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의 환호성, 재난 될 줄 미처 몰라
나무 명줄 끊으려 하는 계엄군 같아
허약해져가는 숲의 모습 걱정스러워
막무가내 국헌문란 언제까지 지켜보나
과정 중요하단 말로 스스로를 달래


날이 풀리면서 슬슬 산에나 가보자는 심정으로 며칠 전 청계산에 올랐다. 해의 방향이 겨울과는 확연히 다르다. 햇볕도 양광하다.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 무렵 같다. 벌써 오래 전에 하천변의 버드나무는 은은한 푸른 빛을 뿜어 올리기 시작했다.
요즘 산에 가본 분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지. 산 초입에 절반이 뚝 꺾인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현재 산의 모습을 한 마디로 압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산이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바뀌기 시작한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몇 년 전 한 시골 노인은 “우리 젊었을 때 산소에 가면 어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깔려 있어 그걸 뽑아내기 바빴거든. 그런데 지금은 어쩌다 하나 볼 수 있을까? 싹이 안 난다니까”라고 말했다.
청계산 역시 밑에는 아까시나무, 중간부터는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중턱부터 참나무 사이에 소나무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소나무들은 햇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뻗어 올라갔다. 나무만 훌쩍 컸지 줄기는 가늘고 호리호리해서 보기에도 안쓰럽다.
그런 소나무들이 117년만의 ‘11월 폭설’로 지난해 그날(11월27일), 비극을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잎을 달고 힘겹게 서 있던 소나무는 ‘우지직 우지직’ 다 부러져 내렸다. 밑동이 꺾인 놈, 중간 부분이 비틀리다 찢어진 놈, 댕강 잘려나간 놈, 무성했던 가지가 찢겨 생살을 드러내고 있는 놈, 강타당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놈…. 진짜 성한 놈을 찾기 힘들다.
첫눈 온다는 환호성이 재난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칼칼한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에 난데없이 함박눈 폭설이 내리고, 이후 기온이 내려가면서 나무에 그대로 얼어붙어 벌어진 일이다.
오래전부터 필자는 숲이 약해지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기후변화의 첫 징후는 2010년의 태풍, 곤파스였다. 서해안과 수도권 일대를 강타한 이 태풍은 무엇보다 소나무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당시 일부러 서산, 안면도 일대를 찾았던 필자는 도리깨로 타작한 것같이 쑥대밭이 된 소나무밭을 몇 미터마다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안면도 소나무가 비틀려 찢긴 채 꺾이거나 중간이 뚝 부러진 형태로 몸채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 이후부터 한반도에 비다운 비가 사라졌고 태풍다운 태풍도 사라졌다. 강우량이 급감하면서 식수원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 없던 저수지가 쩍쩍 갈라졌다. 먹을 물이 위협받았고 비가 부족해 농사짓기가 힘들어졌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빈번해지고 있는데 불을 끌 저수지의 물이 고갈되고 있다.
어부들은 태풍이 안 분다고 걱정했다. 바다를 뒤집어놔야 고기가 잡히는데 여러 해 태풍이 없어 흉작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굵직하던 생선이 점점 작아졌고 그나마 물량이 없어 값이 치솟았다. 활어로 왁자지껄하던 수산시장의 활기가 언제 적인가 기억에도 가물가물하다.
물을 빨아들이지 못한 숲은 점점 허약해졌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나무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게 보였다. 줄기가 가늘어지고, 잎과 열매는 종전의 절반 크기에도 못 미쳤다. 빽빽하던 숲은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성글어졌고, 쓰러져 나뒹구는 나무들은 무질서하게 뒤엉켜 있었다. 지금은 더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덮친 폭설은 나무의 명줄을 끊으려고 파견된 계엄군 같다. ‘낙락장송’, ‘언덕 위의 소나무’, ‘늘 푸른 솔’ 같이 우리 민족의 정서에 닿아있던 이 나무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는데 대통령 윤석열을 석방하라는 구호가 귓전을 때린다. 아! 지겹고도 지겹구나. 이 막무가내 국헌 문란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김예옥 출판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