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의원·김내훈 작가 인터뷰
“어려움 이해하지만 노력도 부족”
‘밀키트 토론’ ‘중도 아닌 부동층’
건강한 대화의 장에서 결실 얻어야
전략적 침묵을 선택한 이유는 꽤 납득할 만했다. 온라인이 더 편한 20대에게도 작금의 온라인 공론장은 불편하다. 불편한 배경엔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나뉜 소수의 부류가 공론장을 지배하면서 이들의 짠 프레임에 의해서만 이야기가 오고간다는 것이다.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거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모든 이야기가 오가니 ‘대화를 하는 게 피곤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여기에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성역’이 생겨버린 현상도 심각하다고 했다. 젠더, 진영, 계층 등 사회구성원을 분류하는 모든 지점에서 ‘절대 지켜야 하는’ 선이 그어지고, 다원화된 사회에 이분법식 접근만 강화되면서 차라리 입 다물고 사는 게 속 편한 세상이 된 셈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더 큰 문제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온라인 현상이 오프라인의 공포로 전염되며 일종의 ‘대화포비아’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만, 상대의 생각을 잘 아는 이들끼리만 정치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리고 이런 현상과 ‘20대 무당(無黨)’층이 늘어나는데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도 말했다.
취재팀은 당사자 격인 20대의 ‘자가진단’을 듣고 이 현상을 둘러싼 ‘공론장’을 더 확대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토론주의자’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에게 20대 무당층을 물었다. 또 ‘프로보커터’ ‘급진의 20대’ 등 20대와 정치를 연구하는 김내훈 작가를 만나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래는 이들의 인터뷰를 주요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나무위키에 기대 설명 넘기고 급발진… 20대도 문제 있다
대학생들 토론하는 모습 보면
나무위키의 장점란과 단점란이 싸우는 듯.
1차 소스 모르는 ‘밀키트 토론’ 난무.

이준석 의원: 제가 대학생들끼리 토론하는 모습을 가끔 보면, 나무위키의 장점란과 단점란이 서로 싸우고 있는 걸 많이 봐요. 정보를 취득하기 쉬워진 만큼 나무위키 이상의 생각을 잘 안 하는 거예요.
내가 직접 기초가 되는 사실을 정리하고 여기에 따라 내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 그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어디선가 주워들은 논리를 외워서 ‘약속대련’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생산적인 토론이 안 나오죠. 저는 이걸 ‘밀키트 토론’이라고 말하는데요. 옛날에는 1차 소스를 미리 공부하고 익혀야만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나무위키에 모든 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이 밀키트처럼 다 마련돼 있는 거예요.
좋은 토론이라는 건 A랑 B라는 대안이 있을 때 여기에 C를 갖다 대거나 아니면 A와 B에 대해 사회통념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생산성 있는 토론이 가능한 겁니다.
밀키트 형태로 나오는 논리들이라도 많이 유포돼서,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근데 (밀키트 토론을 하면서) 지적 우월감을 갖으면 안되죠. 밀키트로 음식점 하면서 요리 고수라고 착각하면 안 되는 거랑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정치, 사회 문제를 토론할 때는 본인이 직접 당근이랑 파는 가지고 올 정도는 돼야 의미 있는 논쟁이 되죠. 안 그러면 ‘우가우가 패싸움’이죠. “내가 보는 유튜브에서 그랬어” 이건 토론하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도마 꺼내고 칼질부터 시작할 여력이 없으니까 밀키트를 먹는 것도 문화로 친다지만, 사회적 진보를 이룰 정도의 토론이 되기 위해선 정성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개적인 토론 중에)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는 토론을 하다가 평소에 즐겨보던 커뮤니티 분위기를 그대로 오프라인에 쏟아내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한다든지, 지역비하발언을 한다든지. 정상적인 토론 내용 중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쁜놈’이라고는 안하거든요. 결국 온라인에서 논리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 문화까지 가져와서 조소를 받는거죠. 문제는 현실에서 요새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겁니다. 아주 극단적인 사람의 논리를 가져와서, 이를테면 ‘보수는 없어져야 할 인간’ 아니면 ‘빨갱이는 죽여야 돼’ 같은 말과 생각을 기반으로 현실에서 토론을 하는거죠.
