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명칭 ‘서울 메트로폴리탄 에어포트’
당시 정부, 국민 공모로 ‘인천’ 논란 회피
시민 노력 최종 확정… 현재 ‘서구’ 진통
새 이름 짓기도 의견 모아 합리적 결과를

‘서울 메트로폴리탄 에어포트(Seoul Metropolitan Airport)’. 인천국제공항이 처음 해외에 소개될 때의 이름이다. 1992년 6월16일 수도권신공항 건설 기본계획이 확정 고시된 직후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제공항 건설 사실을 대외적으로 막 알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첫 삽도 뜨기 전이다. 공항의 명칭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88올림픽’으로 전 세계에 익히 알려진 이름을 앞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인천의 기자에겐 그런 편의와 불가피함조차도 내버려두면 빌미가 되고, 고착의 시작점이 되지 싶었다.
1보가 1992년 7월13일자 신문의 1면 톱기사로 나갔다. ‘신공항 명칭 싸고 논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인천(영종)국제공항이냐, 서울메트로폴리탄공항이냐. 오는 9월 역사적인 착공을 앞두고 있는 수도권신공항의 명칭이 전체 인천 시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후략).’ 앞서 그해 6월29일 한국공항공단 관리이사가 인천시의회 신공항특위에 출석해 공항 건설계획에 대해 첫 공식 보고를 하는 자리에 갖고 나온 해외 홍보용 팸플릿이 발단이었다. 특위 위원들은 이미 해외로 발송된 공식 팸플릿에 ‘서울 메트로폴리탄 에어포트’라고 표기한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유야무야 넘어가는 듯했던 사안은 이날의 보도로 지역의 예민한 정서와 본격적으로 맞닿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인 9월5일, 정부(한국공항공단)가 부랴부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명칭 공모에 나선다. ‘인천’이 아니어야 하는 명분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이후의 전개는 일부 언론 기사의 오류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다뤄진 바와 같다.
장관의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신공항 명칭이 대통령 재가까지 거쳐 마침내 확정 발표된 것은 보도 이후 3년8개월이 지나서였다. 총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상황에서 지역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당시 여권의 계산이 작용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천 시민이 하나가 되지 못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역사다. 지역의 생각들이 흐트러짐 없이 차지게 뭉쳐 빚어낸 극적인 작품이다. 몇 해 전 딸네 가족과 여행길에 올랐을 때 어린 외손주에게 얘기를 들려주었다. 눈덩이만 한 과장을 고명이라며 살짝 얹었다.
좋은 뜻들이 합리적으로 모아질 때 좋은 이름이 만들어진다. 도시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잘 모으면 좋은 삶터의 이름이 탄생한다. 하지만 도시 이름 짓기는 역사와 비전, 그리고 인간의 욕망 같은 요소들이 개입하면서 더 지난(至難)한 일이 되기 마련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인천 서구의 새 이름 짓기도 그런 진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청라’를 놓고 정작 서구 청라국제도시 주민 일부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명칭의 희소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게 이유다. 영종과 청라를 잇는 제3연륙교의 이름은 반드시 ‘청라대교’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도시의 브랜드를 세웠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제 와서 그 이름을 쓰겠다는 건 그편에선 무임승차와 다름없다. 다른 지역과 한 묶음이 되면 부동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사고도 바탕에 깔려 있음 직하다. 누군들 그런 생각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동시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독점의 권리를 주장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존재했던 섬에서 유래한 이름 ‘청라(菁蘿/靑羅)’, 푸르게 우거진 넝쿨의 섬에서 인천의 푸른 보석이 되리라는 이 아름다운 이름에 담긴 비전이 일부 주민의 힘만으로 실현가능할 지 모르겠다. 욕망이 역사와 비전을 가리는 건 아닐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 여파가 서구의 새 이름 짓기에도 미친다. 공개토론의 장이 펼쳐지려는 찰나였는데 아쉽게 됐다.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얻는 과정이 그러했듯이 지역의 생각들이 차지게 뭉쳐 빛나는 작품 하나 빚어냈으면 좋겠다.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