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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호근 칼럼] 흰까마귀

    [전호근 칼럼] 흰까마귀 지면기사

    어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28주기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에 있는 선생의 묘소를 찾아 추모제에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선생께서 민주화운동과 함께 협동조합운동을 펼친 게 60년대였고 생명운동을 시작한 게 70년대였으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환경운동을 펼치고 한살림운동을 시작한 게 80년대였다. 당시 세상은 그야말로 개발독재요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성장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기에 세상에서 선생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가 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게 입증되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런 점에서 선생은 흔히 말하는 '선견지명'의 안목을 가졌던 이가 아니라 '선행지명'의 지혜를 실천했던 분이라 하겠다. 선생이 가신 지 벌써 28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선생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 나는 '대장부, 그들이 거기에 있었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장일순 선생을 따라 민주화운동,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을 실천해 온 김영주, 이경국, 김상범 세 제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세상에 흔한 성공담과는 크게 달랐다.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한다. 경험주의자 경험 중시하기 때문에해보지 않은 일 함부로 이야기 안해 장일순의 제자 김영주는 1966년 춘천시 공보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 그를 발탁할 생각으로 춘천시에 전출을 요청했고 춘천시장 또한 출세하려면 중앙으로 가야한다며 전출을 흔쾌히 허락했다. 며칠 뒤 김영주는 원주의 장일순 선생을 찾아뵙고 서울로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축하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선생은 지학순 주교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니 서울로 가지 말고 원주로 돌아와 지학순 주교를 도우라고 했다. 뜻밖의 말을 들은 김영주는 선생이 자신의 출세 길을 막는다고 여겨 이번만은 선생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는데 다음 날 오전 아내에게서 이런 전화가 왔다."당신 후배 이경국씨가 트럭을 갖고 와서 '무위당 선생이 형님 집 살림을 전부 싣고 원주로 오라고 명령을 내리

  • [전호근 칼럼] 언어와 인격

    [전호근 칼럼] 언어와 인격 지면기사

    오래 전 미국 일리노이 대학 언어학과 김진우 교수의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다. 언어학에 대한 소양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나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 언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었다. 인터뷰 중에서 내가 인상 깊게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중요한 서류를 학교에 놓고 온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학교로 가야 하는데 교통편이 없어서 남의 차를 빌려 타야 했어요. 길가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는데 때마침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어요. 천둥 번개가 치고 세찬 빗줄기가 쏟아져서 아주 곤란했는데 운 좋게도 제 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조수석에 타고 차 문을 닫았는데 차 안에는 바깥과는 달리 정적이 흐르더군요. 운전하던 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자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날씨가 조금 궂죠?' 학교에서 서류를 가지고 다시 집으로 오기 위해 또 길가에서 차를 잡아야 했습니다. 비는 여전히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제 앞에 멈추었습니다. 트럭에 올라탔는데 트럭 운전수가 제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 빌어먹을 비 좀 봐!' 제가 점잖게 표현해서 그렇지 실은 욕설이 섞여 있었어요. 퍼붓는 비는 승용차 운전자에게나 트럭 운전수에게나 똑같이 내렸는데도 승용차 운전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점잖게, 트럭 운전수는 큰 소리로 거칠게 말한 것이지요. 그래서 흔히 승용차 운전자의 말은 고급언어고 트럭운전수의 말은 저급하다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승용차 운전자는 환경이 조용하니까 조용히 말해도 자신의 말이 전달됩니다. 그러니 소리 지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 반면 트럭 운전수는 주변 환경이 시끄러우니까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큰 소리로 거칠게 말하는 것일 뿐 그의 언어가 결코 승용차 운전자의 언어보다 저급하다 할 수 없어요." 30년은 족히 지난 일이라 표현까지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김진우 교수의 이야

  • [전호근 칼럼] 팬데믹 시대의 책 읽기

    [전호근 칼럼] 팬데믹 시대의 책 읽기 지면기사

    나는 평소 영화를 비롯한 영상 매체를 보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더 많다. 책이 영화보다 재미있다거나 책이라는 매체가 영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책을 읽을 때 상상력의 크기가 더 커지고 자유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영화와 달리 책을 읽을 때는 예컨대 등장인물의 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이 걷거나 뛰는 속도, 풍경이 흐르는 속도조차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심지어 거꾸로 가게 하거나 단편을 장편으로, 장편을 단편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런 마술은 책을 읽을 때만 가능하다. 영화나 기타 영상 매체는 그런 점에서 내게는 닫혀 있는, 아니 갇혀 있는 장르에 가깝다. 코로나로 학생들과 대면 못한 시간끝내 회복할 수 없는 손실로 남을 것 읽은 책의 권수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천천히 읽기 때문이다. 책을 빨리 읽지 않는 까닭은 속독이라는 것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제제'와 '뽀르뚜가'의 우정이 얼른 끝나고, 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인디언 '리틀 트리'와 '체로키 할아버지'의 사랑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느리게 달려야 매일 달릴 수 있고 매일 달려야 멀리까지 달릴 수 있다'는 말은, 달리기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모름지기 책이야말로 천천히 읽어야 매일 같이 읽을 수 있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내가 많은 수의 책을 읽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한 권의 책을 백 번 읽는 것이 백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나았다. 한 권의 책을 여러 차례 읽어서 앞 문장을 읽으면 이어지는 문장이 바로 생각날 즈음이 되면 나는 비로소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또 다른 삶을 살아보는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나는 책을 읽을 때 행간을 읽기도 하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통로를 따라 가로로 조판된

