. 한을 담아 부르는 남도민요와 달리 경기민요는 흥겹고 빠르며 부드러운 특징을 갖고 있다. 전씨의 소리가 서양 음악 반주에 잘 녹아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전영랑씨는 국악과 재즈를 넘나들며 수년간 활동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결혼도 하고 하나뿐인 딸도 낳았다. 남편의 전폭적 지지 덕에 육아를 병행하며 국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결과 2019년 11월에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인 'MBN 보이스퀸'에 출연해 준결승에 올랐고 그 이듬해 12월에는 'TV조선 미스트롯2' 본선에 올라 새로운 장르의 가능성도 선보였다. 방송 이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내 뿌리는 국악에 있다'는 신념에 거절했다.무대 생활을 이어온 전영랑에게 코로나19 유행은 재앙과 같았다.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겪던 시기였지만, 대면 공연이 사라진 예술인들에겐 특히 더 가혹했다. 그에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황이 찾아왔다. 건강이 나빠지더니 목소리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평생을 전념해온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그때 전씨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건 아버지였다. 전영랑의 아버지는 전 씨가 어렸을 적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허리를 다쳤다. 척추장애를 가진 왜소한 모습이 딸의 앞길에 방해가 될까 봐 그토록 사랑하던 딸의 공연장에 가지 않고 늘 뒤에서만 조용히 응원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딸과 함께 지난해 'KBS 아침마당 도전! 꿈의무대'에 올랐다. 전씨가 코로나19 이후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나선 첫 도전에 아버지가 함께 섰다. 전영랑씨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꿈의무대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도전했다"며 "아빠가 저를 위해 처음으로 무대에 함께 섰다.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연습하고 무대를 준비한 경험이 코로나19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 계기"라고 했다.전영랑의 다음 목표는 국악인으로서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소리를 전승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천국악회관에서 경기민요 전통계승 발표공연도 했다. 또 올해 초 방영된 'KBS 인간극장 - 영랑씨의 아버지와 부르는 노래' 편이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 남동구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지난 2014년 '크라운해태 전국 아리랑 경연대회'에서 자신이 만들었던 '인천아리랑'을 지난해 다시 편곡해 전자음악(EDM) 버전으로 만든 것도 고향 인천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전씨는 "나는 인천에서 뿌리를 내린 소리꾼이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시도로 인천사람들에게 국악을 전하고 싶다"며 "즐거운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씨는 현재 가족과 함께 소래포구 근처에서 거주한다. 그의 단기 목표는 소박하다. 인천 대표 행사인 소래포구축제 무대에 올라 이웃과 인천시민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글/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전영랑 국악인은?■ 경력▲現)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 이수자 ▲2018~2019 용인대학교 강사역임 ▲2013~2018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강사역임 ▲2011~2013 중앙대학교 최고지도자과정 출강 ▲2007~2009 사단법인 김덕수 한울림예술단 단원■ 학력▲2010~2012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경기민요 석사과정 수료 ▲2003~2017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학사 무속 전공 ▲1999~2002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수상내역▲2019 KBS 국악대상 민요상 ▲2015 제 21회 경기국악제 민요명창부 대통령상 ▲2009 제 9회 인천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민요명창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09 제 35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민요명창부 차상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전영랑(40)씨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시도로 인천사람들에게 국악을 전하고 싶다"며 "즐거운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손길 안닿는 소외이웃 챙길 것" 복지 파수꾼 열정 '포순이봉사단' 이끌며 온갖 궂은일정치적 중립 불구 왜곡된 시선 불편자유수호합동위령제, 6·25 사진전도"저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채워주는 봉사활동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남양주 지역에서 20년이 넘도록 봉사활동을 이어오며 남다른 '나눔 인생'을 살고 있는 손정자 한국자유총연맹 남양주시지회 사무국장의 일성이다.