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SK텔레콤 유심 정보유출 사고 관련 비상대응회의를 30일에 개최했다. 유출된 정보가 악용돼 명의도용에 의한 금융사기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하는 데 따른 것이다.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해킹을 당한 SKT 서버에서 유출된 가입자 정보만으로는 복제폰을 만들 수 없다”고 공식 발표했음에도 국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SKT 가입자들의 기민한 대응도 주목된다. SK텔레콤에 따르면 29일 오후 8시 기준 이 회사의 유심(USIM) 보호 서비스 가입자수가 960만명이며, SKT 망을 쓰는 알뜰폰 가입자 40만명도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했다. SKT 가입자 2천300만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유심칩 교체자 수도 28만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유심 교체 개시 3일이 지났음에도 전국의 SKT 직영점, 대리점 앞에는 다수의 대기자들로 붐빈다. 젊은 사람은 드물고 절대다수가 6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들도 지팡이에 의지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청년층이야 ‘SK텔레콤 유심 무료 교체 신청’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해 서비스를 예약하거나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하는 등 SKT가 안내한 우선 대책에 따르지만 PC는 물론 스마트폰 사용에도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 소외계층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더욱 딱한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SKT 직원의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요양병원 등에 입원한 부모를 둔 자녀들도 속이 탄다. 입원한 부모의 유심을 교체하려면 부모의 핸드폰과 신분증,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요구하는 데다 온라인에서는 추가로 본인 인증까지 받아야 해서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은 더 난감하다. 안산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국적의 A씨는 최근 국내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서 유심 해킹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유심 교체작업에 수개월이 소요될 수도 있어 디지털 취약계층은 전전긍긍이다. 금융사기 피해는 주로 디지털 소외계층에서 발생하는데 가래로도 못 막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의 SKT 본사 사옥에서 열린 ‘고객 정보 보호조치 강화 설명회’에서 유영상 대표가 70세 이상·장애인 고객에 우선적으로 유심칩을 교체해주겠다고 밝혔다. 식언(食言)이 아니길 기대한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