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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신발을 갈아 신는다. 밑창이 떨어져 길을 걷다가도 수시로 본드 칠을 해줘야 하는 낡은 운동화를 벗고 검정 탭슈즈에 발을 집어넣는다. 소녀는 방금 탭슈즈를 훔쳤다.

우연히 지하 댄스 연습장을 들여다본 이후로 탭슈즈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의 하루치 임금을 몽땅 신발장에 놓아두었지만 주인이 없었다. 제값을 치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훔쳤달 수밖에.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여 본다. 경쾌한 소리가 난다. 공연히 난간을 건드려 본다. 경쾌한 소리가 난다. 용기를 내어 자신만의 스텝을 밟아본다. 빈 밤거리를 뛰고 달린다. 그 위로 낮게 기타 연주가 깔린다. 그러나 관객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둠속에 울리는 탭슈즈의 울림에 화답하기 위한 것일 뿐.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는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감독의 전작 '들꽃'(2014)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듯도 하다. 말하자면 연속과 불연속의 경계 어디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훨씬 간결해졌다. 특별히 이야기라 할 만한 것도 없고 대사도 많지 않다.

카메라는 마치 1인칭 게임처럼 소녀 하담(정하담)을 등뒤에서 쫓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다. 하담의 걸음걸이와 몸짓은 긴장되고 텅 빈 눈빛은 서늘하다. 배우의 몸짓과 눈빛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은 그리 간결하지 않다. 무슨 이유에선지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폐가에서 간신히 노숙을 면하는 소녀 하담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하는 말이라곤 서너 마디에 불과하다. "일하고 싶어요." "할 수 있어요." "돈 주세요." 그 외에 몇몇 비명 같은 소리들.

그 다급함과 절박함은 현실을 담고 있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다. 그녀의 말은 탭슈즈의 경쾌한 울림에 있다. 어설프지만 격정적이고 절망적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춤. 그렇기에 몰아치는 파도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발을 구르는 엔딩에서 클로즈업된 소녀의 표정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눈빛은 돌멩이만큼이나 옹골차고 미소는 싱싱하다. 꽃의 아름다움이 강철의 단단함과 만나는 순간이며, 꽃이 강철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