그는 2002년 안보운동단체인 자유총연맹과 인연을 맺은 후 남양주희망케어센터(수요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기관·2007년 설립)의 시초격인 남양주시지회 소속 '포순이봉사단(여성봉사단체)'을 이끌며 왕성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직접 발품을 팔아 관내 16개 읍·면·동을 찾아다니며 지역사회 가장자리에 소외된 어려운 이웃을 발굴하고, 봉사단원들과 함께 보살핌 공백을 해소하는 게 그의 주된 임무다.특히 취약계층(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장애인가정,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을 대상으로 봉사단과 1대 1 매칭을 통해 빨래부터 식사 제공, 가사 지원은 물론, 말벗과 민원행정 도움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든든한 복지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손 국장은 "희망케어센터와 복지재단이 생겨 저희 역할이 축소될 법도 하지만, 우리 이웃 사이 틈새엔 여전히 차상위, 독거노인 등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이들에 대한 발굴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이 외에도 손 국장이 속한 시지회는 남양주시와 연계해 어려운 이웃들의 취업 알선, 주거환경 제공 등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며 지역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환한 등불이 되고 있다.자유총연맹은 1954년 모체인 아시아민족반공연맹으로 출범해 350만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법정단체로 '보수단체의 대명사'라는 인식이 크다.손 국장은 이 같은 인식을 경계하며 "우리 연맹 본연의 역할은 보안과 안보에 대한 교육"이라며 "보안·안보는 진보, 보수로 양분될 수 없다. 연맹 정관에도 정치적 중립이 명시돼 있는데 일부 왜곡된 시선이 불편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대 흐름에 따라 현재는 봉사단체로 주 업무가 바뀌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듯 현 세대, 미래 세대를 위한 안보현장 견학, 자유수호합동위령제, 6·25 사진전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관심과 성원을 당부하기도 했다.끝으로 손 국장은 "그간 연맹 여성 회장님을 비롯해 회원 분들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랜 동행이 가능했다"며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연맹 목표 아래, 같은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역사회가 잘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남양주/하지은기자 zee@kyeongin.com
자연과 문명의 공존… 다산의 위대한 유산 10월 3~6일 다산수변공원 일대 개최'정약용 자연관' 반영 전시정원 꾸며'지역사회 참여' 체험프로그램 구성도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테마 산책지난해부터 '시민정원사' 양성 사업수료생 실력 뽐낼수 있는 공간 제공내달 18일 '정원음악회' 등 사전행사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정원'(Garden School)이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자연과의 교감, 심신의 건강을 중시했던 에피쿠로스에게 정원은 철학을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와 만족을 찾는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정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단 에피쿠로스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 '리세움'(Lyceum) 역시 정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중정(中庭·건물 안에 설치한 정원 혹은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곤 했다. 이처럼 정원은 변모하는 시대 속 변치 않는 하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점이다. 이제 천혜의 자연을 갖춘 남양주시에서 '정원의 풍류'를 맘껏 누려볼 때가 왔다. 자연과 도시 그리고 문화를 연결하는 제12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가 오는 10월 남양주에서 꽃피운다.■ 자연-도시-문화를 잇다…남양주, 2024 경기정원문화박람회 개최'2024 제12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이하 박람회)가 오는 10월3~6일 4일간 다산동 중앙·선형·수변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2010년 시흥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매년 경기도내 31개 시·군을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다. '정원 산책'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34만㎡ 규모로 조성, 드넓은 공간에서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예정이다.시는 이번 박람회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자연관을 반영한 전시정원,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 정원,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탄소제로 정원까지 다양한 콘셉트의 정원을 조성한다.