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멸시·조롱 습관… 적 만들고
심대한 자아도취에 판단력 잃기도
지지층 '안티페미니즘' 과소 평가
여성혐오 흥한자 여성혐오로 망해
팽배한 남성우월주의 '기회'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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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 작가
과도한 나르시시즘, 자아비대, 싸가지 없음. 정치인이자 인간으로서 이준석의 결함으로 지적돼온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지지층은 인정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패기와 당돌함으로 포장해주곤 했다. 청년 남성의 표심을 견인한다는 이준석의 포지션은 특히 국민의힘 대선의 마지막 퍼즐이었기에 그의 단점은 승리의 영광에 희석되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제3지대의 합당 이후 개혁신당의 기존 지지자들은 이준석을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고 언론은 그의 난처한 상황을 시시각각 중계한다. 이준석 대표가 맞이한 작금의 정치적 위기는 '미소지니로 흥한 자 미소지니로 망한다'로 정리할 수 있다.

성차별 또는 여성혐오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다. 이를 국가별로 비교하는 유엔개발계획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남성우월주의는 OECD 가운데 가장 심각할 뿐 아니라 경제후진국과도 별 차이가 없다. 상기 보고서는 성편견과 관련된 설문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인식을 살펴본다. 각 문항을 보면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가 민주주의에 필수인지', '정치 지도자로서 남성이 여성보다 나은지', '대학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중요한지, '일자리가 부족할 때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 '남성 임원이 여성 임원보다 일을 더 잘하는지', '가정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낙태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스웨덴, 뉴질랜드, 영국, 네덜란드의 경우 하나 이상의 성차별적 편견을 가진 남성의 비율이 29~34%로 나타난다. 반면 한국 남성의 경우 무려 93%에 달하고 있어 이들 나라보다 3배나 높은 남성우월주의를 과시한다. 둘 이상의 편견을 가진 남성의 비율에서도 4개국은 13~15%에 그치지만 한국은 80%에 이른다.

세계 어느 나라든 이 같은 편견은 여성이 남성보다 소폭 낮다. 즉, 남성의 성차별 편견이 심한 사회는 여성도 그러하고 여성의 편견이 적은 나라는 남성도 적다. 이는 여성 스스로가 갖는 여성차별인식이 사회 전반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과 한국과 같이 남성중심적 세계관이 지독한 나라에서 이에 맞선다는 것은 매우 험난한 일임을 시사한다.

여성의 역량이나 여성이 주로 하는 일을 남성의 그것보다 하찮게 보거나 여성의 입장을 깎아내리는 성차별 편견 또는 여성혐오는 한국에서 통계상으로 볼 때 공기처럼 퍼져 있다. 그리고 이는 추가적인 사회질환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성평등 인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거대한 성별임금격차가 나타난다면, 동등한 존재 사이의 집단적인 임금격차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대전제' 속에서 큰 충돌 없이 이를 축소하기 위한 각종 해법을 강구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은 여성을 열등하게 보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수십 년째 OECD 1등을 달리는 성별임금격차에 대해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라고 외치는 성차별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여성 할당제가 한국에서 유독 불공정과 역차별의 상징으로 공격받는 데는 우월한 남성과 열등한 여성이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성차별 심리가 깔려 있다. 할당제 폐지에 가장 앞장서온 정치인 이준석이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배경 또한 바로 이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습관적으로 상대를 멸시하고 조롱하며 적을 많이 만들었고 이로 인해 찜찜한 과정을 거쳐 집권당의 당대표에서 축출되었다. 또 이 대표의 심대한 자아도취는 종종 판단력에 문제를 일으켜왔다. 그가 정당을 차렸을 때 모집될 당원의 규모와 지지율을 과대평가한 것도 그 일환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평소 적대해온 페미니즘 친화적 정치집단과도 한 배를 타야 했으니, 이 지점에서는 지지층의 안티페미니즘 및 미소지니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했다. 신생 정당에 참여할 반페미니스트의 숫자는 충분치 않을지언정 그들은 매우 열성적이기에 이준석의 배신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여성혐오로 흥한 자가 여성혐오로 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배한 남성우월주의가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기에, 우리 사회엔 매우 나쁜 일이지만, 이준석에겐 다시금 여기에 올라탈 기회가 열려 있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