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과 지옥이 법정에서 만나면 지옥이 100% 승소하는데, 천국엔 변호사가 없기 때문이란다. 악덕 변호사를 풍자하는 서양 유머 한 토막이다. 사람이 구성한 사회와 조직이라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기 마련이다.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쁜 변호사를 만나면 법적 피해가 치명적이다. 서양의 고약한 변호사 유머는 오랜 세월 나쁜, 이상한 변호사들의 악덕에 시달린 경험칙 탓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당한 윤성여 씨는 모진 고문 끝에 거짓 자백했지만, 국선변호인에게만은 자신의 무죄를 읍소했다. 국선변호인은 고문과 증거의 효력을 다투기보다는 형식적인 감형 변호에 그쳤고, 윤 씨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됐다. 윤 씨는 고문 경찰 만큼이나 변호사를 원망했을 것이다.
2007년 발생한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 사건의 누명을 쓴 가출 청소년들의 국선변호인 박준영도 처음엔 성의 없이 재판에 임했단다. 하지만 청소년들을 지도했던 청소년센터 관계자들의 읍소에 마음이 움직여 법적 쟁점과 증거들을 철저하게 조사한 끝에 누명 쓴 아이들의 무죄를 입증했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법조 철학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헌법이 정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에게 나라에서 변호사를 붙여주는 국선 제도가 있다. 법원이 지정한 국선변호인과 국선전담변호사는 형사 피고인 변호를 맡는다. 법무부가 지정한 국선변호사는 성폭력, 아동·장애인 학대 피해자 조력을 전담한다. ‘국선’들은 거대한 이익 분쟁에 개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대형 로펌과 의뢰인들의 등을 치는 악덕 변호사들과는 결이 다른 법치의 파수꾼이다. 이들은 윤 씨나, 수원 가출 청소년들 같은 법적 무연고자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이다. 오원춘 같은 흉악범도 국선들이 명예와 경력을 희생해 법적 요건을 완성해야 단죄할 수 있다.
그런데 처우가 형편없다. 국선변호인은 건당 55만원을 받는다. 월 보수 600만원인 국선전담변호사는 재위촉돼야 800만원이고, 피해자 국선변호사도 월 500만원이다. 쥐꼬리 보수에 국선 변호에 대한 불신이 싹튼다. 대다수 국선들의 열정과 헌신은 박준영 못지 않을 텐데 돈으로 기죽일 일인가 싶다. 교통벌과금만 매년 1조 수천억원이다. 예산으로 국선 변호에 힘을 주면 사법정의도 더 단단해질 것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