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서북쪽 교외에 위치한 칭화대학은 베이징대학과 더불어 중국대학 문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저명한 교수들과 두터운 인재 및 자원을 바탕으로 노벨상 수상자 등 많은 과학기술상 수상자들을 배출하였고 현재 중국에서 발전이 가장 빠른 대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1978년 이래 개혁·개방 과정에서 최고의 종합대학으로 발전, 지금은 베이징대학과 매년 중국 대학 랭킹 1위를 다투고 있다. 더 타임즈에서 발표한 랭킹 순위만 보면 베이징대보다 한참 밑이지만 중국자체에서 발표하는 대학종합 랭킹에서는 늘 칭화대가 앞서고 있다.
칭화대학의 전신은 1911년 건립된 칭화학당(淸華學堂)으로 1928년 국립칭화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시작된 대대적인 교육개혁으로 인하여 1952년 문학부와 이학부를 분리시켜 베이징대학으로, 농학부는 베이징농업대학에 흡수되면서 문리과 종합대학이었던 칭화대학은 공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으로 특성화되었다.
1970년대말∼80년대초에 걸쳐 칭화대학은 점차 이공계열, 문과계열 및 관리학과 등을 복원하기 시작하였고, 1984년에는 사회과학 학과들을 개설, 그 다음해 중문학과, 사상문화연구소 및 교육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역사상의 인문전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현재 칭화대학은 그 산하에 이과대학, 인문사회과학대학, 경제관리학대학, 법과대학, 건축학대학, 정보과학기술대학, 기계공학대학의 7개 단과대학을 설치하고 있고, 46개의 연구소와 23개 연구센터(그 중의 4개가 국가중점과학연구센터), 167개의 각종 실험실(그 중 15개가 국가중점실험실)을 보유하고 있어 전국 국가중점실험실의 10분의1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두터운 자원들이 칭화대학의 인재양성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과학기술연구와 문화를 주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 겨룰 유일한 대국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국을 이끌어가는 집단으로는 단연 칭화대 출신들이 꼽힌다. 특히 지난해 대학입시에서 각 성과 직할시의 상위 10%내 수험생들 중 70%가 칭화대에 진학했으며 문과와 이과에서 나란히 최고 커트라인을 기록하기도 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개혁개방 정책의 사령탑 격인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이 대학 출신이다. 칭화대가 중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두드러지자 지난 2월 중국을 방문한 부시 미 대통령은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기도 했다. 현재 40여개 국가에서 온 500여명의 유학생이 있으며 이중 한국유학생은 약 200여명 정도이다.
칭화대학은 중국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배어있는 베이징 서북쪽 교외의 칭화위앤에 자리하고 있으며 베이징지역 대학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규모만 놓고 본다면 베이징대보다 2배 이상 넓다. 이곳 역시 베이징대와 마찬가지로 원래 청대 황실의 화원(花園)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옛 건축물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와 전통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칭화(淸華)대는 중국 최고 명문대학입니다.”
베이징대학과의 비교는 더이상 무의미하다는 칭화대 영문과 재학생 왕후이(28)씨는 “해외언론에 보도되는 대학 랭킹은 현실과 다소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관리과학연구원이 발표한 올해 대학 순위평가에서는 칭화대가 1위를 차지했다.
무려 7~8년째 베이징대를 누르고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공(理工)계 전문대학인 칭화대가 인문·사회과학 중심의 베이징대를 앞선다는 평가는 이미 중국이 기술 중심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계에 진출한 관리들의 출신을 봐도 문과대학보다는 실용기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와 지원 덕분인지 칭화대에서는 자체기술로 인공위성을 두번이나 쏘아 올렸다고 한다.
칭화대의 이런 기술력을 인정한 연세대, 포항공대, KAIST 등은 자매결연을 요청해 많은 한국 학생들을 이곳으로 파견하고 있다.
왕씨는 “한국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양국이 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속한 문과대학생들 또한 “중국 최강을 향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