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우·정춘자 부부
수원지역 문화계와 여성계에서 이장우(67·화성문화재단 이사장·의학박사), 정춘자(64·수원YWCA 명예회장)라는 이름은 이 분야 관계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설령 안다손 치더라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부부 동반을 별로 하지 않는데다 두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부의 사는 방식은 30~40대 부부도 의아할 만큼 독특한 데가 있다.

얼마 전 화성문화재단 주최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마치고 다소 여유를 찾은 이 박사와 수원YWCA회관 건축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 명예회장을 지난 15일 수원 광교산 자락 집으로 찾아갔다. 이 박사는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았고, 부인 정씨는 영락없는 시골아낙네 차림으로 마당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자마자 기자도 두 분이 부부인 걸 최근에야 알았다고 하자 이 박사는 “가끔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본 사람도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걸로 안다”며 웃는다. 그렇다고 부부동반을 꺼리는 노년층의 보수성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부부만큼 각자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해온 사람도 드물거니와 서로 믿고 배려하는 마음은 얼핏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요즘 생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자녀를 분가시키고 둘이 단출하게 사는 부부가 거의 별거(?) 상태다. 회관 짓는 일을 맡아 부지 확보에서부터 건축기금 모금 등 눈코뜰새없이 바쁜 아내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이 박사가 인근 화성시에 있는 유료 양로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덕분에 아내는 당뇨가 있는 남편의 식사 걱정, 잦은 외출에 따른 부담감, 밤늦은 귀가 때문에 눈치볼 필요없이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박사가 “제때 밥 먹을 수 있고 운동하기에도 편해서”라고 농을 섞어 이유를 대자, 정 명예회장은 질세라 “당뇨가 처음 생겼을 때 무려 1년6개월이나 '지극~정성'으로 야채죽을 끓여줬다”며 응수했다.

이 박사는 수원이안과로 유명한 안과 의사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인천의료원으로 가기로 돼 있었는데, 당시 수원 국회의원이던 이병희씨가 억지로 경기도립병원에 책상을 마련해 끌어내렸다고 한다. 수원에 의대에서 정식 코스를 밟은 안과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 “아침에 출근하면 환자들이 두 줄로 늘어서 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진료를 하다 보면 너무 지쳐서 울고 싶을 때도 있었고요.” 이때 과로가 당뇨를 가져왔다고 아내가 말을 거든다.

의사인 이 박사가 문화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은 모친의 영향이다. 광주 수피아여고를 졸업한 이 박사의 모친은 음악 교육에 관심이 많아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이 박사는 대학시절 의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을 정도의 수준급 실력.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지난 82년 수원시향, 83년 수원시립합창단 창단 당시 민간인으론 유일하게 자문위원을 맡아 지금은 국내 굴지의 음악단체로 성장한 수원시립예술단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예술분야가 위축되게 마련인데 20년 전에는 오죽했겠어요? 시향이 왜 필요하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예술을 꼭 해야 되느냐는 둥 반대 목소리가 거셌죠. 창단 이후에도 여러 일을 도왔지요. 시향의 김형순 악장도 인천시향에 있는 것을 아버지(김동휘 등잔박물관 관장)를 들먹이며 설득해서 데려왔고요. 또 단무장 자리를 음악이 뭔지도 모르는 퇴직 공무원에게 주려고 해서 그걸 막느라고 꽤 힘들었지요.”

당시 에피소드 한 토막.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관객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연주회는 열리는데 올 사람은 없고…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구르다 생각해낸 것이 환경미화원을 초청하자는 것. 시 소속 미화원을 초청해 어렵사리 빈 객석을 채웠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미화원의 옷에 밴 냄새가 공연장에 가득했었다며 추억을 더듬었다.

시립예술단의 초창기 멤버들도 이 이사장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시립합창단 창단 멤버인 김용달 씨는 “연주회가 끝나면 꼭 뒤풀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연주가 끝난 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시곤 했다”며 “단복이 없을 때는 거액을 들여 단복을 맞춰주셨을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고 말했다. 또 시향의 전 단원은 “현 파트 단원들이 실내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비를 들여 후원하셨는데, 음악인들이 자기 주장이 강해 아마 마음고생을 하셨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이같은 사랑으로 몇 년 전에는 직접 그린피스 실내악단을 만들기도 했으며 현재 코람데오 남성중창단 단장으로 민간 음악단체를 육성하고 있다.

아내를 만난 것도 음악이 매개다. 의대 시절 정 명예회장의 학교에 오케스트라 초청 연주를 갔다가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약학대학 여대생을 만난 것.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정 명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