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중엽 미국에게 영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긴 멕시코는 “신은 멀리 있고 미국은 가깝다”고 신음했다. 신까지 들먹일 정도는 아니나 우리에겐 중국이 애물단지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역사에서 누적된 은원이 복잡한 탓에, 양국의 감정은 원근이 교차한다.

근현대사만 일별해도 일제 극성기엔 두 나라 민족은 항일 동맹으로 뭉쳤다. 극적인 대역전 통일로 끝날 뻔한 6·25 전쟁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40년간 북한의 혈맹이던 중공이 1992년 수교로 중국이 됐고, 한국엔 중국 열풍이 불었다. 기업과 관광객들이 중국 전역에 공장을 짓고 돈을 뿌리며 중국 특수를 만끽했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유훈을 받들어 분발한 중국이 시진핑 시대에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맞짱을 뜬다. 트럼프의 145% 관세를 125% 관세로 받았다. 애플, 테슬라, 월마트가 박살나자 트럼프는 시진핑의 전화를 고대한다며 꼬리를 내린다. 미국과 겨루는 중국이 한국을 얕본 지는 한참 됐다. 동북공정과 하대외교에 김치, 한복까지 우리 정체성을 집적대는데 대응은 번거롭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11일 트럼프의 상호관세 90일 유예 결정에 대해 SNS에 한글로 “중국의 반격과 저지 덕분이니 잊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 첨부된 동영상에 적힌 “나를 공격하면 반드시 반격한다”(人若犯我 我必回擊)는 문구는 살벌하다. 한국을 향해 미국 편에서 중국을 적대하지 말라는 경고다. 전임 싱하이밍 대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면전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고 한국 정부에 날린 공개 경고의 연장이다. 상국의 미관말직 사신이 조선 군주를 호령했듯이, 중국의 오만이 시대착오를 불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보다 중국이 무섭다. 미국은 대통령을 바로잡을 의회와 언론과 여론이 있지만, 시진핑의 중국굴기는 공산당과 14억 중국인이 받치고 있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인륜엔 거슬리나 외교의 금과옥조로 도광양회와 상통한다. 우리 외교는 입에 꿀 바르고 ‘미국에 땡큐, 중국에 셰셰’하는 균형외교가 기본이다. 하지만 구밀외교도 최후의 순간에 꺼내들 복검이 있어야 힘을 받는다. 여야가 대를 이어 정권마다 산업, 안보 분야의 복검을 벼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벼랑 끝에 섰을 때 멀리 있는 신을 부를 일이 없을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