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 온 학생, 화장실에 아기 유기

8년 전과 똑같은 비극 똑같은 신분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지원 못 받아

결혼비자 아닌 이주여성은 출산에 취약

외국인 미혼모가 잘못된 길 택하는 사정

의정부시 의정부역 지하상가 화장실. 지난 20일 이곳에 방치된 검정색 가방에서 탯줄 달린 갓난아기가 발견됐다. 2024.11.22 /김태강 기자 think@kyeongin.com
의정부시 의정부역 지하상가 화장실. 지난 20일 이곳에 방치된 검정색 가방에서 탯줄 달린 갓난아기가 발견됐다. 2024.11.22 /김태강 기자 think@kyeongin.com

갓난아기가 ‘또’ 버려졌습니다.

사건은 지난 20일 오후 5시께 의정부역 지하상가 화장실에서 발생했습니다.

탯줄 달린 영아 유기한 베트남 유학생 구속영장… 혐의는 부인

탯줄 달린 영아 유기한 베트남 유학생 구속영장… 혐의는 부인

에 영아를 가방에 넣어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 날 오후 5시께 상가 경비원으로부터 “화장실에 방치된 가방 안에 아기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방 안에서 탯줄이 달린 여자 아기를 발견하고 즉시 병원으로 옮겼다. 아기는 건강 상태에 이
https://www.kyeongin.com/article/1719599

지하상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정숙(49)씨는 상가 화장실에서 낯선 검은색 가방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든 김씨는 즉각 평소 친하게 지내던 상가 경비원 윤용섭(63)씨를 찾아갔습니다.

김씨는 “지하상가 화장실이 구석진 곳에 있어 상인들 아니면 잘 이용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날따라 수상한 옷차림의 외국인 여성이 검은색 외투를 싸매고 주변을 지나가는 것을 봤어요. 그리고 화장실에서 가방을 발견한 거죠. 무서운 마음에 경비 아저씨를 불러 함께 확인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김씨와 윤씨는 검은색 가방 안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방 안에는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는 갓난아기가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아기를 보호하는 것은 얇은 흰색 천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윤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윤씨는 “가방을 열었는데 갓난아기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아기가 울지 않아서 인형인 줄 알았는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했죠. 태어난 지는 하루 정도 돼 보였어요. 경찰과 소방이 출동하고 아기를 가방에서 꺼냈는데 그제야 울더라고요.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아기가 죽었을 수도 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경찰은 상가 주변 CCTV를 확인해 베트남 국적의 A(19)씨를 검거했습니다. A씨는 올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학생이었습니다. A씨는 “내가 낳은 아기가 아니다”라며 출산과 유기 등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A씨의 혐의가 비교적 뚜렷하다고 판단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의정부역 영아 유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의정부시 의정부역 출입구 앞. 지난 2016년 3월 30일 베트남 유학생 B씨는 이곳에 숨진 영아를 유기해 경찰에 붙잡혔다. 2024.11.22 /김태강 기자 think@kyeongin.com
의정부시 의정부역 출입구 앞. 지난 2016년 3월 30일 베트남 유학생 B씨는 이곳에 숨진 영아를 유기해 경찰에 붙잡혔다. 2024.11.22 /김태강 기자 think@kyeongin.com

의정부역에선 8년 전에도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6년 3월 30일 의정부역 지하상가 출입구 계단에선 쇼핑백에 숨진 채 담긴 영아가 발견됐습니다. 숨진 영아의 친모는 베트남 국적 여성 B씨. B씨도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에 입국한 유학생이었습니다.