(20대도) ‘이대남이라서’ ‘페미라서’ 여기에만 의존해서 논리를 풀어나가는 게 문제죠. 예를 들어 내가 ‘누가 싫다’ 그랬는데, 왜 싫은지를 정확히 설명하면 상대방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가 ‘저 사람은 전라도라서 싫어’라는 논리면 이건 웃어야 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토론하고 입장내는 걸 두려워 한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물론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제가 현실에서 많이 보는, 조소를 당하고 낙인이 찍히는 현상은 대부분 이런 거라고 봅니다. 진영별로 논리를 가공해서 만들어내는 일부의 공장들만 있을 뿐 나만의 논리나 철학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 크지 않은거죠.
의견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비치려면
근거를 찾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가져야
무언가 싫으면 ‘극혐’으로 급발진
설명은 불필요하고, 이해하려고도 안 한다.

김내훈 작가: 단어 혹은 ‘미세한 디테일’ 하나하나를 따져서 사람들이 많이들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사회적인 주제에 뚜렷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또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하니까 아예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고요.
게다가 ‘미세한 디테일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발끈하는 목소리에 언론이나 유튜브에서 ‘확성기’를 대주잖아요. 그러니까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여기에 효능감을 갖게 되고 그 효능감이 절정에 달하는 거죠. 한마디 더 얹자면, 미국에서 좋은 의도로 출발한 ‘캔슬컬처*’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딱 하나의 미세하게 잘못된 디테일에 집착하는 식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어요. 한국에선 내 마음에 안드는 디테일에 집착하며 ‘페미니스트’ ‘좌빨’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한다는 거죠.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제도권 정치도 가세를 합니다. 정치권에서 정말 사소한 디테일 가지고 내편이냐 네편이냐를 가르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니까 일반인들도 정치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오프라인에서 생기는 거 같습니다
시대적인 문제도 있지만, 책임지기 싫어하는 20대 특징도 있는 거 같아요. 중요한 어젠다가 있을 때 의견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비치려면 말의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 하고 그에 따른 책임감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근데 청년들이 여기저기 치여서 살다 보니까 (근거를 찾는 등의) 여력이 없거나, 그런 의지가 아예 길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뚜렷하게 공론장에 걸맞는 언어로 표현할 만한 어휘력도 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안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왜 불만이 있는지 차근차근 맥락과 배경부터 설명해야 되는데, 그럴 인내심이 살짝 부족한 면도 있어요. 무언가가 싫으면 그냥 ‘극혐’으로 급발진 하는 경향도 있죠. 이게 왜 별로인지를 설명할 시간이 없이 그냥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간주하는 형편이다 보니까 공론장에서 어울리는 말이 안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중국’하면 싫은 거고, ‘페미니즘’하면 그냥 싫은 거예요. 왜 싫은지에 대한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딱히 이해하려고도 안 하죠.
*[캔슬컬쳐]: 인종, 젠더 등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등 논쟁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SNS 등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고 보이콧하는 데서 시작한 온라인 문화 현상.
#2. 누가 성을 둘렀는가, 성역화 그리고 도발하는 인간들

이준석 의원: 일단 ‘성역’이 없어야죠. 예를 들어 ‘장애인이 지하철을 막고 시위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보여야 되느냐’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하느냐가 아니라 ‘넌 장애인 혐오’라고 나오면 정상적인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저는 지하철을 막아세우는 게 장애인이 아니라 보수단체라도 비판할 거에요. 그러니까 저는 지하철을 막아세워서 볼모삼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는 건데, 장애인이 하는 일을 막아세우니 ‘이준석은 장애인 혐오’라고 합니다. 혐오는 뭔가를 싸잡아서 그 특성만 공격하는 행태를 말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장애인 혐오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라고 사람들이 반박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 안하죠. (정상적인 토론이었다면) 논리적으로 (제 논리의) 다음 논의로 만약에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행위가 ‘절박한 사람들에게 허용된 범위’라고 반박을 하고, 그러면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위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되는 것인가’로 이어가면서 심도 있는 대화를 해 볼수 있어야죠.
