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 배경, 현재와 과거 충돌

해외 여성 교육·출산율 동반 상승

핀란드, 고소득·고학력 훨씬 높아

스웨덴, 출산 여성 수입이 더 많아

한국, 출산으로 불이익 악습 여전

장제우 작가
장제우 작가

전직 대통령 윤석열은 가치관, 태도, 국정운영 등 모든 면에서 구시대의 망령과 같은 인물이었다. 독재 시대의 유물인 불법 계엄까지 저지르다 파면된 것은 어쩌면 그에게 가장 맞는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대통령까지 오른 데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시대를 거스르는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세로 굳어진 초저출산의 배경에도 현재와 충돌하는 과거가 박혀 있다. 2024년 출산율은 0.75를 기록하며 다행히 전년에 비해 0.03이 반등했다. 비록 작은 수치이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전문가들은 템포 효과, 즉 미뤘던 출산이 이행된 부분이 크기에 장기적 상승의 신호로 보기엔 이르다는 진단이다.

3월 OECD의 템포 조정 출산율 추계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동시에 전한다. 좋은 소식은 근래 한국의 출산 지연이 모두 실현될 경우 무려 1.19까지 출산율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서는 출산율 상승폭을 최대로 잡을 경우 2035년에 1.21에 이른다. 이 정도만 돼도 한국의 처지에선 감지덕지이다. 나쁜 소식은 과거 출산 지연 해소를 가정한 OECD의 출산율 추정치보다 실제 더 낮은 출산율이 기록됐다는 점이다. 2035년까지 출산율이 오르더라도 1.00을 밑돌 가능성이 상당하다.

템포 조정 출산율을 여타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이 꼴찌이고 최근 악명(?)을 떨치는 핀란드가 1.42로 그 다음이다. 핀란드 여성의 교육 수준별 출산율을 보면 근래 핀란드의 저출산(2023년 1.26)은 대부분 저학력층에 기인한다. 석사 이상이 1.59로 가장 높은 반면 여타 대졸은 전체 출산율과 거의 같고 고졸과 그 미만은 1.04와 0.94에 그친다. 한국의 통념과는 달리 고소득층에 속할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현저히 높은 것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출산율의 정비례는 오래전부터 지속된 현상으로 남성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핀란드의 경우 미래 불안을 크게 체감하는 저소득, 저학력층의 초저출산이 한층 급선무라 하겠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출산율의 동반 상승은 기실 많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940~50년대생 코호트부터 여성 교육과 출산의 반비례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생 코호트부터는 대졸 여성의 상대적인 저출산이 사라진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구시대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했다. 연구별로 엇갈리기는 하나 여러 문헌에서 한국도 과거와 달리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 의향이나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대적인 출산 경향과는 차이가 있다. 2010년 27.4%였던 전문대졸 이상 기혼 여성의 추가 자녀 의향은 2020년 18.5%로 급감했다. 이는 중졸 여성 13.5%에 비해 단 5% 높을 뿐이다.

전문대에서 대학, 대학원 이상으로 갈수록 자녀 수는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사 이상의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눈에 띄게 높은 핀란드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국 여성의 교육 수준은 최고에 달했지만 출산으로 큰 불이익을 당하는 구시대의 악습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많은 선진국에서 여성 소득은 교육과 마찬가지로 출산율과 비례하며 남성과 같은 양상을 띤다. 스웨덴의 경우 2017년에서 2021년 사이 상위 25% 여성은 인구유지 출산율인 2.1을 초과했고 25~50%는 2.00에 약간 못 미쳤으며 하위 25%만이 1.00에 미달했다. 특기할 점은 아주 오래전부터 출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던 여성의 소득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생애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1940년대생 코호트는 0~1회 출산 경험 여성의 수입이 2~3회 여성보다 많았지만, 1950~70년대생 코호트에서는 1~3회가 0회보다 오히려 많았다. 반면 한국에선 남성과 달리 여성의 출산과 벌이가 상충한다는 연구가 많다.

일반적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계층을 가리지 않는 초저출산의 와중에 남성은 전통의 소득별 격차가 온존하고, 여성은 구시대적 출산 격차에 갇혀 있다. 윤석열이라는 망령도 걷어내지 못한 마당에 갈 길이 멀다.

/장제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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