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허용않는 韓 교육 문제라 여겨
그때부터 모든 강의 질문·토론 진행
그러던 때 뜻하지 않던 '도발' 만나
학생 의문 아닌, 내 의문 해결 급급
경청했어야… '오지랖' 후회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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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대학에서 교양을 가르치는 나는 모든 강의를 질문과 토론으로 진행한다. 계기가 있다. 언젠가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 회견을 할 때,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지만, 단 한 명의 기자도 질문하지 못한 부끄러운 일이 있고서부터다. 질문과 도발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교육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듣고만 있지 말고 매순간 질문을 던지고 이의를 제기하라고 촉구했다.

학생들에게 좋은 질문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말이든 글이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훈련이 교육 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쉽지 않았다. 문제는 학생뿐 아니라 선생인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학기였던가 나는 학생들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질문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나는 알지 못합니다(I don't know)'로 시작해서 '신만이 알 것입니다.(God only know)'로 끝나는 법정 진술이다. 신탁에 의해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지목된 이가 "나는 모른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말로 법정 진술을 끝낸 것이다. 마침내 그가 독배를 마시는 순간 모든 그리스인들은 바보가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소크라테스의 법정 연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지만, 한 학생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소크라테스가 비겁해 보인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도발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 학생에게 근거가 무엇이냐고, '변명' 중 어느 대목에 비겁한 구석이 보이냐고 물었다. 학생은 머뭇거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나는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의심하려면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다음 강의를 마무리했다. 다음 시간에 그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였다면 나처럼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세웠다. 한마디로 소크라테스가 오지랖을 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변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록에서 상대가 누구든 그의 말을 먼저 듣고 그때그때 상대의 처지에 꼭 맞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스스로 오류를 피하고 진리에 접근하도록 인도한 것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은 오지랖이 아니다.

법정의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지난 삶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를 법정에 세운 고발장에는 소크라테스가 '약한 논변을 강한 논변으로 만들었다'는 죄목 또한 포함되어 있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도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죽음이 삶보다 더 좋은 것일 수 있다'고 배심원들을 훈계하다가 끝내 사형을 선고받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으며 그렇게 사느니 이렇게 죽겠다고. 급기야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논변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죽음을 통해 고발장의 오류를 밝힌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소크라테스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비겁해 보인다는 관점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각자의 경험에 따라 소크라테스의 삶을 다르게 평가할 수 있으며 지금의 우리가 반드시 소크라테스의 처지에서 '변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학생이 어떤 경험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귀 기울였어야 했다. 그게 학생으로 하여금 올바른 이해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생이 아니라 나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더욱이 소크라테스처럼 상대의 삶에서 답을 구하게 하지 못하고 '변명'의 한 구절에서 답을 찾아 내놓으라 했다. 오지랖을 떤 것이다.

오지랖이 죄가 된다면 상대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진 소크라테스는 무죄고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남에게 던진 나는 유죄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