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기억법 / 밀려난 삶의 반 : 가족 간병과 나

정보·인력·경제 세 가지 최소 조건

충족 못하면 고립 위험 ‘간병 약자’

청소년·청년 ‘영케어러’ 대다수 해당

낮은 삶의 질, 경제적 간극 벌릴 것

‘간병 약자’

국가와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아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신체적인 장애, 경제적 빈곤, 문화적 차이…. 우와 열이 생기는 인간사에서 약자가 생겨나는 건 어찌보면 세상의 자연스러운 이치일지 모르죠. 그럼에도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살펴보고 돌보는 건, 어쩔수 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적 약점을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보완하면 건강한 삶을 다같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1편에서 가족 간병과 일상이 서로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이야기했습니다. 질병과 지원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정보 우위력’, 언제든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돌봄 인력’, 가감 없이 의료비를 지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 등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이는 ‘1형 당뇨’를 앓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가 비록 ‘시간 빈곤’에 처했음에도 최소한의 일상과 간병을 양립할 수 있었던 건 세 조건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가 만난 이정민(가명·20대 초반)씨는 가족 간병과 일상의 공존이 불가능한, 즉 ‘경제적인 여유’, ‘돌봄 인력’, ‘정보 우위력’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한 가족 간병인입니다. 우리는 이정민씨와 같은 가족간병인을 ‘간병 약자’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가족 간병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되고 사회적 고립상태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족간병인은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간병인 서비스 등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주변에 환자를 함께 돌볼 수 있는 돌봄 인력이 없다면 간병을 도맡은 간병약자는 온전히 환자에게만 자신의 시간을 쏟아내야 합니다. 간병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동안 사회경제적 활동은 점저 더 불가능해지고 환자의 상태·간병 등에 대한 정보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점점 더 빈곤해지고,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커집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됩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가족돌봄청소년·청년(이하 영 케어러)의 상당수가 ‘간병 약자’입니다. 아픈 가족을 오롯이 홀로 책임져야 하는 영 케어러는 당장의 경제적 활동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시간과 기회마저 잃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픈 어머니를 홀로 간병한 이정민 씨도 ‘간병 약자’이자 ‘영 케어러’입니다.

경인일보 디지털콘텐츠센터가 미드저니 ai에 ‘가족간병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청년 간병인, ’영케어러‘’를 입력하여 생성한 이미지
경인일보 디지털콘텐츠센터가 미드저니 ai에 ‘가족간병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청년 간병인, ’영케어러‘’를 입력하여 생성한 이미지

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2021년 ‘대구 간병살인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22세 청년이었던 A씨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집에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 우리 사회는 A씨를 ‘아버지를 죽인 패륜’으로만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A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월세를 밀리고, 주변에 쌀을 빌리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 사건은 ‘영 케어러’에 무관심했던 한국의 ‘사회 안전망’ 문제로 확대됐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4월 가족돌봄청년의 돌봄 현황과 삶의 질, 복지욕구 등을 조사한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정민씨와 같은 영 케어러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조사는 중증질환, 장애, 정신질환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이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는 만 13세~34세를 대상(설문조사 4만3천832명, 심층조사 810명)으로 실시했습니다. 정민 씨처럼 초등학생부터 간병을 하는 아동들을 제외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영 케어러들이 가족 간병에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영 케어러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21.6시간이었습니다. 별다른 가족이 없는, 정민씨처럼 홀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주돌봄자 영 케어러로 대상을 한정하면 ‘32.8시간’으로 훨씬 시간이 늘어납니다. 또 대부분의 영 케어러들은 일주일 중 하루 가까이를 가족 간병에 소모했습니다.