  • [전호근 칼럼] 1909년 12월 22일

    [전호근 칼럼] 1909년 12월 22일 지면기사

    지난 12월22일 의사학 전공자 황상익 교수를 모시고 단출하게 송년 모임을 가졌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나에게 대뜸 "이재명을 아느냐?"고 묻는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선생은 웃으며 오늘이 바로 이재명이라는 청년이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한 날이라며 다음같이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112년 전인 1909년 12월22일 이재명을 비롯한 열세 명의 청년들이 모의하여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총리대신 이완용을 척살하려 했으나 중상만 입히고 죽이지 못했다.이날 이완용 척살에 직접 나섰던 이재명(1887~1910)은 평북 선천 출생으로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1905년 무렵 노동 이민모집에 지원, 하와이로 이주하여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안창호가 조직한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07년 헤이그에서 이준이 분사(憤死)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재명은 일제의 침략 원흉과 조선의 친일파 매국노들을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그해 가을 조선으로 돌아왔다. 황상익교수와 단출한 송년모임자리대뜸 이재명을 아느냐? 고 묻는다어리둥절 표정에 사건전말을 설명 1909년 이재명은 대한의원 학생 김용문과 오복원의 도움으로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규합하여 매국노 척살 계획을 세웠는데 한때 목표로 정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그해 10월26일 안중근에 의해 처단되자 11월 하순경 이완용과 일진회 회장 이용구를 척살하기로 목표를 수정하고 기회를 엿보았다.마침내 12월22일, 이완용이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김용문에게서 전해들은 이재명은 거사에 나서 명동 성당 부근에서 이완용을 칼로 찔렀지만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죽이지는 못했다. 이것이 이른바 '총리대신 이완용 모살(謀殺) 미수 사건'으로 일제는 이재명을 비롯한 13명을 체포하여 재판에 넘겼다. 당시 이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된 이들의 이름과 선고 형량은 다음과 같다.이재명(23세·사형), 김정익(21세·징역 15년), 오복원(25세·징역 10년)·박태은(1

  • [전호근 칼럼] 혼돈(渾沌)의 죽음

    [전호근 칼럼] 혼돈(渾沌)의 죽음 지면기사

    두어 달 전 가족들과 함께 마블 코믹스의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보다가 뜻밖의 동물을 만났다. 영화에서 모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동물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냄새를 맡지도 못한다. 눈, 코, 입, 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짐승은 바로 중국의 고전 '산해경'에 나오는 제강(帝江)으로, 본디 철학 우화집 '장자'에 나오는 혼돈 이야기를 모티프로 그린 신수(神獸)의 일종이다.혼돈 이야기는 남쪽의 임금 숙과 북쪽의 임금 홀이 혼돈의 땅에서 자주 만났는데 혼돈이 잘 대접해주자, 숙과 홀이 혼돈의 환대에 보답하기 위해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어주었더니 칠일 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영화 '샹치…'를 보다 제강을 만났다中 혼돈이야기 모티프의 神獸 일종 이 짤막한 이야기에서 숙과 홀은 시간의 신(神)이자 인간의 문명을 상징한다. 반면 혼돈은 시간의 흐름에 적용받지 않는 원시의 도, 무위자연을 상징한다. 그래서 혼돈은 흑백(黑白)이 나눠지지 않고, 선악(善惡)과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고, 시비(是非)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시비가 없다는 것은 시비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 곧 혼돈이 지각이 없는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지각이 없기에 낯선 이를 환대할 수 있었던 혼돈은 숙과 홀을 만나면서 죽음에 이르고 만다. 숙과 홀의 도움으로 눈, 코, 입, 귀를 가져 지각할 수 있게 된 혼돈은 선악과 피아를 구분하고 시비를 따지게 되어 더 이상 혼돈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혼돈의 비극은 우리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타자를 지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시도일 수 있거니와 비록 선의로 접근하더라도 상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끌어안으려는 우리의 이해는 실은 타자성의 상실을 강요하는 폭력일 수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타자의 타자성이 상실되고 나면 우리가 함께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얼굴이지 있는 그대로의 타자일 수 없다. 숙과 홀의 선의(善意)가 혼돈을 죽인 것

