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신지도 제각각이다. 때로는 일본에서, 때로는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에서, 때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유럽에서. 그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발신지이고, 편지의 내용이 된다. 왜냐 하면 그곳이 어디든 경계를 넘은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계 밖으로 쫓겨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계 안으로 침입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경계 위를 떠도는 사람 또한 있게 마련이다.
'경계'는 큰 소리로 경계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냉엄한 시선으로 현실을 포착하지 않는다. 다만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정치·사회적 이유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을 서정적 영상과 내밀한 언어들로 응시한다.
세 감독이 보낸 편지들은 서로 질감이 다르고 에피소드는 나열되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가 드러나고 기억이 되살아난다.
국경을 넘기 전의 시간에 대한 향수와 경계를 넘게 된 사연, 인도네시아의 갈롱 캠프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디스트릭트6처럼 국경을 넘은 자들이 모여 살던,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기억들. 경계는 공간을 분절하는 마디이자 시간의 마디이기도 하다.
세 감독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는 세르비아 출신이지만 지금은 싱가포르에 거주한다. 그가 베트남 여행 중 촬영한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어디서 왔냐는 어설픈 영어에 '세르비아'라고 답하지만 조각배이 노를 젓는 여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곳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배의 흐름에 따라 아름다운 풍경이 스치듯 지나고 몇 번인가 더 질문이 오간 끝에 블라디미르는 체념한 듯 '싱가포르'라고 답한다. 그제야 알아듣는다. 그녀는 싱가포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해하지는 못한다. "서양 사람이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그녀가 되묻는다. 베트남 말이다.
대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다. 간단한 질문 하나가 그들 사이에 경계를 만든다. 간단한 질문에도 길게 설명해야 하는, 혹은 답할 수 없는 불명료한 삶. 국경을 넘은 사람의 고단함과 피로감이 묻어난다. 아름다운 영상과 신선한 스탈일, 묵직한 주제의식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