정민씨도 인터뷰 중간중간 가족 간병의 어려움으로 “내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공부, 친구들과 놀 시간 같이 기본적인 일상은 물론이고, 나의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결국 ‘내 시간’이 없는 문제는 영 케어러 전반에 퍼진 문제인데, 다양한 경험과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는 일반적인 청년들은 이들이 간병에 빼앗긴 시간들을 켜켜이 쌓을테고, 미래에는 이들간의 큰 격차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지난 2일 경기도 한 카페에서 이정민(가명·20대초반)씨를 만났다. 8살때부터 아픈 엄마를 홀로 간병해온 정민씨는 음악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지난 2일 경기도 한 카페에서 이정민(가명·20대초반)씨를 만났다. 8살때부터 아픈 엄마를 홀로 간병해온 정민씨는 음악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과중한 간병으로 이들의 삶의 질은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영 케어러들에게 삶의 만족도를 물어보자 22.2%가 본인의 삶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이는 일반 청년(10.0%)의 2배 이상으로, 주돌봄자는 일반 청년의 3배 이상(32.9%)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케어러의 우울감 유병률(61.5%)은 일반 청년(8.5%)의 7배 이상, 주돌봄자(70.9%)는 일반 청년의 8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미래계획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한 영케어러는 36.7%, 주돌봄자는 46.8% 였습니다.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간병으로 인한 삶의 질 하락은 영 케어러 이정민 씨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울증을 진단받아 치료받았습니다. 이정민씨는 어린 나이에 간병감옥에 갇힌 영 케어러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이정민 씨는 “어른들도 힘든 간병을,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나이부터 경험하면 점점 환자와 떨어지기가 힘들어지고 제대로 갖춰야 할 성장과정을 거치지 못하니 결국은 한명의 성인으로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간병 약자’인 영 케어러에 대한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간병 대상자와 잠시 떨어져 개인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봄 인력’이 필요한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영 케어러가 간병인을 고용하기란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정민씨도 이 점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정민씨는 “나는 딸이 엄마에게 간이식을 하는 케이스라 좀 더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연결고리들이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이나 장학재단, 병원 사회복지팀 등에서 많이 도움을 주셨다”면서도 “하지만 나 역시 아주 어렸을 땐 병원에 사회복지팀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저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한 것이지, 간병에 대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돈도, 정보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실태조사에 응한 청년들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복지 서비스도 정민씨의 의견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영 케어러의 복지 욕구 중 가장 높은 건 생계지원(75.6%)이었습니다. 영 케어러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겪고 있다는 걸 반증했습니다. 의료지원(74.0%)과 휴직지원(69.9%)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가족 간병은 영 케어러의 정서적인 불안을 고조시키기도 합니다.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간병을 한다고 가족의 건강이 나아진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영 케어러들은 무력감과 죄책감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정민씨도 영 케어러들의 심리상담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간병의 시간은 이들에겐 감당하기 벅찬 어려움입니다. 영 케어러의 평균 돌봄기간은 46.1개월로, 주돌봄자는 54.7개월을 기록했습니다. 조사 참여자 중 절반 이상이 24개월 이상 돌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영 케어러들이 끝없이 이어진 어두운 간병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셈이죠. 이때문에 영 케어러들은 심리상담 지원을 바랐습니다. 특히 주돌봄자 영 케어러로 한정해서 살펴보면 심리상담을 원하는 비율이 76.8%로 매우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족 간병과 일상의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간병 약자’는 나의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눈앞에 고통받는 간병 대상자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던져야 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특히 간병 약자 중 ‘영 케어러’는 자신의 미래자본을 포기하고 돌봄에 나서는 것이기에 이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절실합니다. 영 케어러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 김정훈 경기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영 케어러가 겪는 현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소년·청년기에 사회 진출이라는 큰 허들이 있어요. 자기 자신을 다 갈아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인 거죠. 이런 구조에서 자신한테 온전하게 다 갈아넣어도 모자를 판에 내 시간을 할애할 다른 대상이 있다는 것은 미래의 공백을 만드는 거죠.

김정훈 경기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간병을 선택할 자유조차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이들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가족 간병을 하든지, 위탁을 맡길 수 있는 형편이 되면 위탁을 맡겨라 정도, 그 외의 선택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붙죠. 가족간병을 하면 네 인생은 간병에 다 투자해야 돼’라는. 영 케어러에겐 사실 굉장히 폭력적인 겁니다.”

가족간병 현실에 놓인 청년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간병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현실 그 자체가 ‘사회적 폭력’은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정민씨에게 물었습니다. 만약에 간병을 시작했던 그때, ‘간병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잠시 머뭇대던 정민씨는 말했습니다.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저는 선택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