  • [전호근 칼럼] 중학교 점심시간

    [전호근 칼럼] 중학교 점심시간 지면기사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서울에서도 부촌인 동네에 있었는데 학교 주변에 학교보다 큰 집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바라다보이는 어느 집에 건물과 건물 사이로 구름다리가 걸쳐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도시의 학교생활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때 만난 선생님들은 학생을 가르치려는 열정이나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 일인지 학생들이 잘 따르지 않았다.3학년이 되어서 만난 기술 과목 신언규 선생님은 담임이기도 하셨는데, 내가 여러모로 존경했던 분이다. 당시 나는 라디오 키트 조립에 열심이었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여쭈었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라디오의 작동 원리까지 친절하고 명쾌하게 일러주셨다. 선생님을 더욱 존경하게 된 계기가 있다. 언젠가 가정환경 조사 시간에 한 친구가 부모의 직업을 말하지 못하고 쭈뼛거리자 선생님은 이렇게 물었다."아버님이 노동자이신가요?""…예.""감추거나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상투적인 말이었지만 선생님은 이때만은 평소와 다르게 존댓말을 쓰면서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에 담긴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말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고 노동자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도 그때였으며 일하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비로소 알았다. 2학년때 서울의 부촌으로 전학왔다가장 나쁜기억중 하나는 점심시간도시락 반강제 빼앗아 먹던 친구탓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학교 주변에는 폭력 서클이 많았고 어쩌다 그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몇 대 맞을 각오를 해야 했으며 실제로 그런 순간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럼에도 나름의 선은 있었다. 주먹 쓰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학교는 주먹 쓰는 아이들과 공부하는 아이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공부하는 쪽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폭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지만 그렇다고 공부하는 아이들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여럿이

  • [전호근 칼럼] 끈

    [전호근 칼럼] 끈 지면기사

    올림픽은 끝났지만 또 하나의 지구촌 스포츠 축제인 패럴림픽이 지난 9월5일 폐회식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간간이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방송으로 접했지만 경기를 즐기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패럴림픽에 대해 알아야 할 100가지'라는 글을 읽었다. 그중 흥미롭게 읽은 몇 가지를 소개한다.'패럴림픽'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전치사 'para'와 'olympic'의 합성어로 'para'는 '곁에' 혹은 '함께'라는 뜻이다.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나란히 나아가는 대회이며 두 대회는 함께 존재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역대 패럴림픽 출전 선수 중 헝가리의 제커스 팔은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딴 최초이자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펜싱으로 동메달을 땄고 1991년 버스사고를 당한 뒤, 1992년 바르셀로나 패럴림픽에 출전해 휠체어 펜싱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호주의 사격 선수 리비 코스말라는 74세의 나이로 리우 패럴림픽에 참가해 최고령 패럴림픽 참가자로 기록되었다. 그는 은퇴하기 전까지 열두 차례 패럴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 아홉 개를 포함, 모두 열세 개의 메달을 따냈다. 패럴림픽 '올림픽과 함께' 라는 뜻시각장애 육상·사이클참가 선수는끈연결 가이드와 한몸으로 질주한다 패럴림픽만의 독특한 경기 규칙도 흥미로웠다. 육상경기에서 시각 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팔이나 손을 가느다란 끈으로 묶어 연결한 가이드와 함께 달린다. 마찬가지로 시각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참가하는 사이클에서는 앞자리에 타는 파일럿이 방향을 알려준다.가장 놀라웠던 내용은 2016년 리우에서 열렸던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육상 1천500m T13 등급의 기록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당시 패럴림픽 1천500m 결선에서 1위에서 3위를 기록한 선수들은 직전에 열린 리우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보다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더 빠르게 달린 것이

