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은 아마도 전국민이 TV 앞에 앉아 딱딱한 법 용어를 한자라도 놓칠세라 숨죽이며 들었을 겁니다. 어쩌면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쓰여진,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글이 판결문일텐데, 이날 머리가 희끗한 노판사가 표정 변화 없이 20분 넘게 읽어내려 간 판결문에서 저는 큰 위로와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릴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도 말입니다. 형용사 하나 쓰지 않은 저 딱딱한 글에서 우리가 큰 위로와 안정을 얻은 건, 수십년간 우리가 피땀흘려 이룩한 우리 사회 민주주의 시스템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 혹은 개인이 가진 믿음과 신념의 차이를 떠나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근간에 민주주의 시민이 있고 민주적인 절차와 시스템이 있으며 이를 아우르는 헌법이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그 누구라 할지라도 그 위에 설 수 없다는, 대단히 상식적인 통념을 다시금 깨닫게 됐습니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며 그날의 용기에 위로를 더했고,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 가장 신중히 행사되어야 할 권한인 국가긴급권을 헌법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 행사’했다면서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로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는 매서운 회초리를 꺼내 든 이날의 역사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봄입니다. 일목요연 독자에게도 따스한 봄이길 기원합니다. 이번주 일목요연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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