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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임진강변이 그의 터전이다. 작은 보트와 그물에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갈 수는 없지만, 경계만 넘지 않으면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 배가 고장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물이 스크루에 엉키는 바람에 모터가 고장났다. 동력을 잃은 배가 북에서 남으로 흘러왔다.

단지 민간인이었으므로, 단지 사고였으므로 금세 북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가족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허술했던 그의 그물과는 달리 이념의 그물은 촘촘하고 질기다. 눈이 찔리고 아가미가 찢겨도 그가 빠져나갈 구멍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이쪽 그물 아니면 저쪽 그물일 뿐.

김기덕 감독의 '그물'은 피곤하다. 그러고 보면 김기덕 영화가 피곤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거친 논법과 강렬한 이미지의 낯섦은 미학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을 힘겹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물'에서 느끼는 피곤함은 질감이 다르다.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던 그의 시선이 분단이라는 사회적 현실로 향하는 순간 우화적인 그의 이야기가 현실과 밀착되기 때문이다.

김기덕은 이전에 '풍산개'(2011)와 '붉은가족'(2013)의 각본을 통해 분단의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두 작품 모두 분단이라는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전자는 사랑이, 후자는 가족이 전면에 부각됐다.

그에 비해 '그물'은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주의와 이념의 그물에 걸린 나약한 개인을 보여준다. 이념과 가족이라는, 서로 배타적인 영역의 가치를 한데 올려놓고 저울질하기를 강요하는 국정원의 폭력성과 입으로는 이념을 외치면서 손으로는 달러를 세는 보위부의 이중성은 서로 데칼코마니처럼 겹치면서 체제와 이데올로기라는 그물의 맹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물'의 이야기와 영상은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덜 극단적이고 덜 충격적이다.

그렇다고 덜 강렬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김기덕이라는 뛰어난 감독과 걸출한 배우 류승범의 만남이 빚어낸 시너지 덕분일 것이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펄떡임을 연상시키는 류승범의 연기에서는 비릿한 날것의 냄새까지 풍기는 듯하다. 그 비린내는 어쩌면 분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몸에서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