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지금까지 해오던 운동을 그만둘까 고민 중이다. 한때 유명 배우였던 엄마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아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소년의 삶에서 행복한 사람은 재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버지뿐인 듯하다.
소녀는 500권이 넘는 기록이 있는 도서 대출 카드를 가지고 있지만,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소녀는 지금 그 책들을 처음부터 다시 빌려 읽는다. 우연히 만난 두 청춘이 남루한 삶 속에서 함께 초인을 꿈꾼다.
'곡성'과 '시빌워'가 각각 600만명과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격돌하고 있을 무렵, 전국 28개 스크린에서 단지 6천여 명의 관객들과 만나고 조용히 막을 내린 영화가 있다. 서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초인'이다.
대자본이 투입된 상업영화에 밀려 고작 수십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한국 독립영화의 현실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1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힘든 현실을 끌어안고 살아내야 하는 영화 속 소년과 소녀를 닮았다.
영화에서 도현의 운동 코치는 말한다. "넌 꿈이 있냐? 없지? 여기 체조부 애들 다 그래. 꿈 같은 거 없어, 인마. 그리고 나도 너희들에게 꿈, 희망, 이런 거 줄 수 없다고. 그냥 하는 거야, 그냥. 생각하면 몸도 아프고 괴로우니까." 아마도 현실을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수현은 니체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다 초인이래. 그런데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면 우리 삶은 변화가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게 된대." 이들의 말은 덥석 집어먹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외면하기도 어려운, 뜨거운 감자 같은 삶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삶에 대한 이 척력과 인력이 또한 영화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배우들의 연기에서 감독의 섬세한 연출까지 풋풋하고 청량한 기운이 인상적인 영화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