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개장국 유래… 소고기로 대체
양지머리·토란 줄기·고사리 등 사용
닭계장 아닌 닭개장·계개장 불려야
‘개식용 금지법’ 국내서 못 먹을 전망
문화 폭력·인간 기본권 침해하는 일


헤어짐은 대체로 슬프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고사성어로 위로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 그렇다. 특히 이승과 저승의 영역을 구분하는 이별의 슬픔은 형용 불가 영역이다. 이런 슬픔의 공간인 장례식장의 음식은 주로 육개장이다.
1983년 용미리(경기도 파주) 공원묘지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장례식장이 등장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장례는 집에서 치렀다. 노란색 근조 등(燈)이 집 문 앞에 걸리면 누군가의 상(喪)을 의미했다. 슬픔을 위로하는 문상객이 오면 귀한 마음을 담아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못사는 시대에 마땅한 이바돔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면 키우던 개, 혹은 동네에 돌아다니던 개를 잡아 탕을 끓였다. 문상객에게 개장국을 대접한 것이다. 이후 개장국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소고기가 저렴해지면서 육개장이 개장국을 대체했다. 실제로 을지로의 ‘조선옥’이라는 식당에는 ‘대구탕(代拘湯)’이라는 메뉴가 있다. 대구는 ‘개를 대신한다’라는 뜻이다. 생선 대구(大口)와는 아무 관련 없는 육개장을 말한다.
개장국의 고기는 매우 부드럽고 잘 찢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육개장의 고기도 잘 찢긴다. 결이 부드러운 소의 양지머리 부위를 썼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란 줄기, 고사리 등을 넣어 한소끔 푹 끓이면 육개장이 된다. 찐득한 느낌의 육개장을 원한다면 큼직하게 썬 대파를 넣고 푹 고아 파 육개장을 만들 수 있다. 묵직한 국물에 스며든 개운한 파의 진액은 파 육개장만의 고유영역이다. 소고기를 닭고기로 대체하는 예도 있다. 그런데 이 음식은 명칭 논란을 달고 다닌다. 메뉴판에는 육계장 혹은 닭계장이라고 쓰여 있다. 옳지 않은 표현이다. 닭개장이나 계개장이 옳다. 매콤한 탕을 만드는 기본 조리법에 고기의 종류만 바꾸면 이렇게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한다. 한국인의 육개장 사랑은 사발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2 월드컵을 7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라는 프랑스 배우와 인터뷰했다.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으니 야만스럽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진행자는 “인도인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소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소는 먹으라고 있는 거지만 개는 우리의 친구”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여배우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이른바 ‘김건희법’으로 불리는 개식용 금지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개장국을 먹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음식은 그 지역의 기후, 환경, 식생이 합하여 만들어진 고유문화이다. 그러므로 음식문화는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가 아니다. ‘이 지역은 이렇구나’라며 이해하는 이질의 동질화 과정이다. 내가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 내가 싫은 음식이라고 그것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화 폭력이다. 또한 권력이 있다고 하여 특정 음식 금지법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동안 지인들의 슬픔을 위로하려 전국의 많은 장례식장을 돌아다녔다. 함량 미달의 육개장을 내는 장례식장이 많았다.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큰 슬픔을 위로하는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더욱 정성스럽고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조용준 경제학박사·안산미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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