중앙공원부터 수변공원까지 1.4㎞ 구간의 정원산책길을 조성하고, 이를 활용한 보행 문화 프로그램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박람회는 '정원 산책'이라는 주제 속 3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다산으로(전시정원) ▲공동체로(참여정원) ▲탄소제로(정원문화 프로그램) 등이다. 시는 지역 특성에 정원의 가치를 더한 남양주시만의 특색 있는 지역축제형 박람회를 열고, 이를 통해 남양주시의 정원관광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먼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철학과 자연관을 재해석한 '다산으로 정원산책'은 선형공원을 산책하며 만나는 다양한 전시정원으로 구성된다. 작가정원과 시민정원, 생활정원, 시민정원사정원, 초청작가정원 등 5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다.작가정원은 정원가 다산의 생태적 자연관을 해석한 정원으로, 개소당 100㎡ 규모로 총 6개소를 조성한다. 다산의 자연관을 해석하고 지속가능한 현대적 자연주의 정신을 담은 정원 등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선형공원 내 마루숲 구역의 초청작가정원은 땅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정원의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황지해 정원가를 초청해 구성한다. 생활정원 6개소와 시민정원 10개소를 조성해 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에게 문화적 산책의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두 번째로 '공동체로의 정원산책'은 지역사회의 협력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상가정원, 숲정원, 휴게정원, 아파트 정원 등이 들어선다.앞서 시는 지난 3월 국립수목원과 지역고유식물·광릉숲·수목원 등 자연자원보전과 정원도시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국립수목원은 팝업가든과 체험프로그램 등으로 박람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상가 주변에 위치한 중앙공원·선형공원·수변공원의 특성을 반영해 상인회와 함께하는 블루밍 정원, 정원 작가와 관내 청년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예술 정원, 정원산업전 등도 꾸밀 계획이다.기후변화에 대응해 지구와 시민이 힐링하기 위해선 도시 정원의 활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는 기후위기 문제의 해법으로 '정원'을 선택했다. 정원의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다양한 친환경 프로그램을 도입해 박람회의 교육적 가치와 친환경 사업의 활성화를 유도할 방침이다.시는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정원 산책 프로그램을 구상, 4가지 테마를 선정했다.먼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농산물 장터, 정원산업전 등이 포함된 '친환경 마켓산책'과 정원토크콘서트, 플로깅 및 기부산책이 포함된 '렛츠그린 비즈산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외에도 '업사이클 체험산책'과 공연·전시 프로그램인 '초록극장 문화산책'도 예정돼 있다.■ 남양주 1호 시민정원사 솜씨 뽐낸다…'시민정원사 정원' 조성시는 이번 박람회에서 시민정원사 정원을 1개소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2023년 제1기 시민정원사 양성 교육(기초반)'을 수료한 시민정원사들을 대상으로 심화반을 운영, 실습 정원 형태로 조성하는 정원이다.시민정원사 양성사업은 박람회의 남양주 유치가 확정되면서 정원문화 확산과 박람회의 인적인프라 구성을 위해 추진됐다. 시민들에게 정원 및 자연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정원도시 남양주를 조성하기 위한 인적자원 양성을 목표로 한다.해당 사업은 지난해 5월 첫 대상자 모집 당시 단 1분 만에 접수가 완료되는 등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교육은 ▲정원과 정원사 ▲정원의 식물 ▲정원설계 ▲정원의 일상적 관리 ▲정원의 겨울준비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으며, 현장 견학과 실습도 함께 진행했다.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총 25명의 시민정원사가 제1기 남양주시민정원사 양성 교육을 수료했으며, 올해는 1기 수료생들을 위한 심화반 과정과 제2기 기초반 과정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시는 시민 주도의 정원문화가 확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리 만나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5월18일 사전행사 개최봄기운이 가득 풍기는 5월,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사전행사인 '정원사가 되어 봄'이 시민들의 마음을 들뜨게 할 전망이다.사전행사는 오는 10월 개최 예정인 박람회에 대한 시민 관심을 유도하고자 마련됐다. 5월18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다산중앙공원 일대(야외무대, 야외정원지원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행사에서는 개막식과 함께 정원음악회, 정원문화 체험부스를 운영하고, 시민추진단 발대식도 함께 진행한다.시민추진단은▲정원조성팀 30명 ▲정원홍보팀 20명 ▲자원봉사팀 78명 ▲시민정원사팀 52명(비모집) 총 180명 내외로 구성 예정이며, 시민추진단은 10월 초 박람회 종료 시까지 활동하게 된다.또, 행사에선 공모설명회도 열릴 예정이다.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주체로 정원작품 공모 안내와 함께 한국 정원 및 다산 정약용 인문학 강의, 대상지 설명 및 공원 소개 등 다채로운 행사가 계획돼 있다.