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환경미화원 폭행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4일 저녁 수원시청 앞에서 한 환경미화원이 무차별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15일 아침이 되자 이 소문은 구체화 되기 시작합니다. 소방에서 전날 오전 6시30분께 시청 앞에서 폭행당한 환자를 병원에 이송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관할서인 수원남부경찰서로 급히 전화했습니다. 전날 술에 취해 환경미화원을 폭행한 30대 남성이 입건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짤막한 ‘환경미화원 폭행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일방적인 폭행, CCTV 통해 밝혀진 전말
정류장 내 근무중 주취자 구타
주변 신고 없어 시청까지 도망
병원 이송… 코뼈 골절·타박상
해당 사건 보도 이후 수원시 환경미화원노동조합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리고 환경미화원 폭행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폭행 당한 40대 남성 환경미화원 A씨는 그리 왜소한 체격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시비가 걸려오면 충분히 맞서 제지할 수도 있던 건장한 남성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오전 6시께 그는 관할 구역인 인계동 수원시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지나가던 주취자가 A씨에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최대한 자리를 피해 엮이지 않으려 했지만, 주취자는 A씨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는 출근하던 시민들이 서 있었지만,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말리는 이는 없었습니다. A씨는 시청 내에 청원경찰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급히 시청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동안 주취자는 계속 A씨를 따라와 집요하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시청은 이른 아침이라 문이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A씨는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시청 본관 정문 앞에서 주취자에게 계속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시청 본관 정문 앞을 찍고 있던 CCTV에는 그가 주취자에게 구타를 당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습니다. 병원에 이송된 A씨는 코뼈가 골절되고 머리와 턱, 얼굴에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수백 건의 시비, 수십 건의 폭력, 한 건의 살인
수원시 환경미화원노조는 올해만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째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난 3월 팔달구 지동의 한 노상에서 50대 환경미화원이 시민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해당 환경미화원은 분리 배출이 미흡한 쓰레기봉투를 투기하려던 시민을 계도했으나, 해당 시민은 돌연 그를 밀치고 폭행한 것입니다.
8월에는 장안구 영화동의 한 공원에서 60대 환경미화원이 폭행을 당했습니다. 밤늦게 홀로 공원을 청소하던 환경미화원은 벤치에 앉아있던 주취자에게 옆 커피잔을 치워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주취자는 갑자기 환경미화원에게 달려들어 목 부분을 폭행했습니다.
사소한 시비부터 크고 작은 폭행까지 환경미화원을 향한 이러한 범죄는 그냥 두고 지나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안전 관리에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개의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엔 수십 건의 작은 사건들이 있고, 그전엔 수백 건의 경미한 사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 8월 서울시에선 새벽 시간대 작업 중이던 60대 여성 환경미화원이 노숙인에게 흉기로 수차례 찔려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환경미화원을 향한 수십 건의 폭행과 수백 건의 시비가 그냥 넘겨진 탓에 발생한 일입니다.
해당 사건 이후 도내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성 환경미화원에게 경보음과 자동 신고 기능이 탑재된 ‘안심벨’을 지급했지만, 현장에서 환경미화원을 지키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위험지역 내 2인 1조 근무도 건의됐지만, 인력·예산 등의 이유로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나를 지켜줄 수단도, 방법도 없는 무방비 상태
가만히 참고 다 맞았다는 게 얼마나 서러워
수원, 용인 등지에서 만난 환경미화원에게 시비가 걸리면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같이 공통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시하고 자리를 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시비를 걸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내 한 환경미화원은 직무 교육 때 ‘최대한 시민과의 마찰을 피하고 먼저 신체 접촉이 있어도 환경미화원은 절대 접촉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민 접촉 피해야’… 대책 미흡한 교육
수원시, 호신용품 검토… 예산 부족 발목
공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어찌 보면 일반 시민과의 마찰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모욕을 당하면 참고, 때리면 맞기만 하는 것이 능사일까요. 최호진 수원시 환경미화원노조 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속 같은 말을 되뇌며 혀를 찼습니다.
“호신용 스프레이 하나만 있었어도 서너 대 맞을 것을 한 대만 맞고 말았겠지. 가만히 참고 다 맞았다는 게 얼마나 서러워.”
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흥업소 밀집지역 등 우범지대에 근무하는 환경미화원에게 호신용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산 등의 문제로 당장 전체 인력에 보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언제 어느 때 폭력이 엄습할지 모르는 거리. 환경미화원은 오늘도 무방비로 거리에 나섭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