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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빈 소주병을 귀에 갖다 댄다. 그녀는 보험을 파는 데 지쳤다. 엄마의 돈타령은 신물이 난다. 언니는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피곤하다. 보험을 팔 수 있다는 생각만 아니었으면 소주병을 한 바구니 끌고 가 아이스크림과 바꿔달라는 여자의 부탁 같은 것은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심란한 마음만큼 몸이 무겁다. 벤치에 앉아 무심히 소주병에 귀를 대면 고동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듯, 여자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여자가 소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소주가 여자의 시름과 절망을 마신 듯하다.

최익환, 신연식, 이광국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시선 사이>는 2003년부터 만들어온 인권영화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이다.

떡볶이에 목숨 거는 여고생이 등교 후 교문을 폐쇄해 떡볶이를 먹을 수 없게 되자 학교와 맞서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최익환),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정체불명의 빅 브라더에게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는 (혹은 예민하게도 그런 현실을 깨달은)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블랙코미디로 터치한 '과대망상자(들)'(신연식), 보험판매원인 주인공이 우연히 유령 같은 여성을 만나며 가족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통해 고독사를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며 풀어낸 '소주와 아이스크림'(이광묵)은 추상적이고 실체를 확인하기 힘든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시선이란 바라보는 방향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일 수도 있고 욕망하는 대상일 수도 있다. 다양한 삶의 방식과 욕망의 갈래들이 있기에 시선들은 항상 부딪치고 갈등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나 누군가의 사소한 욕망, 혹은 행복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시선사이'는 다양한 욕망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우리 삶 속에서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간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무수한 시선들의 사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였기에 무심히 지나갔던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어쩌면 인권이란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 우리에게는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것을 일컫는 말인지 모른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가 아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인권위와 영화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