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면 지하철에 끼여서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밀면 밀려도 봐야 한다. 대중이 사는 걸 똑같이 살아봐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는 추기경 시절 전용차 대신 지하철을 이용했다. 교황이 된 뒤에도 전용차 파파모빌레(Papamobile)를 거절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픔이 있는 곳을 향해 기도했다. 교황 즉위 후 아시아 첫 방문지로 온전히 한국을 택했다.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 지난 때였다. 위로는 간절한 곳에 임했다. 기도의 응답이고 기적이라 말했다. 1천600cc 소형차에 ‘SCV(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바티칸 시국) 1’ 번호판이 달렸다.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쏘울’에 몸을 실었다. 뜻밖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철제 십자가와 허름한 구두, 격식보다 본질을 중시했다. 한국사회에 청빈과 소박함의 가치를 일깨웠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 중립적일 순 없다.” 프란치스코의 시선이 먼저 향한 곳은 세월호였다. 유가족과 생존 학생을 만나 경청하고 안아줬다.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모든 한국인을 고통받게 한 비극적인 이 사건이 공동선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모든 이들의 책임과 연대성을 확인시켜 주었기를 기원합니다.” 삼종기도(三鐘祈禱·The Angelus)로 용기를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도 잡아주었다.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상징 ‘나비 배지’를 달았다. 음성 꽃동네 장애인,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 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과 함께했다. 고통이 머문 곳에 입맞추고 포옹했다.

‘살인하지 말라’(출애굽기 20장 13절) 십계명 중 여섯 번째 말씀이다. 프란치스코는 현대 상황에 빗대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프란치스코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 남북 분단상황을 형제에 비유하며 용서하라 했다. 낮은 곳을 찾아가 차별과 폭력에 저항했다. 21일 선종하기 하루 전까지도 야만의 전쟁을 끝낼 것을 촉구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소외된 이웃을 구하는 문명이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