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석남 이경성 미술이론가상 수상
“한국 현대미술 이론 뒷받침한 李 선생님
비평 불모지서 선구자 맥락 평가, 과분해”

인천시와 인천시립박물관은 지난 3월31일 ‘제12회 석남 이경성 미술이론가상’ 수상자로 이주헌(64) 미술평론가를 선정했다.
올해 석남 미술이론가상은 그동안 주로 전문 연구자의 학술 성과에 주목했던 수상자 선정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석남 미술이론가상 심사위원회는 미술 대중화에 이바지한 독보적 ‘미술이야기꾼’으로 널리 알려진 이주헌 평론가를 택한 이유에 대해 “미술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전달하며 한국 미술 담론의 지평을 넓혀 온 그의 활동은 미술 향유의 저변 확대에 평생을 바친 이경성 선생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석남 미술이론가상 시상식은 6월 제21대 대통령선거 이후로 미뤄졌다. 아쉬운 마음에 수상 소감을 미리 들으러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에서 지내는 이주헌 평론가를 찾았다. 지난 14일 오전 헤이리 식물감각에서 만난 그는 “미술 대중화 부분에서 제 역할로 생각하고 해 온 것과 이경성 선생께서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 평론가로서 역할을 시작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봐 준 것은 과분하다”면서도 감사의 인사로 소감을 말했다.
“이경성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미술 비평이란 게 거의 존재하지 않을 때 미술 비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선구자 중 선구자입니다. 제가 알기론 6·25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전시(戰時)에 무슨 미술 비평이 필요하느냐’고 한가롭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가진 힘, 그 가치를 더 찾고 믿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누군가 파괴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창조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존재했습니다. 미술 분야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을 이론으로 뒷받침하고 대중에게 알린 게 이경성 선생이었습니다.”
이주헌 평론가는 애초 화가가 되고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나,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서 미술 전문 기자의 길을 걷게 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작가의 경험과 종합일간지 기자의 대중적 글쓰기 실력을 한데 녹여 낸 책이 1995년 낸 스테디셀러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권이다. ‘해외 여행 전면 자유화’ 이후 거의 첫 해외 미술 현장 답사기로 당시 서양 미술 기행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이주헌 평론가는 “1990년대 초 일본을 방문했는데, 서점마다 유럽 혹은 세계의 미술·미술관에 관한 대중 서적이 20종 넘게 깔려 있었다”며 “이러한 책이 이젠 한국에도 필요하단 생각에 아이들(자녀들)을 데리고 유럽 11개국을 여행해 써냈다”고 말했다.
이후 이주헌 평론가는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신화의 미술관’ 등 30권 넘는 미술 관련 에세이와 교양서를 썼고, 교육방송(EBS)에서 대중과 청소년을 위한 미술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했다. 최근 독자들에게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연재했던 ‘이주헌의 그림 세상’이 익숙하다. 학고재 갤러리 관장, 서울미술관 관장 등을 지내며 미술 기획에 몸담기도 했다.
“한국의 미술계에서 ‘강단 비평’이 주류를 이뤘고, 미술 이론 연구 등에 굉장히 이바지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어려웠다는 겁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전시장 관람은 아주 낯설고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미술이 대중화의 길로 가야 척박한 환경에서 젊은 작가들도 발굴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주헌 평론가의 애독자라면 반가운 소식이 있다. 그는 올해 안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유튜브 콘텐츠로 독자들을 만날 생각이다. 이주헌 평론가는 “예술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이라 생각한다”며 “미디어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가 제 사명이라면, 유튜브를 통해서도 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