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일보사, 매일신보사 공동 주최 전조선자전거경기대회1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 열린 만석동매축지-1913년 4월 14일 경성일보와 매일신보 공동 주최의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가 인천 만석동매축지에서 열렸다. 전날 용산에서 우승을 차지한 엄복동은 이날 경기에서도 결승점에 가장 먼저 들어와 동포들의 환호를 받았다. 사진은 당시 인천자전거대경주장의 전경모습. 출처/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매일신보 1913년 4월 16일자.

1913년 4월13일 '전조선경주대회'
용산 개최 다음날 인천서 레이스
일본인 선수 제치고 잇단 우승컵

동구, 배다리 동호회1세대 활약상
해안산책로 등 재조명 사업 추진


1913년 4월 12일 아침 봄비가 내렸다. 이날은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全朝鮮自轉車競走大會)가 열리는 날이었다.

매일신보는 당시 대회 3일 전부터 신문 지면을 통해 인천에서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가 열린다는 광고를 냈다. 인천 시민들은 자전거경주대회가 만석동 매축지(매립지)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기대감에 부풀었다.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는 당초 4월 12일 인천에서 첫 대회가 열리고 두 번째 대회는 13일 용산 연병장, 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강옥엽 인천시사 편찬위원은 "매일신보 1913년 4월 13일자를 보면 '12일 아침 춘우(春雨)가 내렸다. 13일 대회는 용산 연병장에서 열린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인천 만석동에서 열리기로 했던 대회가 비로 인해 취소된 것으로 추측된다"며 "13일 용산에서 첫 대회를 치르고 다음날인 14일 인천에서 두 번째 대회가 열렸다"고 했다.

13일 용산 연병장에서 첫 대회가 열린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에서 엄복동(嚴福童)은 '1류 선수경기'에서 일본인 4명을 제치고 우승해 동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두 번째로 열린 인천 대회에서는 엄복동의 우승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오전 9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11시에는 경주장 주위와 관람석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대회에서도 엄복동은 수많은 관람객이 보고 있는 가운데 결승점을 제일 먼저 통과하면서 동포들의 환호를 받았다.

인천 자전거 역사 재조명 동일방직 일대 항공촬영
자전거대경주장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현재 만석동 일대.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1906년도 서울에서 처음으로 자전거경주대회가 열린 이후 인천에서도 자전거대회가 유행했다.

동구 만석동 지역은 1906년 이후 인천 자전거 역사의 산실이었다.

언론인 출신의 인천 향토사학자인 고일(高逸) 선생의 책 '인천석금'(仁川昔今)을 보면 "만석동 파출소 근방에서 엄복동, 조수만의 초기 자전거 경주대회도 나중은 웃터골로 자리를 잡고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국내 사이클 동호회 1세대가 활동한 지역 중 하나도 동구 배다리다.

195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한민국 사이클 국제대회 사상 첫 2관왕을 차지한 이홍복(李洪馥) 할아버지는 인천 배다리 쪽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이클 동호회를 결성했다.

동구는 만석동을 중심으로 인천 자전거 역사를 재조명하기로 했다. 현재 추진 중인 만석·화수 해안산책로 조성사업에 인천 자전거 역사를 입히는 방법을 먼저 구상하고 있다.

해안산책로에 함께 만들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해안산책로를 시작으로 역사 고증 등의 과정을 거쳐 인천 자전거 역사 속 동구에 대한 구체적 활용방안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에서 우승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일제강점기 자전거 영웅으로 불린 엄복동(1892~1951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