시는 이번 박람회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정원박람회이자, 시민 참여형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광덕 시장은 "오는 10월 열리는 제12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남양주시의 풍부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지역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라며 "자연 친화적 정원도시 남양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주 시장은 "이용객 입장에서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촘촘히 계획하고,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시민 참여형 축제가 돼야 한다"며 "특히 재능을 가진 남양주 청년예술가들을 발굴해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박람회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남양주/하지은기자 zee@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남양주 다산수변공원 전경. /남양주시 제공지난 2월 '2024 제 1기 남양주 시민정원사 양성교육 심화 과정'이 개강한 가운데, 예비 남양주시민정원사들이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남양주시 제공지난해 4월 주광덕 남양주시장(앞줄 왼쪽)이 시민들과 함께 다산중앙공원에서 열린 마을정원 가꾸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남양주시 제공
"더 벌려고 서로 싸워 뭐해요" 그렇게 시간이 비켜간 그 골목 "어려웠던 시절 애들 공부시키려 시작""미군 햄 넣고 끓여보니 맛 괜찮더라고"88올림픽땐 '명물찌개'로 잠시 개명도가게들 수십년 한자리… 비결은 '상도의'클럽·양복점… 미군 관련 추억들 가득전성기 상징 향군클럽 '기억저장소'로촛불 효시 '미군 장갑차 사고' 아픔도두 사진을 비교해보니, 옛 이름 그대로 운영되고 있는 식당들이 눈에 띕니다. 진미식당, 한양식당, 오뎅식당, 형네식당…. 진미식당 김용만 사장님은 어머니의 식당을 물려받아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26살때부터 어머니 도와서 식당을 했으니 오래됐죠. 저희가 시작할 땐 오뎅식당, 주민식당, 형네식당 이렇게 3개 뿐이었어요. 그게 초창기였죠. 그러다 점점 유명해지면서 많을 때는 20개가 넘게 늘어나기도 했죠. 그때는 지금 골목 뒤쪽 아파트 자리에 양주군청이 있었고 교육청도 있어서 낮이고 밤이고 늘 손님으로 꽉꽉 채워졌어요."형네식당 창업주인 박용복 사장님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뜸한 시간, 신문을 보고 계셨습니다. 조용히 다가가 부대찌개 골목의 옛 추억이 궁금하다고 묻자 반갑게 그 시절을 회상해주셨습니다. "내가 1972년부터 부대찌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지. 지금은 없지만, 그전에는 미군부대가 많았어. 그 부대에서 나오는 고기(햄)도 많았고. 거기서 고기를 가지고 나와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 그때는 살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먹는 것도 부족하지만 얘들 공부도 가르쳐야 하니까 뭘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그 고기들에다 김치랑 파, 마늘 같은 양념 넣고 우리 식으로 얼큰하게 끓여봤더니 맛이 괜찮더라고. 그래서 팔아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 이름을 뭘로 해야 하나 생각하다 부대에서 나온 고기로 만든거니 부대찌개라 붙인거고."이름이 잠시 '명물찌개'로 바뀐 일화도 들려주셨습니다. "88서울올림픽 전에, 외국에서 손님들이 많이 올 텐데 시에서 부대찌개라는 이름이 좀 듣기가 그렇다는 거지. 그래서 이름을 의정부 명물찌개로 바꾸기도 했어.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그래도 의정부에 없는 사람들 먹여살린 게 부대찌개이니, 그 의미를 살리자 해서 다시 부대찌개로 돌아왔지."지금은 박용복 사장님의 며느리가 이어받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40여년 동안 변치 않고 한자리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비결이 뭘까요. 박용복 사장님은 '상도의'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오래했어도 우리들끼리 싸우지를 않아. 우리 부대찌개 골목은 호객행위, 이런 것도 안한다고. 다들 '도의'를 지키는 마음으로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는 거야. 내가 뭐 더 많이 벌고 이런 욕심 안내.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는거지."식당 이름이 바뀌어 인터뷰를 놓칠 뻔했던 홍이 부대찌개, 옛날 이름인 경원식당을 30여년 간 운영해온 이춘화 사장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모두 부대찌개 식당들이지만 다 고유의 맛이 있고 그 맛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알아서 각자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끼리 막 경쟁하고 그러지 않아요. 요즘은 워낙 명물이 돼서 외지에서도 많이 오지만 의정부 사람들은 늘 오는 손님들이 꾸준히 옵니다. 나는 손님들이 너무 고마워요. 어릴 때 먹던 맛이 생각나서 온다는 손님들이 가끔 맛있게 먹고 간다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데, 내가 고맙죠. 손님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그래서 장사 계속 하는 거예요."의정부 부대찌개만의 특징도 설명해주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직수입되기 전까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소시지로 만들었어요. 도매상 통해 받는 소시지도 있지만, 갈은 고기를 넣어서 만든 미군 부대 소시지가 직수입되는 거라 더 맛있다고. 