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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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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오디세우스와 오이디푸스 지면기사
고대 그리스 서사시를 스크린에 부활시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 대한 반응이 날씨만큼이나 뜨겁다. 사람들은 압도적인 화면에 펼쳐지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용맹과 영리함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신들의 분노와 가혹한 운명의 폭풍을 이겨내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열광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반복해 온, 강자 숭배와 닮은 꼴이다. 놀란의 거대한 시각적 스펙터클은 트로이 전쟁이 낳은 ‘오만하고 이기적인 영웅’의 본질을 교묘하게 가려버린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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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광장의 포옹 지면기사
십여 년 전 어느 날, 서울시청 앞에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외치는 수백명의 부모와 청사 점거를 막으려는 그만큼의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임박한 순간, 맨 앞에 서 있던 발달장애 아동 한 명이 돌연 경찰을 향해 걸어 나갔다. 막아선 경찰들이 긴장하고 부모들이 놀라 숨을 죽인 찰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앞줄에 서 있던 경찰관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려 와락 품에 안긴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서늘한 긴장감 대신 무언가 뜨거운 것이 번져갔다. 아이의 무해한 포옹은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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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환대의 몰락 지면기사
나는 어린 시절 ‘안네의 일기’를 읽었고 성장하면서 하이네의 시와 카프카의 소설을 읽었으며 최근까지 필립 로스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독자들이 짐작하다시피 모두 유대인 작가다. 언젠가 내가 가르치는 교양과목의 교재를 편찬할 때 ‘환대’를 주제로 글을 싣게 되어 조너선 색스, 알랭 핑켈크로트, 임마누엘 레비나스 등 8명의 글을 뽑았는데 모두 유대인이었다. 결국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몇몇 글을 다른 글로 대체하기는 했지만 그 일은 내게 ‘환대’가 가장 절실한 이들이 유대인이라는 각인을 남겼다. 조너선 색스가 강조한 ‘차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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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하얀 봉투 지면기사
지금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지만 학교에서 촌지가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시골에서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도 그랬다. 집안 형편이 좋은 학부모들은 종종 학교에 와서 선생님에게 촌지를 전달하곤 했다. 선생님들은 가정환경조사 시간이나 가정방문 행사를 통해 아이들의 집이 부유한지 아닌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은근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했다. 아이에게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말은 촌지를 가지고 오라는 에두른 표현이었다. 촌지가 전해지면 아이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곧장 달라졌다. 반장이나 부반장 같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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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겨울, 헤겔을 읽다 지면기사
지난달 26일 한양대학교 HIT 관에서 뜻깊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주관한 이 모임은 이병창 선생의 책 ‘헤겔의 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먼빛으로, 2025)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로 100명 가까운 연구자들이 참석해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주해 본으로 간행된 건 국내 최초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괴물과 싸우다 필자도 괴물이 된 듯하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이해한답시고 약 1천200개의 주를 달고 거의 매 구절마다 해제를 덧붙였더니, 바닷가 바위에 붙은 굴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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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한국문화 지면기사
세계는 바야흐로 한국 문화 열풍으로 뜨겁다. 다름 아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때문이다. 케데헌은 지난 6월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래 영화와 드라마를 포함하여 지구촌 인류가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으로 지금도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주제가 또한 빌보드를 비롯한 각종 음악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끝날 줄 모르는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케데헌의 성공은 여러 면에서 놀랍다. 케데헌은 케이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한국에서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미국 자본과 일본 제작사가 참여한 미국 애니메이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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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사당동 추억 지면기사
우리 가족은 1990년대 초반부터 줄곧 서울 사당동에서 살고 있다. 교통이 편리해 이곳저곳 출강하던 시간강사 시절의 나에게 안성맞춤이기도 했지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점이 있었던 것도 좋았던 점 중 하나다. 아파트 초입 삼거리에 태성루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는데 칠순이 넘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구슬이 꿰어진 주렴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면 테이블 두 개와 온돌이 있었는데 손님이 꽉 차도 열명 정도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작고 이름 없는 식당이었지만 음식은 정갈했고 특히 자장면이 맛있어서 나는 휴일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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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 대통령 지면기사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이 나라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이들이 국정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름이 등장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사실이었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과의 대화 중에 나왔다. “제가 어릴 때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서 알고 보니까 그게 소년 노동의 잔혹함을 풍자한 책이었어요.” 이어서 이 대통령은 노동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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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다 지면기사
지난 7월14일, 동양철학 연구자 이현구 선생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저명한 학자는 아니었다 하겠으나 동양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선생의 책을 읽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선생이 30여 년 전에 펴낸 ‘동양철학 에세이(김교빈·이현구 공저, 동녘)’는 그야말로 해당 분야의 베스트셀러였고 지금까지 명저로 손꼽히는 책으로 이 책을 읽고 동양철학에 입문한 이가 심심치 않게 있는 걸 보면 선생이 학계에 기여한 공이 적지 않다 하겠다. 선생은 기철학 연구에 평생 매진한 탁월한 연구자였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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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가장 어려운 강의 지면기사
지금까지 강의를 하면서 진땀 흘렸던 기억이 몇 차례 있다. 가장 먼저 나는 기억은 2008년 세계 철학대회가 아시아권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렸을 때이다. 그때 나는 중등부 철학 올림피아드 강의를 담당했다. 청중은 중학생들이었지만 철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학생들답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도 잠깐, 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학생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직감한 나는 청중의 주의가 흐트러질 때 으레 쓰는 나만의 필살기(?)까지 동원하면서 안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