  • [전호근 칼럼] 패배라는 이름의 승리

    [전호근 칼럼] 패배라는 이름의 승리 지면기사

    어젯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떠나갈 듯 커다란 함성을 들었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도미니카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구어낸 순간이었다. 함성 소리를 듣고 승리를 직감한 나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전율했다."아, 우리가 이겼구나!"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쿄올림픽이 마침내 막을 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대회를 강행한 만큼 이번 올림픽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당장 일본만 해도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터라 인류의 축제는커녕 환영받지 못하는 올림픽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우려했던 대로 수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개회 전 조직위원장이 여성 멸시 발언으로 사임하더니 음악 담당자 또한 과거의 동급생 집단 따돌림 가해 행위를 자랑스레 떠들다가 물러났으며 급기야 개폐회식 연출 담당자마저 여성 외모 비하 논란으로 사퇴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후쿠시마산 식재료에 대한 우려, 열악한 시설의 선수촌, 국제 규격에 미치지 못하는 일부 경기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으며 선수촌에 들어온 선수들의 잇따른 코로나 확진과,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대회에 출전해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선수가 속출했다.그럼에도 이번 올림픽을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경기장에서는 과연 올림픽이라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올림픽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인공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도 아니고 국제 올림픽위원회도 아닌 올림픽에 참가하여 땀 흘리는 여러 나라의 선수들이라 하겠다. 말도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 개막우려대로 수많은 문제 드러났지만선수들 명승부 이어지며 짠한 감동 스포츠 경기란 으레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로 마무리되기 십상이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통쾌한 승리보다 더 낫게 패배한 모습에서 얻는 감동이 더 컸다. 아직 올림픽이 끝나지 않았지만 명승부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올림픽 탁구 대표 선

  • [전호근 칼럼] 눈썰매장의 공정

    [전호근 칼럼] 눈썰매장의 공정 지면기사

    아이들 어렸을 때 눈썰매장에 갔다도시서 먼곳 사람 적으니 재미 덜해그런데 동네아이들 입장 놀라운 변화환호성에 다른 아이도 덩달아 신바람무료 핀잔 쫓겨났지만… 더 큰 공정 봐아이들이 어렸을 때 경기도 가평에 있는 눈썰매장에 간 적이 있다. 방학기간이었지만 도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서너 가족이 눈썰매장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대도시의 혼잡한 썰매장과는 달리 위쪽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바로 썰매를 탈 수 있어서 좋았다.나도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타며 즐겼는데 사람이 적은 만큼 놀이의 재미도 덜했다. 뭔가 시끌벅적 신나는 분위기가 부족했던 탓이다. 썰매를 타고 내려왔다가 다시 위쪽으로 무심히 올라가던 중 울타리 바깥쪽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눈썰매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림새로 보아 부근 동네에 사는 아이들 같았는데 아무래도 눈썰매장 입장료를 낼 돈이 없어 구경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입장료를 대신 내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비용이 만만찮은데다 아이들이 꼭 그렇게 해주길 바랄 것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아 별도리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는데 잠시 후 그 아이들이 썰매장으로 들어왔다. 알고 보니 썰매장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돈을 받지 않고 아이들을 입장시켜 주었던 것이다.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 아이들이 썰매를 타면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조용히 썰매를 타던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갑자기 다른 시공간이 열린 것처럼 눈썰매장에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아이들의 즐거움이 무르익어 가는 듯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문제는 먼저 와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부모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동네 아이들에게 물었다."너희들 입장료 냈니?""아뇨. 아저씨가 그냥 들여보내 주셨어요.""왜 그랬지? 그럼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은 뭐가 되니?"뜻밖의 핀잔을 들은 아이들은 잠시 후 풀 죽은 모습으로 썰매장을 떠났다. 눈썰매장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고

  • [전호근 칼럼] '학교 가는 길'을 보았다

    [전호근 칼럼] '학교 가는 길'을 보았다 지면기사

    얼마 전 여러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보았다. 맨 먼저 윤여정씨의 오스카상 수상에 빛나는 '미나리'를 보았고 이어서 같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포함하여 3개 부문을 수상한 '노매드랜드'를 보았으며 최근의 화제작 '자산어보'를 보았고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 김정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을 보았다.앞의 세 영화가 세간의 호평에 어울리는 수작이라는 데 기꺼이 동의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작품은 '학교 가는 길'이다. '학교 가는 길'은 장애인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세워지기까지의 투쟁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노매드랜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화다.'노매드랜드'를 보며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스왕키 역을 스왕키가, 린다 역을 린다가, 밥 역을 밥이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다. 주인공과 몇몇 주요 배역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연기자가 아닌 실제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학교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인 만큼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연기자가 아니라 실제의 인물들이다. 이은자 역을 이은자가, 정난모 역을 정난모가, 조부용 역을 조부용이, 장민희 역을 장민희가, 김남연 역을 김남연이 맡았지만 이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어머니로 영화에 나오는 대사와 몸짓, 눈물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의 삶이다.우리 모두 기억하는 것처럼 지난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는 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격렬한 토론회가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행정예고를 하자 다수의 지역주민들이 반대하여 이루 말 못할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영화에는 나오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차마 이곳에 적지 못하겠다.(그런데 감독 또한 영화에 차마 다 담지 못했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다수의 주민들이 장애인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보았다는 사실이다.사실 특수학교를 설립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하는 토론회는 애당초 있어서는 안 될 자리였다. 학교 부지에 학교를 짓는 것은 법적, 행정적으로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