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행히 아침 안개가 끼지 않아 이동이나 조사에는 지장이 없을 듯하다. 겨울 아침 유유히 흘러가는 우리나라 최북단의 임진강,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과의 만남은 기대만으로도 몸의 생기를 되살린다.
어느덧 다가온 민통선의 아침 햇살이 서서히 느껴지면서 주변이 환해지자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형체만 확인할 수 있던 겨울손님 두루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동틀 무렵에 두루미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은 이곳만의 특화된 업무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는 10월부터 7종의 두루미가 시베리아, 몽골, 중국 일대로부터 극한 추위를 피해 남하한다고 알려져 있다. 경기 북부지역인 연천·철원·파주 일대를 찾아오는 두루미 종은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대다수다.
연천 지역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2천800여 마리 중에 65%가량이 임진강, 군남댐 상류의 홍수조절지에 도래한다. 우리나라에는 보호종인 철새와 도래지가 동시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6곳 뿐이며, 모두 1980년 이전에 지정되었다.
군남 홍수조절지 일대는 '연천 임진강 두루미 도래지'로서 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아 2022년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군남 홍수조절지는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과 맞닿아 있다. 비가 많은 여름에는 북한 댐의 갑작스러운 방류에 대비하거나 홍수를 막는 완충지로서, 추운 겨울에는 겨울철새가 발을 담그고 잘 수 있는 여울을 제공하는 월동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또한 해빙기 등 갈수기에는 하류 지역에 하천유지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해돋이와 함께 옅은 물안개가 걷히면서 간밤에 여울에서 잠을 자던 두루미 무리의 자태가 드러난다. 이번 겨울은 여느 해보다 따스한 아침이 연일 이어졌다. 먼저 잠을 깬 쇠기러기 무리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난 두루미들이 여울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적게는 수십마리에서 많게는 1천여 마리 이상이 서로의 온기를 의지하듯 몸을 붙인 채 무리지어 잠을 자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이른 아침 두루미를 만나러 오가는 여정은 의외로 외롭지 않다. 조류보호단체의 임원분과 담소를 나누며 동행하기도 하고, 환경부의 겨울철새 조사팀과 함께하기도 한다. '두루미는 올겨울 얼마나 왔는지', '어디를 주로 잠자리로 이용하는지', '먹이활동은 어디에서 주로 하는지' 등 겨울손님의 근황을 나누며 대화의 꽃을 피운다.
더불어 아침 찬 공기를 마시며 오가는 길목에서 마주치는 짧은 만남들도 있다. 두루미의 겨울나기를 감상하려는 탐조객들, 마을에 찾아온 두루미의 안부가 궁금하여 아침 마실을 나선 어르신들, 두루미의 서식 현황과 생태를 탐구하는 연구자 등과 마주칠 때면 짧은 눈인사를 교환하기도 한다.
2월 말에 즈음하여 두루미가 북상하는 시기가 성큼 다가오면 먼길 떠나가는 두루미에게 먹을 것이 부족할까 노파심과 걱정이 앞서 먹거리를 챙기느라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올 겨울 홍수조절지는 여느 해보다도 온화한 날씨가 계속 되다보니 얼어붙은 임진강이 서둘러 해빙되었다. 천적이나 사람의 접근에 예민한, 적지않은 무리의 두루미가 남방한계선 너머 비무장지대로 잠자리를 옮겼다. 날씨의 변화에도 잠자리를 옮겨가는 두루미를, 장래의 기후변화로 인해 몇 십년 후에는, 이곳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아쉬움을 더한다.
작년 초봄 하늘 높이 날아오른 두루미를 멀리 떠나 보내면서 작별의 손짓을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는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도시생활에 익숙하여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평온함과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세상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 만난 두루미는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이 자연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깨닫게 해주었다.
/박철규 K-water 연천포천권지사 생태환경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