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여름 용인에는 국지성 호우가 잦았다. 8월 8일부터 17일 사이 용인 지역 평균 강우량은 352㎜에 달했고 수지구 일대엔 최대 534㎜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동막천 준설과 고기교 일대 도로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앞서 10년 넘게 계속 나왔지만 용인과 성남의 입장 차이로 정비사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지난해 고기교·동천동 일대 '물폭탄 피해'
세종, 재해 대처·사전 대비 지혜로운 리더
지난해 7월 취임 다음날 신상진 성남시장과 안철수 국회의원을 만났다. 고기교 인근의 근본 대책을 세우자고 제안했고 함께 뜻을 모았다. 10여년만의 극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한 달 뒤 우려했던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1년만 더 빨리 결정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이를 원망하기보단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이 시급했다. 신 시장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어 고기교 문제를 마무리 짓기 위한 협약을 속히 맺자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도 연락해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고기교를 포함한 동천동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장관은 이를 받아들였고 수해복구비 정부 보조와 수해민 납세 유예 등을 지원했다. 지난해 9월엔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 동막천 범람의 주원인인 낙생저수지의 퇴적물 제거와 준설을 요청했다. 결국 지난 1월 용인시는 한국농어촌공사와 수해예방 협약을 맺고 동막천과 낙생저수지 등 하천을 비롯해 공사가 관리하는 저수지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네트워크를 강화하기로 했다.
1426년(세종 8년) 2월, 한양에서 큰불이 나 민가 2천170채가 불에 탔다. 조선 500년 동안 평시에 발생한 재난 중 가장 치명적인 재난이었다. 불길이 잡힌 이후에도 소소한 잔불이 이어졌고 이를 틈타 도적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에 세종은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내놓은 건 부상자 치료와 이재민 식량 배급 대책이었다. 그리고 조직을 개편해 화재 대책을 담당하는 금화도감을 설치했고 이후 화재에 취약한 한성의 도시 구조를 대대적으로 보완했다. 가옥끼리 옮겨붙는 구조를 바꾸고 지나치게 좁은 도로들을 정비했다. 불을 막는 담장인 방화장(防火牆)을 쌓도록 했고 건물 사이엔 우물을 파서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도록 했다. 종묘와 대궐, 종루에 대포 모양의 바퀴 달린 소화기까지 비치했다. 세종은 화재 원인 규명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방화범 색출을 위해 '불 지르는 사람을 잡아서 고발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양민은 계급을 초월하여 관직으로 상을 주며 천민은 양민으로 옮겨주며 모두 면포 200필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공고문도 붙였다.
세종은 '과이즉개(過而卽改, 허물을 즉각 고침)'의 군주였다. 그보다 더 훌륭한 건 재해의 위험을 미리 막아 손실과 고통을 줄이는 지혜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5월15일은 스승의 날이자 세종대왕의 탄신일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스승'이기도 하지만, 재해에 맞서 철저하게 대처하고 사전 대비 노력을 기울인 지혜로운 리더였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장마철 앞두고 국지성 호우 벌써부터 걱정
위험 징후 찾아 예방 조치 '시민보호' 중요
재해(災害)의 시계는 석 달 먼저 돌아간다고 한다. 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말을 스스로 가슴에 새겼다. 6월을 앞두고 여름철 국지성 집중호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달 첫 간부공무원 회의에서 이 문제부터 화두에 올렸다. 재난은 인재(人災)에서 비롯되며, 사람의 안전 소홀이 곧 화를 키우는 것이다. 미리 돌아가는 '재해 시계'를 늘 들여다보며 위험 징후를 찾고 재난에 시민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은 없다. '안전한 용인'을 위해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하겠다.
/이상일 용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