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 정치권 진지한 논의는 없어

‘고양이에 생선가게 못맡긴다’ 의지 드러나

대선前 개헌 물 건너갔지만 대화의 장 열려

시도지사협의회장 자격으로 정치력 발휘를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지방자치의 부활을 가져왔지만, 지방자치는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속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2017년 12월 한 기초의회가 채택한 ‘지방분권 개헌 촉구 결의문’ 도입부다.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광역·기초의회 다수가 지방분권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해 국회와 정부로 이송했다. 수도권을 비롯한 중남부 지역 그리고 제주도까지 전국 대부분의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지방분권 개헌을 희망했다.

‘강력한 지방분권공화국 조성’을 약속하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 지방분권 운동이 힘을 얻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공약했고, 2018년 3월 헌법 개정안까지 발의했지만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로 뜻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국민 의사를 묻는 투표조차 하지 않고 폐기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개헌 무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많은 정치인이 개헌을 말하고 약속했지만, 진심으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 분은 적었다”고 한탄했다. 그후 지방분권은 제도적으로 단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했다.

지방자치 시행 30년이 됐지만 지방분권 이슈가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정부 권한을 내려놓겠다며 전면에 나서 설득해도 꿈쩍하지 않았던 게 ‘여의도 정치’다. 지방자치 시행 후 ‘선심성 사업’이 늘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분권이 확립된 다른 선진국과 한국 사회를 단순 비교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시각에는 ‘중앙이 지역에 시혜를 베푼다’는 함의가 깔려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길 수 없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와 국회가 ‘정치적 판단’에 기울어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편성하고 집행한 과오는 들춰보려 하지 않는다. 입법권과 재정자주권이 보장되지 않는 지방정부가 정부와 국회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지방정부에 선심성 사업의 책임까지 떠넘기는 건 말이 안 된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방분권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며 대선 무대에 올라섰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역시 20대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했던 자치분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으니 21대 대선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지기를 바랐지만 현 시점에서 지방분권은 후순위로 한참 밀려있는 신세다.

유 시장은 대선 무대에서 조기에 내려왔지만, 개헌 전도사로서 그의 역할은 이제부터 본격화돼야 한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갈렸던 ‘조기 대선 전 개헌’은 물 건너갔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대선 주자들 사이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공간이 열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서 유 시장은 개헌론에 지방분권을 태우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자격으로 지난 3월 지방분권을 뼈대로 한 개헌안을 내놓았다. 문 정부 이후 7년 만의 성안(成案)으로 개헌 논의를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 시장은 조기 대선 전 개헌 필요성을 주장한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가 출범 이후 대선 기간 약속한 개헌 프로세스를 이행할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책임도 갖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유 시장의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임기는 올해 12월까지니 시간도 충분하다.

2017년 전국 지방의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에는 지방분권 개헌 공약(公約)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약(空約)으로 바꿔버린 정당과 그 후보들에 대한 불만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한 지방의회는 “개헌은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각 정당의 후보들이 모두 한결같이 단호하게 약속한 내용인 바 더 이상의 개헌 지연은 그 어떤 명분도 없다”고 지적했다. 문 정부의 지방분권 개헌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선거를 전후해 달라진 정치인들의 태도가 개헌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이다.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