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특례시에 ‘희릉·효릉·예릉’
한참 뒤에 소현세자 묘 ‘소경원’
비공개 많고 ‘쓰라린 역사’ 잠든
광활한 능역, 골프장에 훼손되고
교통도 불편… 속히 복원됐으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40기 중 가장 고요한 능이 고양에 있다. 고요한 것이 아니라 찾아갈 수 없어 늘 조용하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한적할 따름이다. 찾아가려고 해도 교통이 불편하다. 전철도 버스도 심지어 그 왕릉 주변엔 음식점도 커피숍도 없다. 왕릉 주변 그 많은 갈빗집 역시 여기는 예외다. 왜 이렇게 조용한 왕릉일까? 이른 아침 승용차로 길을 나선다. 한양도성 밖 서쪽에 왕릉 3기가 있어 서삼릉(西三陵)이다. 한양도성 관문 숭례문 나가 통일로 따라 연신내역과 구파발 지나면 삼송역이다. 서울과 경기 경계가 고양특례시다.
고양특례시 삼송동에서 원당동으로 가는 길목에 농협대학교가 보인다. 축구장과 야구장 그리고 테니스 코트가 있는 농협대학교 정문에서 고양버스 043번이 서삼릉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른 아침 아무도 타지 않았다. 언덕길 따라 오르니 확 트인 들판에 해가 솟는다. 햇살이 비치는 길 양쪽으로 연두색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말이 뛰어나올 것 같은 풍경이다. 가까이 가니 한국마사회 원당종마목장과 농협 젖소개량사업소가 있다. 그 사잇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삼릉 정문이 있다. 안타깝게도 주차장은 따로 없다. 도로변에 주차 후 제일 먼저 들어간다. 이곳에 누가 잠들어 있을까?

서삼릉에 희릉·효릉·예릉 그리고 소현세자 소경원이 주인이었다. 서삼릉 안 능은 중종 계비 장경왕후 윤씨 희릉(禧陵), 장경왕후 아들로 최단기 8개월 재위한 인종과 인성왕후의 쌍릉인 효릉(孝陵), 그리고 힘없는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쌍릉인 예릉(睿陵)이다. 특히 서삼릉 중 효릉은 조선왕릉 중 가장 마지막까지 비공개 능이었다. 주변의 영향이었을까, 후손 없는 까닭이었을까 아직도 이곳은 비공개가 많다. 특히 인조 장남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 심양까지 9년간 끌려간 후 창경궁에서 남모를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 묘는 아직도 비공개다.
소현세자 묘 소경원(昭慶園)은 예릉 뒤 한참을 걸어야 보인다. 주변은 왕릉이지만 아쉽게도 골프장과 군사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소경원 옆 그의 아들이자 인조 장손인 경선군과 경완군 묘도 있지만 둘 다 비공개라 들어갈 수 없다. 부자가 나란히 있는 쓸쓸한 모습에 멀리서 눈으로만 인사한다. 더구나 이곳에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 무덤도 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어머니 제헌왕후 작위는 삭탈 되고 회릉도 회묘(懷墓)로 격하된 후 이곳에 이장되었다. 역사의 쓰라린 한 페이지가 이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서삼릉은 지금의 규모가 아니었다. 남양주 광릉만큼 넓었다. 429만7천500여㎡에 달하던 서삼릉 능역이 현재 26만4천400여㎡다. 서오릉을 상상하면 서삼릉 넓이가 그려진다. 광활한 서삼릉 능역에 골프장과 종마장 및 군사시설이 들어와 서삼릉이 훼손되었다. 서삼릉 일부가 비공개된 후 찾는 이가 거의 없다. 또한 교통이 불편하니 방문객도 매우 적다. 설상가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중 가장 훼손이 심하다. 특히 소현세자 묘인 소경원을 하루속히 자유롭게 방문하게 하자. 광명시 노온사동 노온저수지 옆 소현세자 부인 민회빈 강씨 묘 영회원(永懷園)도 이제 소현세자 곁으로 옮겨주면 좋겠다.
훼손된 서삼릉을 복원하고 새로운 숲길에서 소현세자 가족을 함께 보고 싶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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