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불법·비리에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여 바로잡는 행동 이르는 말
역적 우두머리 혐의 구속수사 중
내란 부화 수행자들의 법원 습격
저항권이 아닌 난동·폭동·역적질

인류의 역사는 인권신장으로 진행될 때에만 진보할 수 있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기본권들이 제대로 행해질 수 있는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 말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민주주의국가 국민들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인류의 역사는 기본적 인권을 누리고 살았던 역사보다는 오히려 기본적 인권을 빼앗기고 독재의 압제에 짓눌려 살았던 역사가 더 오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재의 압제는 영원할 수 없다. 인간의 기본권에는 불의와 불법에 저항하는 저항권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불의에 저항하는 국민들이 있는 한 독재는 결코 오래갈 수가 없다. 우리 국민은 이승만 독재에 저항해서 4·19혁명을 이룩하였고, 전두환 독재에 저항해서 5·18민주항쟁과 6·10항쟁으로 성공하는 저항의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일제 36년의 쓰라린 식민통치에서 국민 기본권을 박탈당했으나, 독립운동과 국민들의 저항을 통해 끝내 우리는 해방을 맞을 수 있었다.
최근 윤석열 정권이 불법 계엄령 선포로 내란을 일으켜 국민의 천부적 기본권을 온통 박탈하려던 때 온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내란에 저항했던 덕택으로 나라가 소강상태에 이르는 성공을 얻어냈다. 아직도 내란은 진행되고 있지만 내란 수괴를 비롯한 내란 중요임무종사자들 대부분이 구속기소되고 있으니, 큰 불길은 잡힌 것이다. 다만 내란 수괴로 지목된 대통령이 위헌·불법적인 내란을 인정하지 않고 내란부화수행자들을 선동하고 격려해서 법원을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키고 있으니 아직도 내란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란의 수괴이자 역적 우두머리의 혐의가 있다고 구속수사 중인데,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을 습격하면서 ‘저항권’을 행사한다고 폭동을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 되는 일인가. 강도를 붙잡았는데 강도를 왜 붙잡았냐고 따지는 게 ‘저항권’이란 말인가.
저항권이란 역적을 보위하고 석방시키거나 감옥에서 꺼내는 일이 아니다. 불의와 불법과 비리에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여 올바르게 바로잡으려는 행동이 바로 저항이고 저항권 행사이다. 인간 기본권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인 법원을 습격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일은 절대로 저항권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난동이요 폭동이요 역적질이다. 난동·폭동·역적질을 하면서 저항권 행사라고 말하는 내란 부화수행자들, 도대체 이 나라를 어떻게 하려고 그런 망동과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인가. 현행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고 있는데 무엇이 불법이고 반헌법적이란 말인가. 역적의 우두머리 피의자를 위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성전(聖戰)이라 호칭하며 헌법기관을 습격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들의 법감정은 어떤 상태란 말인가. 우리는 내란 수괴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도 많은 의심을 하고 있는데, 법원을 습격하고 영장발부 판사를 응징하려는 극우 난동자들의 정신상태는 참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12·3 불법 계엄령 선포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장 군인들이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의사당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점검하던 모습도 놀랍다. 총으로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국회의사당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말도 충격적이다. 누구는 수거해다가 지하 벙커에 감금시키라던 생경한 말도 끔찍하다. 그런 말들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국민이 몇이나 있겠는가.
난동분자들이자 폭도들은 이제 헌법재판소에 쳐들어가려고 한다. 법에 따라 탄핵심판의 심리가 진행되는데, 왜 또 거기에 쳐들어가 폭동을 일으키려 하는가. 명색이 목사라는 분이 난동자들의 우두머리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목사님! 제발 제정신으로 돌아와주면 어떨까요. 이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다른 길이 없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심리가 계속되고 수사기관은 재판 준비가 한창인데, 사법절차가 진행중인 대통령을 폭력으로 꺼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고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조용히 기다려주길 바랄 뿐이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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