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 통해 무단 침입해 짐 꺼내거나

거처 옮긴 사이 새 임차인 입주한 사례

집 비운 사이 타인에게 방 보여주기도

 

“단기임대 수익 피해자에 돌려줄 계획”

전문가들 “사기성 주장에 불과해” 지적

정씨 소유 수원시 팔달구 한 빌라 복도에 피해 세입자 A씨(33)의 짐이 비닐봉투와 수납함 등에 담긴 채 문 밖에 놓여 있다. A씨는 임차권 등기를 마친 뒤 짐을 둔 채 거주지를 옮겼지만, 정씨 측 대리인이 세입자 동의 없이 문을 열고 내부 짐을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제공
정씨 소유 수원시 팔달구 한 빌라 복도에 피해 세입자 A씨(33)의 짐이 비닐봉투와 수납함 등에 담긴 채 문 밖에 놓여 있다. A씨는 임차권 등기를 마친 뒤 짐을 둔 채 거주지를 옮겼지만, 정씨 측 대리인이 세입자 동의 없이 문을 열고 내부 짐을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제공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2024년 12월10일자 7면 보도)받고 구속 상태로 항소 중인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가해자 정씨의 빌라에서 대리인을 통한 ‘2차 가해’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임차권 등기로 점유 중인 주택에 정씨 측 대리인이 무단 침입해 짐을 꺼내거나 방을 보여준 사례가 확인되면서다. 법률 전문가들은 “명백한 주거침입죄”라고 지적한다.

수원 전세사기 주범 징역 15년… 공범인 아내 6년·아들 4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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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54)씨에게는 징역 6년을,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정씨 아들에게는 징역 4년을 각각 선고했다. 김 판사는 “임대차 보증금은 서민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고, 주거 안정과도 직결된 문제다. 피해자 중 1명은 피고인 범행이 드러난 후 목숨을 끊기까지 한 것
https://www.kyeongin.com/article/1721950

21일 수원남부경찰서는 지난 18일 A(33)씨로부터 주거침입 혐의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A씨는 수원시 장다리로 소재 정씨 소유 건물 세입자다.

A씨는 전세사기로 1억6천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임차권 등기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 17일 현장을 찾았을 때 집 안에 뒀던 짐이 모두 문 밖으로 꺼내져 있었고, ‘4월 20일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처분하겠다’는 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문이 훼손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마스터키나 열쇠업체를 통해 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비슷한 피해는 다른 건물에서도 발생했다. 팔달구 경수대로 소재 정씨 소유 건물의 세입자 B씨는 집을 비운 사이 대리인이 무단으로 문을 열고 방을 타인에게 보여줬으며, 세류동 건물 세입자 C(35)씨는 임차권 등기 후 짐을 둔 채 거처를 옮겼으나, 어느새 새로운 임차인이 입주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됐다.

1억8천만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C씨는 지난 18일 이웃주민으로부터 “입주 청소가 진행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현장을 찾았다. 집 안에 있던 짐은 모두 치워져 있었고, 이미 3개월치 월세를 선납한 새로운 세입자가 입주한 상태였다. 새로운 세입자는 “임대인의 부동산 대리인과 계약했다”고 설명했으며, 계약 당시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라는 고지는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세입자 A씨의 짐 위에 놓인 봉투에는 ‘4월 20일까지 안 가져가시면 폐기하겠습니다’라는 메모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A씨 제공
피해 세입자 A씨의 짐 위에 놓인 봉투에는 ‘4월 20일까지 안 가져가시면 폐기하겠습니다’라는 메모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A씨 제공

이후 C씨는 부동산 대리인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았고, 이 인물은 “단기임대 수익의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려줄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법적 점유권을 무시한 일방적 침해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전문가들은 “사기성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문제가 된 이 건물들은 모두 수백 세대에 이르는 피해가 확인된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의 핵심 인물, 정씨 소유다. 정씨는 현재 위임장을 통해 대리인에게 빌라 운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대리인이 빈집을 대상으로 무단 침입하거나, 제3자에게 단기 임대를 시도하는 정황이 여럿 확인되고 있다.

이런 행위는 형사상 주거침입죄로 처벌될 소지가 있다. 임차권 등기를 한 세입자는 법적으로 점유권을 인정받기에 점유권이 유지되는 한 제3자의 허락 없는 출입은 침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라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동의 없이 출입하거나 짐을 치우면 형법상 침해행위가 될 수 있다.

이희우 법률사무소 중경 대표 변호사는 “임차권 등기를 마친 세입자가 짐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는 점유로 인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인 측이 무단으로 출입하고 짐을 꺼낸 것은 형법상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보증금 반환과 퇴거는 원칙적으로 동시이행이며, 임차권 등기 후에는 보증금 반환이 선이행 의무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인 대리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이유로 집을 다시 임대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