이게 고염과 저염이 있는데 고염이 맛이 더 좋고 2배로 비싸요. 어떤 데 가보면 이거 말고 여러 소시지 잔뜩 넣어주는데 영 맛이 없어요. 이걸 넣어야 진짜지."예전엔 여름 휴가철이면 포천 유원지, 송추계곡 등 경기북부로 놀러왔다가 들르는 휴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물놀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북부 쪽에 먹을 만한 게 부대찌개 뿐이니, 휴가철 손님들이 여기로 모였어요. 물놀이 하고 와서 신발은 축축하게 젖어있고 아이들 감기 걸릴까봐 수건도 가져다가 닦아주고 그랬죠."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은 이제 전국 맛집으로 알려져 휴일이면 멀리서 차를 타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 주차장 구비가 필수가 됐습니다. 밤 11시까지 장사를 하던 이 골목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요즘은 9시만 되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8개 미군부대로 둘러싸인 의정부에서 서민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준 부대찌개의 추억만큼 미군과 관련된 것이 의정부에는 참 많습니다. 부대찌개 골목 끝에도 캠프 라과디아가 있으니까요. 박정근 의정부문화원 사무국장은 "전쟁 직후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에서 남은 걸 가져다 집에서 한국식으로 조리해먹은 것이 식당화가 된 걸로 알려져 있다"면서도 "정작 부대 주변엔 부대찌개가 없고 치킨과 피자, 그리고 자장면이 인기가 많았다"고 소개했습니다."미군부대가 의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산업시설이 별로 없는 도시예요. 부대가 도시를 부양하는 성격이 강해서 상권도 미군부대에 맞춰져 있는 편입니다. 예전에 의정부에는 배쪽에 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길에서 바로 환전해주는 달러상 아주머니들도 많았어요. 양복점도 많았어요. 미군들이 있다보니 양복을 맞추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는 우리가 재료값도, 인건비도 싼데 기술력이 워낙 좋으니 본국 돌아가기 전에 10벌, 20벌씩 맞춰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어요."미군클럽도 많았습니다. 미군이 직접 운영했던 '향군클럽'이 대표적이죠. 2012년에 문을 닫은 향군클럽은 현재 의정부문화원이 의정부시와 시의회의 지원을 받아 재단장 후 '의정부 기억저장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의정부 기억저장소는 의정부의 옛 추억을 시민들이 직접 한땀한땀 모아 전시해둔 특별한 추억 박물관입니다. 박정근 사무국장은 이곳을 의정부의 기억을 담는 공간, 시민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캠프 레드클라우드(CRC)는 미사령부가 있는, 가장 큰 미군부대예요. CRC를 중심으로 향군클럽 쪽으로 이어진 이 거리가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의정부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입니다. 향군클럽은 이 거리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구요. 의정부는 미군클럽이 많다보니 음악의 도시이기도 해요. 외국 앨범을 구하거나, 음악 좀 듣는 사람들에게 성지 같은 도시였죠."또 한때는 미군과 갈등도 심하게 겪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미군 장갑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미군의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하던 시민들이 CRC 앞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촛불을 들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면서 미군에 강력한 사과를 요구한 것이죠. 촛불시위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추억을 공유한다는 말처럼, 의정부 기억저장소 곳곳에 시민들의 추억이 방울방울 걸려 있습니다. 기억저장소 뿐이 아닙니다. 30년 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에도 유년의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변하지 않음을 도태됐다 채찍질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숱한 세월에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지켜주어 어쩐지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찔끔 눈물도 나는 건 아직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어른이'이기 때문이겠죠.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왼쪽은 의정부 찌개 골목의 1993년 5월 모습. 당시의 부대찌개 식당들이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경인일보DB,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형네식당 창업주 박용복 사장.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홍이부대찌개(옛 경원식당) 이춘화 사장.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1959년의 의정부 제일시장 전경. /경인일보DB의정부기억저장소에 그대로 보존된 옛 향군클럽 간판.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지난 2009년 미 2사단 캠프 스탠리 소속 장병 50여명이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효순·미선양의 7주기를 앞두고 추모비를 찾아 헌화하고 두 학생의 죽음을 애도했다. /경인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