물론 자기변명으로 얘기하는 것 아닙니다. 저는 정치를 하면서 이런 성역을 뜯어내야지만 대한민국에서 합리적인 논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해라’는 논제로 본다면, 4월 16일의 세월호 트라우마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해라’는 구호를 외칠수 있고, 또 거기에 ‘그럼 무엇을 밝혀야 합니까’ 라고 다시 물을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질문에 대해선 논의가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운 거거든요. 그냥 싸잡잖아요. 무조건 반대한다고 치부하고 ‘넌 나쁜 놈’ 이렇게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저는 그런 게 대한민국의 토론 문화에서 좀 걱정이 되는 부분이고 젊은세대에도 꽤 많이 침투해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커지는 거죠.

김내훈 작가: 프로보커터는 직업적으로 도발을 함으로써 돈을 버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3가지 유형으로 보는데 싫어하는 상대의 기분을 최대한 나쁘게 만들어서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후원금을 받는 사람이 있구요, 음모론을 이야기하거나 또 누가 들어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담론을 흐리고 그렇게 인지도를 쌓아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죠. 프로보커터는 정치 양극화 자체가 아니고 양극화 됐다는 인상을 주는 걸로 담론을 심각하게 오염시킵니다. 어떻게 오염을 시키냐면, 이전까지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서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던 괴팍한 이야기들...이를 테면 과격한 막말과 위험한 신념, 왜곡된 젠더 의식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프로보커터들이 부여했다고 생각해요.
이게 ‘담론이 오염된다’는 거예요. 청년들이 나름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 구조를 향한 불만이 있어요. 구직이 힘들다거나 임금이 적다든지. 이런 불만들이 프로보커터의 담론 오염에 의해서 축소되고 엉뚱한 방향으로 번역이 됩니다. ‘사회·경제적인 불만’이 아주 지엽적인 ‘문화적 불만’으로 변질된다는 거예요. 사회적 불만을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을 향한 ‘사이버 불링’으로 표출을 하는 겁니다.
심각한 건 이러한 프로보커터가 제도권까지 넘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러면 막말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점점 가시화 되고, 정치인들이 이런 말을 인용하거나 마이크를 갖다주면 마치 공식적으로 승인된 듯한 메시지가 되죠. 여기에 정치인들마저 그 프로보커터의 언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어디까지가 해서는 안되는 막말이고 공적인 자리에서 해도 되는 이야기인지, 판단 기준이 많이 흔들린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이버불링처럼 공격을 퍼붓는 것만이 청년들이 하는 정치적 표현의 전부가 되는 겁니다.
#3. 옛날 어젠다 갖고오는 기성 정치, 하품하는 20대들

보수는 기획력을 잃었다
보수가 내놓은 어젠다 시대착오적인 것 많아
20대는 젠더갈등 얘기 나누길 원하지만
기성정당에는 관심 가질만한 요소 전무.
이준석 의원: 저는 우리 정치에서 이념에 있어 판단해야 되는 것들이 많지 않다고 봅니다.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이런건 대한민국 큰 줄기를 잡아야 할 때 등장하는거죠. 복지체계를 설치할 때 보편적 복지냐, 맞춤형 복지냐 이런 걸 논할 수 있죠. 근데 그정도 가닥을 정하고 난 다음에는 일상에서 마주친 정치라고 하는 것들은 합리성을 추구해야 하는 거에요.
보수는 아예 기획력이라는 걸 다 잃어버렸어요. 보수가 내놓은 어젠다들은 시대착오적인 게 많아요. 기후, 환경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동네 주민센터도 환경보존 캠페인을 하는데, 보수는 아예 이런 어젠다에 끼질 않습니다. 그러니 생활 속에서 보수의 어젠다를 접할 기회가 없어요. 보수가 언제까지 부동산, 세금 같은 걸로만 이야기 할건가요. 옛날 식대로 보수 안 뽑으면 경제 망한다, 교육을 전교조가 잡으면 얘들 멍청이 된다 이런 걸로 협박하는 것, 이제 안 먹힙니다. 왜냐면 그렇게 안 된다는 걸 겪어봤거든요.
