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엊그제인 13일 또 기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재작년부터 매년 한 번씩 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 총리로서 매년 한 차례씩 신사참배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등 주변 국가들로서는 분노와 배신감이 증폭될 뿐이다. 특히 북한의 핵 위기에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공동 대처가 절실한 시기여서 더욱 그렇다. 일본의 진보 언론들도 역시 북한의 핵문제에 국제적인 협력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고이즈미의 이같은 정월을 기한 신사참배 행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둔 것이어서 외교적 마찰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아무리 일본의 A급 전범들을 비롯한 전몰자들과 보수적 일인(日人)들에 대해 총리로서의 의리를 지킨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총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일본 신문들도 비난하는 일을 했는지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는 오는 2월과 5월로 각각 예정된 고이즈미의 한국 및 중국방문 일정이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

신사참배가 있을 때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교묘한 말장난만 거듭했을 뿐, 국가적·정부적 차원에서 진실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때로는 일본 정치권에서조차 신사참배에 대한 찬반논란이 있었지만 그 간 몇 차례 있었던 일왕과 총리들의 사과 발언에 진정이 담겨 있었다면 고이즈미가 저처럼 집요하게, 또 약삭빠르게 전범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신사를 찾아 참배할 리가 없지 않은가.

김대중 대통령은 15일 예정됐던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외상의 면담을 취소했다.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대한 일종의 항의수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항의에 그쳐서는 안된다. 중국 등과 함께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해 일본 총리의 기습적인 신사참배가 절대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국민도 신사참배에 대한 경계심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수 천년 이어온 나라가 설마 망하겠느냐는 안일한 인식에 젖어 있다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불과 한 세기 전의 일이다. 우리 정부도 분명히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일본과 고이즈미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 정권교체기라고 형식적인 항의로써 할 바를 다하는 양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좀 더 당당하고 분명한 대응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