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히로시마 하면 떠오르는 '원폭돔'
1966년 보존 필요성 제기, 자발적 모금
1989년 내부 부식 소식에 다시 뜻 모아
참사의 기억 딛고 '치유'… 자부심으로

앙상한 뼈대만 남은 지붕. 잔뜩 찢겨 색이 바래져 버린 외관의 콘크리트.
곳곳에 난 균열로 지지대에 아슬하게 버티고 서있는 기둥.
지난 19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원폭돔'은 외관의 모습과 원폭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평화기념공원' 한쪽에 우두커니 있었다.
원폭돔 건물 사이를 3분 넘게 가만히 응시하던 한 서양인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순간을 담는다. 그 주변의 한 일본 주민은 폐허가 됐던 현장과 피해자들의 사진을 양손에 들고 "잊지 말아달라"고 서글피 외치고 있다.
누군가에겐 잔혹한 기억을 못 잊고 울부짖을 수 있으면서도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추억의 장소가 되는 이중적인 공간.
사망자 14만명. 당시 히로시마 인구가 30만인 점을 감안하면 순식간에 인구 절반 가까이 사라지게 만든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평화기념공원과 원폭돔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참사에 직격당했던 일본 국민과 히로시마 시민들을 진정한 '치유'로 이끈 기제가 됐다. 방치될 수도 있었던 참사의 흔적인 원폭돔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보존과 관리에 힘썼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의미가 크다.
원폭돔은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직접적으로 타격된 '폭심지'에서 가장 가까워 강한 폭격을 맞은 건물이다. 도시가 재건됨과 동시에 1966년 원폭돔 보존에 대한 필요성 여론도 높아지며 일본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을 시작해 6천600만엔(약 6억원)을 모았다.
이후 히로시마시의회는 원폭돔 보존 결의안을 채택, 정부까지 나서 '원폭돔 보존 프로젝트'에 돌입했는데, 1989년 돔 내부 부식이 심각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히로시마 주민들을 중심으로 모금 운동이 시작돼 3억9천500만엔(약 36억원) 이상이 전달됐다.
민관이 합심한 결과, 1996년 히로시마 원폭돔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었다. 찬반 논란이 많은 전쟁 관련 유산 중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인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이어 두 번째다.
인구 120만명에, 일본 수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재건'에 성공한 현재 히로시마의 시민들에게 원폭돔이란 참사의 상처를 딛고 다음 날을 살아가게 한 희망이었으며, 이제는 자부심의 상징이 됐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학예사인 코야마 료는 "히로시마가 처음부터 원폭돔을 관리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돔은 피해의 상징물이 됐고, 결과적으로 히로시마 주민과 국가라는 두 주체가 열의를 가지고 (보존하도록) 만들었다"며 "원폭돔과 평화공원, 기념관 등은 단순한 추모의 의미를 넘어 도시 재건, 부흥 등 다양한 형태로 완성되며 추진력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gogosing@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