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퇴사 여행중 ‘세탁물’만 남긴 채 도둑맞은 짐

호기심 되어 美시스템 견학… 비대면 세탁 서비스’ 영감

개시 1년, 팬데믹 휩쓸며 자연스레 주목

“몇 밤 자면 뽀송하게… 만인이 껴안은 ‘빨래’ 고민 씻어냈죠”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
비대면 세탁 플랫폼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의 조성우 대표가 지난 25일 군포 글로벌 캠퍼스 내 세탁물 합포장 설비 앞에서 세탁물을 들어올리고 있다. 해당 설비는 의식주컴퍼니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4.11.25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비대면 세탁 플랫폼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의 조성우 대표가 지난 25일 군포 글로벌 캠퍼스 내 세탁물 합포장 설비 앞에서 세탁물을 들어올리고 있다. 해당 설비는 의식주컴퍼니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4.11.25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중)’.

영국의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구한말 여성들의 세탁 노동에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한겨울에도 개울에서 종일 빨랫감을 두드리고 밤엔 잠을 잊은 채 다듬이질을 이어가는 것은 당시 여성들 대부분의 숙명이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을 터다. 인류가 옷을 입은 그 시점부터 빨래는 인류의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세탁기의 발명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촉진해 세상을 바꾸고 건조기나 의류관리기가 필수 가전으로 자리잡은 게 이를 방증한다. 일상에서 점점 다양한 옷을 입게 되면서 빨래의 양상도 그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하는 추세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많은 것들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는 데 일조한 코로나19 대유행은 세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탁도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된 것인데,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서비스 중 하나가 런드리고다. 생활 빨래는 세탁기에 넣고 드라이클리닝은 세탁소에 맡기던 기존의 패턴을 뒤흔들어 빨래를 문 앞에만 내놓으면 며칠 뒤 뽀송한 상태로 도착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지난 25일 군포시 소재 런드리고 글로벌 캠퍼스에서 만난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세탁은 만인이 가진, 일종의 ‘공통 언어’다.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옷을 다르게 빨고, 다르게 다리지 않는다. 이는 세계 만국의 사람들이 모두 세탁에 있어 문제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세탁기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세탁 모델인 런드리고는 세탁기보다도 훌륭한 발명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런드리고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런드리고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위기가 만들어낸 기회

조 대표는 일상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해결하는데 관심이 컸다. 13년 전인 2011년 무렵 창업에 뛰어든 후 자신과 같은 직장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 배송 서비스를 만들어 새벽배송시장을 처음 구축한 것도 조 대표다. 해당 플랫폼을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에 매각한 후 ‘배민 프레시’ 대표로 쉼 없이 달렸던 그는 “이젠 사업 안 한다”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미국으로 퇴사 여행을 떠났다. 그 전엔 생각해보지 못 했던 빨래에 새삼 주목한 것은 ‘사고’에 가까웠다. “차량을 렌트해서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바람이 확 들어오더라고요. 뭐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까 뒷유리가 깨져있었어요. 도둑들이 차 유리를 깨서 짐을 다 훔쳐갔더라고요. 빨랫감을 잔뜩 넣어둔 쇼핑백만 빼고요. 왜 빨래는 안 훔쳐갔을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도둑들한테도 빨랫감은 골칫덩이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까 미국의 세탁 문화를 한국 이민자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까지 이어지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세탁 전문가도 만나고, 세탁 공장도 견학하고. 그러면서 세탁이라는 작업이 매우 표준화되고, 기계화되고, 자동화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던 것 같아요. 마치 쿠팡 같은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퇴사 여행이 갑자기 세탁 여행이 돼버린거죠.”

