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아버지가 불쑥 이혼을 선언한다. 어머니는 펄쩍 뛰고 자식과 며느리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서 불편하고 난감한 식사가 끝나 각자 흩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폭설 때문에 버스운행이 중단됐다. 뜻하지 않게 비좁은 관사에서 이박삼일을 지내는 가족은 이전에 모여 산 적이 없는 사람들 같다. 마치 모래알처럼 버석거린다.
김대환 감독의 '철원기행'은 '식구(食口)'에 대한 영화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의 식구는 다정하고 살가운 어감이다. 그렇기에 여러 가족영화에서 식사 장면은 가족 구성원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철원기행'에서 식사는 보는 것만으로도 체할 것 같다. 지나치게 과묵하고 고집 센 아버지, 무뚝뚝한 큰아들, 철없는 둘째 아들, 싹싹하지만 속으로는 서운한 며느리, 불같은 어머니.
그들의 발을 묶어놓은 것은 폭설이 아니라 세월을 두고 눈처럼 차곡차곡 누적된 앙금인 듯하다. 길가에 쌓인 엄청난 양의 눈더미 만큼이나 두텁고 무거운 앙금 하나씩 품고 산다.
그렇기에 철원이라는 공간은 가족들 각자의 마음 속 풍경이다. 고립감과 황량함, 가끔 울리는 포성까지. 눈은 계절에 따라 녹고 또 쌓이겠지만 이들의 앙금이 녹을지는 알 수 없다. 앙금의 눈밭 위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복작거린다. 그게 가족이라는 듯이.
자극적인 설정이나 특별한 사건 없이 진행되기에 자칫 밋밋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인물들이 일대일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파열과 긴장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잘 조율된 연출과 제몫을 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욕심내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히 가족들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 영화를 가벼운 가족 멜로에서 비껴나게 만든다.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DGC) 졸업작품이지만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연출력을 보여준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으며, 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