20대 무당층이 늘어나는 것도 ‘우리가 원하는 어젠다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요. 예전에 한 신문사에서 사회 갈등을 세대별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60대는 지역갈등, 40대는 경제적 계급 갈등이었어요. 근데 그때부터 20대는 젠더갈등이 나왔습니다. 그 시대에 유권자가 관심을 가질만 한 어젠다들을 정당이 발굴해야 합니다. 기성정당에는 20대, 30대가 관심 가질만한 어젠다가 전혀 없죠.
정말 중도라면 사안의 가운데를 알아야.
중도 치고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 못 봐.
사실은 ‘부동층’이 맞는 말.
선택지 없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정치혐오 자극하는 담론이 은폐 기능을 했기에 벌어진 상황.
그저 ‘중도를 빙자한 양비론’.
양비론은 가장 쉬운 선택지… 책임 없고 탓만 하면 돼.
김내훈 작가: 일단 저는 중도층이라는 말을 안씁니다. 정말로 중도라고 주장하려면 모든 사안의 ‘가운데’를 알아야 해요. 그러려면 사안에 대한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스스로 중도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우리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나요? 중도라서 무당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부동층’이 맞죠. 부동은 떠다닌다는 거잖아요. 20대 무당층은 제가 생각하기에 부동층이고, 가장 빠르게 양극을 왔다갔다 횡단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현재 우리 정치가 선택지가 없다라고 보지 않아요. 이전부터 있었던 군소 진보정당들이 선택지였고요. 선택지가 전혀 없다라고만 생각하면서 정치를 혐오하기만 하는거죠. 그걸 저는 ‘중도를 빙자한 양비론’으로 보는데, 양비론이야말로 가장 쉬운 선택지에요. 유권자로서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게 양비론이죠.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을 지지해서 투표를 한다고 하면 그 표에 대한 일말의 책임의식을 가지는데, 양비론으로 접근해서 다른 정당이 싫어서 이 정당을 뽑았다 하면 유권자로서 책임은 사라지고 이 정당을 뽑게 만든 다른 정당 탓을 하면 되는거죠.
당연히 사안마다 진보와 보수가 갈릴 겁니다. 모든 이슈에서 ‘둘 중 하나다’라고 말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 거대 양당이 빅텐트 형태라 당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그러니 어디에 자기가 더 맞느냐를 청년들 스스로 판단해야죠.
청년들 스스로 찾아볼 의지도 안 보이는데 ‘선택지가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건 무책임의 발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존의 진보와 보수의 개념에는 그렇게 큰 잘못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준석 의원 : 저는 이번에 동탄에 정치하면서 저출산에 대한 관점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여기는 왜 아이들이 많지?’ 이런 고민들을 계속 하거든요. 가설을 하나씩 세워서 분석해야죠. 돈 많은 직장인들이 여유가 있어서 많이 낳는건가, 그렇게 따지면 여의도에도 아이들이 많아야 할텐데, 저는 요즘 스스로와 이런 토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발 이 고민에 누가 같이 참여해줬으면 좋겠어요.
*20대 청년들: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가 정말 친한 친구들 간의 대화에서만 가능한 이유는 (이 관계에선)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또 너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겠다라는 일종의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공론장은 과연 20대들이 이 곳에서 정치 사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한 어떤 담론들이 나왔을 때 정말 기성 정치인들이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정책적 결단으로 가져갈 수 있냐를 생각하면, 굉장히 뿌리깊은 회의를 지니고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현재 공론장 안의) 이런 대화들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끼면, 아예 대화를 포기하는 걸 선택한 걸까 라는 식의 질문을 좀 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에게 허락된 건강한 공론장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청년들]: 취재팀이 대면 인터뷰한 아주대학교 학보사 학생들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인터뷰한 국민의힘 경기도당 청년당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정리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