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토니상, 뉴욕 연극 비평가상을 석권한 현대 고전 명작

1949년 브로드웨이 초연, 오늘날 우리 모습과 대입해 볼 여지 충분

박근형·손병호, 손숙·예수정 등 한국 연극계 이끈 배우들의 열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장면 / (유)쇼앤텔플레이, (주)T2N 미디어 제공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장면 / (유)쇼앤텔플레이, (주)T2N 미디어 제공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다.”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윌리 로먼은 ‘세일즈맨’으로 살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지만, 그의 삶은 무거운 짐가방처럼 녹록지 않았다. 집을 사기 위해 25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할부를 갚고 나면 고장 나는 냉장고, 자동차는 골칫거리다. 밀려버린 보험료와 벌어오는 족족 생활비로 흘러나가는 돈도 만만찮다.

풀은 자라지도 않고 먼지는 탁하고, 집은 건물들 사이에 갇혔다며 윌리는 화를 낸다. 불황이라는 그림자가 엄습한 사회, 한평생을 일궈 만들어 낸 결과물에는 어느덧 단란하게 살았던 가족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공황의 시대에 보여진 흐릿한 단면들이지만, 어쩐지 오늘날에도 맞닿아 있는 모습인 것만 같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연극계의 3대 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 토니상, 뉴욕 연극 비평가상을 모두 석권한 현대 고전 명작 중 하나이다.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극을 이끌어가는 ‘윌리 로먼’, 그의 곁을 지키는 ‘린다 로먼’, 가족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큰아들 ‘비프 로먼’, 윌리의 둘째 아들 ‘해피 로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 개개인과 로먼 가족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를 거듭해가는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고뇌와 인생, 갈등이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로 드러난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장면 /(유)쇼앤텔플레이, (주)T2N 미디어 제공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장면 /(유)쇼앤텔플레이, (주)T2N 미디어 제공

초연 이후 70년을 훌쩍 넘긴 극은 남성 중심적이면서도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확연하다. 그러나 이다지도 오랜 시간의 형태가 선명한 캐릭터의 구조에서도 공감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구조를 뛰어넘는 본질적인 무언가가 심연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을 넘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대입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에 작품은 세월의 흔적을 무색하게 만든다.

한때 잘나가던 세일즈맨, 남부러울 것 없이 사이 좋은 부부, 건실한 두 아들에 대한 높은 기대감으로 점철된 한 남자의 삶은 늙고 지친 나머지 도피로 이어진다. 윌리가 중얼거리는 혼잣말은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의 회귀이다. 그리고 ‘외로웠어’라고 말하는 그의 마음속 공허함은 앞만 보고 살아온 윌리에게 남겨진 일종의 상흔같이 보였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번갈아 나타나는 장면들에서 그간 살아온 삶이 맞았다고 믿고 싶은 윌리의 신념이 쓸쓸하고 덧없어졌음을 느끼게 했다.

또 자신을 망쳐놓은 것은 아버지라며 허풍은 그만두고 현실을 직시하자고 하는 큰아들 ‘비프’에게 아버지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지,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 것인지, 어쩌면 각자가 바라는 상대방의 모습에 갇혀 서로에게 오해와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떠올리게 한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장면 /(유)쇼앤텔플레이, (주)T2N 미디어 제공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장면 /(유)쇼앤텔플레이, (주)T2N 미디어 제공

개인적으로 이 극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윌리 로먼과 린다 로먼 역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이다. 박근형, 손병호 배우의 윌리와 손숙, 예수정 배우의 린다는 각각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과 느낌이 다르고, 부부로서의 케미도 페어별로 색다르게 느껴진다. 극의 중심에 선 부부이자 한국 연극사를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무대 위에서 무척이나 넓고 또 깊게 느껴질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몰입도가 상당해진다. 객석의 숨소리마저 멎게 만든 윌리와 비프의 지독하게 무겁고도 아픈 장면이 그저 오랫동안 여운처럼 남아 있다. 윌리에게 그토록 무거웠던 짐가방은 어느새 텅 비워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터널 같은 삶에서 언젠가 빛처럼 맞이할 ‘자유’였을까. 터져 나오는 슬픔에도 삼킨 눈물이 그들의 세상에 또 다른 의미의 위로로 바뀌어 있길.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3월 3일까지 만날 수 있으며, 4월 12일과 13일에는 부평아트센터, 4월 26일과 27일에는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