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없는 병동 간호사들 발동동
배워온 봉사·희생정신 대처 당혹
정부·의사 갈등 국민 근심 깊어져
'환자' 두고 그 누구도 싸워선 안돼

새삼 간호대 학생이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에 하는 '나이팅게일 선서'가 떠올랐다. 나이팅게일 선서의 원문을 보면 'calling'이란 말이 나온다. '부름을 받들어' 정도의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말 '사명'과도 뜻이 통한다.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통해 고귀한 부름에 응해 선택받은 자로서 그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고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생명을 지키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이처럼 숭고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초기 나이팅게일 선서는 의사들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참고했다. 나중에 개정을 거치며 의사의 조력자로서 역할도 명시되게 됐다. 조력자의 권한과 역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손발을 맞춰야 할 필연적 파트너 관계임은 틀림없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할 때 두 손으로 촛불을 떠받치는데 촛불은 어둠을 비추는 봉사와 희생정신 등을 상징한다.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절로 숙연해지며 겸허해지는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불행히도 지금 의료현장은 비어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던 이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정도 모르는 바 아니다.
문제는 돌봐야 할 환자들은 그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고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조력자인 간호사들은 의료현장에 남아 나이팅게일 선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불명확한 조력자의 역할일 뿐이다.
지난 코로나19 시기 많은 간호사가 환자 곁에서 쓰러졌다. 감당할 수 없는 업무 폭증에 의료현장은 사투의 현장이었다. 그래도 손발을 맞춰 끝내 버텨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스스로 사직서를 던지고 떠났기에 붙잡을 방도가 없고 대체할 인력이 없다. 의사 없는 병동에서 간호사들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봉사와 희생정신을 배운 간호사들은 지금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배운 바 없다. 그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가 자율성을 두고 끊임없이 비판받는 이유를 알게 될지 모른다.
이번 사태는 여러 면에서 의료계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사, 의사와 간호사 등 앞으로 새로 정립돼야 할 관계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차치하고 정부와 의사의 갈등이 길어질수록 국민의 근심은 깊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각자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타협은 요원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인인 한 간호학과 교수는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을 때 머릿속에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그때만큼 절실히 환자가 숭고한 희생의 대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는 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내가 돌보는 환자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모를 리 없다.
환자를 앞에 두고 그 누구도 싸워선 안된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그들은 무조건 돌봐야 하는 대상이다. 이해는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누구도 위협이 돼서는 안 되며,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두고 떠나선 안 된다. 아무리 해결이 난망한 위기라고 하지만 이 짧은 대전제를 곱씹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국민의 걱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양측이 이른 시일 타협할 수 있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이지복 서정대학교 글로벌융합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