한국서 낳은 영아 의정부역에 버린 베트남 10대女 2명 검거

한국서 낳은 영아 의정부역에 버린 베트남 10대女 2명 검거

다고 밝혔다.A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8시 30분께 의정부시 의정부역 지하상가와 연결된 출입구 계단에 자신이 낳은 남자 영아 시신을 쇼핑백에 넣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베트남에서 사귄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기를 가져 임신 6개월 상태였던 A씨는 임신 사실을 숨기고 국내로 들어와 지난 1월 한국어 어학연수를 위해 의정부시 한 대학에 입학했다.그러던 지난달 30일 오전 4시께 출산 예정일을 1개월 가량 앞두고 진통이 시작됐다. A씨는 결국 기숙사 화장실에서 아기를 출산했지만 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다.이후 A씨는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 B씨와 함께 의정부역으로 가 아기를 담은 쇼핑백을 놓고 달아났다.A씨는 경찰에서 "출산 당시 아기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고 모유가 나오지 않아 분유를 먹이려 했으나 3시간 만에 숨졌다"며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역에 아이 시신을 놓아두면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해 장례를 치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경찰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영아 시신을 부검해 A씨의 진술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침이다. 의정부/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경기 의정부경찰서는 1일 한국에서 낳은 아이가 숨지자 쇼핑백에 넣어 의정부역에 유기한 베트남 국적 A(19ㆍ여)씨와 A씨를 도와 범행에 가담한 B(19ㆍ여ㆍ베트남 국적)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A씨가 영아 시신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의정부 역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 /의정부경찰서
https://www.kyeongin.com/article/1061565

입국 전 베트남에서 사귄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B씨는 입국 당시 임신 6개월 상태였습니다. B씨는 혹시 모를 불이익 때문에 임신 사실을 부모님과 학교에 숨겼고, 출산 예정일을 약 한 달 남기고 기숙사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안타깝게 아기는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숨진 아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던 B씨는 베트남에서 유학 온 친구와 함께 누군가 아이의 장례를 치러 주길 바라며 숨진 아기를 의정부역 출입구 계단에 유기했습니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며 아기를 잃은 것에 대해 슬퍼했다고 합니다. 분명 숨진 아기를 지하철역 앞에 유기한 행동은 잘못된 일이지만, 출산을 앞두고 기숙사 화장실에서 혼자 아기를 낳던 B씨를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은 되짚어볼 만한 부분입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미혼모

B씨는 ‘외국인’과 ‘미혼모’라는 이중 약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A씨는 현재 모든 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그가 미혼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경찰의 추정이 맞다면 그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겠지요. 이들의 범죄 행위를 감쌀 생각은 없지만, 이들이 처해진 상황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지난해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 이후 정부는 출생 미신고 아동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에서 출생하고도 신고되지 않는 아동은 2천267명에 달했습니다. 이 중 살인이나 유기, 아동 학대 등 범죄 혐의가 밝혀진 사건만 119건입니다.

이에 정부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도입했습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지자체가 법원 허가를 받아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보호출산제는 임산부가 신원 노출을 꺼리면 익명 출산을 보장해 국가가 아기를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두 제도 모두 외국인 아동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 외국인 미혼모가 국내에서 출산과 양육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건강 보험의 가입 여부에 따라 출산에 드는 비용도 천차만별이고, 아이를 낳아도 이주 여성은 언어·문화적 차이로 인해 출생 신고조차 어렵습니다. ‘출산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미혼모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등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인천시 연수구에서 미혼모 지원 사업을 하는 최미라 여성인권 동감 대표는 2019년부터 외국인 미혼모들에게까지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출산부터 양육까지 정부나 지자체 지원 없이 후원과 기부금으로 운영해 오고 있죠. 최 대표는 한국인과 혼인해 출산할 것을 가정한 결혼비자(F-6)가 아닌 이주 여성을 지원하는 사업에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최 대표는 “결혼 이민자분들은 건강가정지원센터, 이주민상담센터와 같은 곳에서 지원이 가능하지만, 결혼비자 외 이주 여성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미등록 이주 여성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어렵죠. 그래서 동감뿐만 아니라 많은 관련 단체가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를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다음 달 12일엔 외국인 미혼모와 관련 기관, 전문가가 모여 이들을 위한 지원책을 찾는 토론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산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미혼모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일 것입니다.

/김태강기자 thin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