조 대표가 구상한 방안은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비대면 세탁 서비스였다. ‘왜 세탁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부딪혔지만 ‘기존에 통용되는 모델로는 성공할 수 없다’, ‘시장에 없던 새로운 모델이어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런드리고’ 서비스 개시 1년 뒤, 코로나19 대유행이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비대면 세탁 서비스가 주목받았다.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정, 또 여정

표준화·기계화·자동화 가능성 발견… 세계 최대 B2C 세탁시설 조성

본사·군포 팩토리 통합… 문제해결 속도 10배 빨라 ‘고도화 과제’ 해소

합포장 설비까지 오점없는 운영 ‘글로벌캠’ 지역 기반 삼아 세계 도약

지난 25일 찾은 런드리고 글로벌 캠퍼스 곳곳엔 공간마다 초대형 기계들이 가득했다. 각종 세탁물이 자동으로 분류돼 그에 맞게 세탁된 후 다시 한데 옮겨져 주문 가구별로 재분류돼 한 묶음으로 합쳐졌다. 하루에 처리되는 수만장의 세탁물 중에서 소비자가 맡긴 세탁물을 제대로 빠짐 없이 돌려주려면 과정별로 매우 정교하면서도 신속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최근 세계 최초로 세탁물 합포장 설비를 개발해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 대표는 “기존 동네 세탁소를 떠올려보면 소비자가 옷을 찾으러 올 경우 육안으로 확인해 세탁물을 꺼내준다. 그런데 군포 글로벌 캠퍼스는 1만1천900㎡ 정도로, B2C 세탁 시설 중에선 세계 최대 규모다. 이곳에서 하루에 약 3천가구의 세탁물이 처리된다. 사람이 수동으로 옷을 분류해 세탁하고 또 다시 옷들을 찾아서 같이 포장해 배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탁물이 많든 적든, 100벌을 맡기면 100벌을 제대로 보내줘야 하는 것도 관건이다. 99%라는 게 없다”며 “그간의 과정은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여정이었다.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과 설비들을 꾸준히 고민하고 만들어왔다. 속옷이나 양말 같은 생활 빨래와 코트처럼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세탁물을 동시에 맡겼을 때 내부에선 다르게 처리해도 배송될 땐 함께 갈 수 있도록, 합포장 시스템을 만든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서울에 있던 본사를 군포 팩토리와 통합한 것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정의 일환이었다. 군포로 온 지 100여 일이 된 가운데, 조 대표는 반드시 했어야 할 결정으로 규정했다. 테슬라의 2017년 ‘생산지옥’ 사례가 큰 참고가 됐다. 당시 ‘모델 3’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일론 머스크는 공장에서 숙식을 단행하며 직접 생산 라인을 챙겼다. 이를 토대로 테슬라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극복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조 대표는 “세상에 없던, 삶을 바꾸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를 지속적으로 잘 운영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만드는 게 중요한게 아니고 계속 고도화해 나가는 게 중요한 거다. 그러려면 현장을 개선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한계가 있고 실제로 바꾸는 게 너무 어려웠다. 앞서 런드리고를 만들 때 그랬듯이 문제를 풀려면 기존 방식으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확신이 있었고 적극적으로 결정했다”며 “오길 정말 잘했다. 문제가 뭔지 바로 볼 수 있고 해결하는 속도도 10배는 빨라진 것 같다. 생산성도 좋아졌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세탁이 만인의 문제인 만큼 런드리고도 글로벌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발전해 나가겠다는 게 그의 비전이다. 본사와 군포 팩토리를 통합하면서 이곳을 ‘글로벌 캠퍼스’로 명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동시에 지역을 대표하는 곳으로 거듭나겠다는 점도 부연했다. 조 대표는 “우리만의 모델로 인류가 오랜기간 세탁에 관해 가졌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여긴다. 인류가 옷을 입고 지내는 한 세탁은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에 런드리고가 충분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기술을 활용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지, 어떻게 하면 세계 시장에서도 잘할 수 있을지가 제가 해온 고민이다. 애플이나 페이스북, 구글 등 세계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회사들의 캠퍼스가 지역을 대표하는 곳이 됐는데 여기 이곳, 군포의 글로벌 캠퍼스에서 세계 시장에 대한 비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우 대표는?

▲1981년생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 학사, 경영전문대학원 석사

▲2007~2011년 현대중공업 근무

▲2011~2015년 덤앤더머스 대표

▲2015~2017년 배민프레시 대표

▲2019년~ 의식주컴퍼니 대표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