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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상 수상자 송경미씨의 편지

아빠! 다음엔 우리 아들로!

아빠, 요즘 아빠의 세월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어요?

여덟, 여섯, 엄마품이 세상의 전부일지 모르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저는 가끔 아빠도 엄마도 잊고 살아요.

많은 밤, 아이들로 쌓인 피로에 그저 멍하게 있을때

밀린 업무와 엉망인 집안꼴에도 아무것도 하기싫고 머리와 배가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올 때 '아, 나도 엄마가 있었지. 나도 아빠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정말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외롭다가도 그 생각이 들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게 내년이면 마흔인 나에게도 엄마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힘이 된다니 부모의 존재는 언제까지 자식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일까요.

아이들은 물만 줘도 자라는 풀처럼 쑥쑥크고,

잎새 한번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 같은데 줄기가 돋아나버리는 것이 이러다 내가 오를 수 없는 나무가 되어버릴까 매일이 아쉬운 마음인데 아빠도 나를 키우며 그렇게 아까웠을까를 생각합니다.

라면도, 피자도, 과자도 몸에 좋지 않다고 먹지못하게 했던 아빠에게 피자좀 먹고싶다고 투정부렸던날, 시장에서 돌아오는 아빠의 손에 들린 피자를 보고 마냥 신났던 그날.

한손으로 자전거를 몰고, 한손으로 피자를 들고 오느라 흔들리고 흐트러졌지만 그날 피자는 정말 맛있었는데 혼자 피자를 주문하고 있었을 아빠를 생각하면 왜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한달에 한번 집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던 역전에서 허리춤에 묶어놓는 보자기를 풀러 내주던 용돈 봉투도,

지역 노래자랑에 구경을 왔는데 가수 송대관이 나왔다며 전화기 너머로 노랫자락을 들려주던 아빠의 들뜬 목소리도, 손을 얼마나 멀리 뻗어 전화기를 들었는지 무슨 말을 해도 아빠에게 전달되지 않던 서울의 어느버스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빠는 모르죠?

아빠는 모르겠지만 저는 늘 아빠의 인생에 미안했어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내가 아빠의 세상살이 힘이 되었기를.

지금 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빠의 딸도 그러했기를.

어떤 인연으로 만나 이렇게 목화솜처럼 따뜻한 사랑을 받게 됐는지 몰라도

다음 생에는 내가 아빠의 엄마로 태어나 받은 사랑 더 크게 주고싶어요.

아빠! 사랑하는 아빠! 그래도 그때가 되기 전에 아빠랑 딸로 이세상 좀 더 재밌게 살아가요.

난 나보다 아빠가 행복하면 좋겠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