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진짜 더미(드라마 배역 이름)가 돼 살았다.”
이요원은 아직도 드라마 속 배역인 '더미'였다. 지난 23일 5개월 넘게 진행된 SBS 드라마 '패션 70s'(극본 정성희, 연출 이재규)의 촬영을 모두 마쳤지만 쉽게 '더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촬영하는 동안 스스로 진짜 더미가 됐다고 느꼈다. 이처럼 캐릭터에 동화된 적이 없었다”며 “이 배역에 정말 애착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모'의 이재규 PD가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된 '패션 70s'는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인기 속에 29일 마지막 방송을 남겨두고 있다. 70년 패션계를 배경으로 이요원, 주진모, 김민정, 천정명 등 네 젊은이의 일과 사랑을 다뤘다.

이요원은 “오랜 만에 일을 하게 돼 욕심이 더 생겼다. 소중한 기회가 다시 생겨서 감사했다”면서 “단순한 연기를 넘어서 내가 완전히 더미에 동화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런 몰입과 애착 때문일까. 결혼 등으로 생긴 2년간의 공백에도 연기력은 오히려 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족을 꾸린 후 연기에 여유와 노련함이 묻어난다는 등의 반응이다. 감정을 절제하며 소화한 눈물 연기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더미라는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지나칠 정도로 참기만 하는 성격이라 비현실적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주어진 대본 내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온 힘을 다했어요. 그래서인지 막상 촬영이 끝나고 나니 허탈하고 우울하기까지 해요.”

연기에 대한 평가와 시청률은 좋은 편이었지만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컸다. 오스트리아 입양아로 설정돼 그 곳에서 선진 패션을 접한다는 설정이었는데 전라도 시골 섬 맹골도로 배경이 바뀌었다. 드라마 소재인 70년대 패션도 의도만큼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시청자가 제기한 그런 불만을 저도 찍으면서 그대로 느꼈어요. 원래 더미는 억척스러운 성격인데 섬에서 서울로 올라온 후 성격이 바뀌었어요. 극 초반에는 캐릭터에 적응하기 어려워 혼란을 느꼈죠.”
이어 그는 “패션보다는 사랑 쪽으로 이야기가 많이 기운 것도 아쉬웠다. 해외 입양아에서 갑자기 시골처녀가 되다 보니까 원했던 패션 의상을 제대로 드러내기도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재규 PD와의 작업과 첨단 HD 카메라 촬영은 좋은 경험이 됐다. 그는 “이 감독님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예쁜 화면과 새로운 앵글을 시도했다. '다음에는 일반 카메라로는 못 찍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맹골도에서 주진모가 떠난 아쉬움을 담은 마음으로 종을 치는 장면이라고 했다.
“맹골도에서는 원래 기획된 더미의 캐릭터가 잘 살아났어요. 특히 해질녘 종치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많이 담겼죠. 29일 방송될 장면도 잊히지 않아요. 자살했다고 알려진 양어머니 양자를 찾아 목욕시켜주는 신이 가슴에 남아요.”

이요원은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의 올 겨울 개봉을 기다리며 당분간 별다른 연기 활동 없이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