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부호형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각성제와 불면증이 그의 친구이고 가족이다. 정의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죽도록 쫓고 싸울 뿐.
조성희 감독의 '탐정 홍길동: 사라진 사람들'에 우리가 알던 홍길동은 없다. 왜곡되고 비틀린 이미지들이 그려내는 것은 위악적인 반영웅의 모습이다. 악당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만큼 교활하고 약삭빨라야 한다고 믿는 '신암행어사'(2004)의 박문수를 닮았다.
허균이 창조한 민중의 영웅 홍길동이 한국의 1980년대에서 누아르와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적 형식을 만날 때 더 없이 색다른 영웅이 탄생한다. 그가 이끄는 활빈당 역시 불법적이고 비밀스러운, 게다가 폭력적이기까지 한 탐정 조직이다.
전작 '늑대소년'(2012)에서 늑대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국적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감각적으로 그려낸 조감독은, 이번에는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를 연상시키는 음영 가득한 영상으로 그만의 장끼를 유감없이 펼친다.
새로운 영웅 캐릭터의 창조와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한 시각적 쾌감은 관객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캐릭터와 영상미만큼 이야기에도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김병덕에 대한 개인적 복수를 위해 찾아간 마을에서 생각지 못한 음모를 꾸미는 광은회라는 조직과 상대하면서 잃어버린 기억들과 마주치는 홍길동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개인적 복수의 이유와 포기의 과정 모두 다소 허망하다.
상투적이거나 작위적 장면이 섬세한 고려 없이 연출된 점도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추리물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홍길동은 관객을 끌어들여 추리에 동참시키기보다는 단지 추리 원맨쇼를 보여줄 따름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캐릭터만큼은 매력적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