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속 믿고 결혼 패물도 꺼내
그 때 버금간다는 한국경제 상황
나의 양보·선택으로 득 보는 누구
손해 아깝지 않은 가치 있는 것인가

얼마 전, 희망제작소에서 '2018 시민희망지수'를 발표했다. 소득과 부의 격차가 해소될 가능성에 답변의 70%가 부정적이라 했다. 불공정한 사회가 개선될 전망도 부정적이 50%, 긍정적은 10%가 되지 않는다. 세상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세상이 바뀐들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으로 단정하는 기류가 강한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신뢰가 낮을수록, 나 먼저 챙겨야 하고 믿을 건 피붙이뿐이라는 처세가 득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얻으려면 먼저 자기 것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시대적 지혜라고 배웠다. 그래서 20년 전에 우리는 자식 돌 반지와 결혼 패물을 기꺼이 꺼냈다. 곧 다시 만나자며, 보냈고 믿으며 떠났다. 그런 사회적 약속, 지켜졌는지!
한국 경제와 사회가 20년 전 IMF 위기에 버금간다는 주장이 나온다. 평가는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항시적 위기론은 경영진의 영악한 엄살일 뿐, 닥치고 부정하는 건 정략과 진영의 케케묵은 논리, 조금만 기다려라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드러날 것이라는 대기론, 달라진 게 뭐냐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고 힘들다 등등. 하지만 한결같이, 나의 금붙이는 내놓지 않을 거고, 너희들이 양보하라는 것. 이번에 뒤지고 내쳐지면 향후 20년 이상 30% 뒤처진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경계와 결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진정 청산해야 할 적폐?
"자승자박, 어리석은 판단과 행위가 자신을 옭매이게 하는군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토굴로 들어갔다.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고 길이 얼어 찻길이 막힐 것이니 새봄을 기약할밖에. 지난가을 그렇게 그와 헤어졌다. 유난히 추웠던 요 며칠 안부 전화를 걸었다. "산생활 20년인데 익숙해졌지요. 여긴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생활이 되지요. 거기처럼 불확실하거나 배신에 마음 아프지 않아도 되고." 각자도생. 지금 맥락에서 해석하자면, 누군가와 힘을 모으되 낭만적이고 형식적이며 무차별적인 같이하기와 근거 없는 기대는 헛되다는 의미이다. 경제위기론, 소득주도성장론이 나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와 영향이 있는가. 행여, 부화뇌동은 아닌가, 집단적 가학적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방청석에 앉아 피디의 손짓에 손뼉 치고 환호하는 도구적, 하지만 자발적 즐거움에 빠진 방청객이 내가 아닐까?
그를 찾아가련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동쪽 시골로 가서, 하루에 두 번 있는 시내버스 종점에 내려서 오르막 눈길 시오리를 가면 골이 깊어지면서 두물머리가 나온다. 곧추선 산 등에 가려 손바닥만치 내비치는 햇살, 쨍쨍한 얼음장 밑 물고랑, 언 눈이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에 뒤섞여 한동안 오르다 보면 빼꼼한 굴뚝에 창 하나 기대어 있다. 그날 밤 부르튼 발바닥, 물집 걷힌 생살에 굵은 소금 뿌리는 심경으로 그에게 물을 일이다.
나의 양보와 선택으로 득을 보는 그 누구는, 내가 손해를 아까워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있는 누구인가. 그리하여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 오늘 힘듦 그러나 희망.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