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에 신물 국민, 새 리더십 고대

‘고통 앞에 중립 없다’고 말한 교황

정적도 감화시킨 협상의 달인 링컨

정치보복의 악순환 끊어낸 김대중

셋 모두 사후에도 존경·사랑 받아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장미대선이 현실로 다가왔다. 연말 이후 정치 혼란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깊어졌다. 경기는 침체일로이고, 경제성장 전망치마저 악화일로인 데다 대외 여건도 녹록지 않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관세율 인상 정책과 방위비 증액 압력이 거세다. 대미 협상력 강화에 만전을 기해야 할 상황이다. 극단의 대결 정치에 신물 난 국민은 오매불망 새 리더십(leadership)을 고대하고 있다. 장미대선 이후 대한민국호의 안정과 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세 가지 사례를 참고해 보려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불과 1주일 전에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이다. 원로 사회학자 한완상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을 일러 ‘바보 리더십(바로 보듬는 리더십, 바로 보살피는 리더십, 바로 보는 리더십)’이라 부른다.

2014년 교황 방한 때의 일이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을 묻는 기자에게 교황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고 일축했다. 음성꽃동네를 방문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가면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 금욕적인 삶을 살았으며 수시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끌어안고 위로했다. 그의 선종 소식에 전 세계인이 슬픔에 잠긴 이유는 교황이라는 직책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생전 그의 온화하고 품이 넓었던 리더십 때문일 것이다. 새 대통령의 리더십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온화하면서도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보듬는’ 리더십이길 바란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리더십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링컨 리더십의 근간은 타협과 협상이다. 노예제 폐지를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남북전쟁 종전 전에 어떻게든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가 속한 공화당의 표를 다 합쳐봐야 수정헌법 13조의 가결은 불가능하다. 야당인 민주당에서 20표를 더 가져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위기의 순간 링컨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던 대통령 링컨과 달리 현실 정치인 링컨에겐 마키아벨리적 면모가 있었다. 수정헌법 가결을 위한 그의 전략은 민주당 의원들에 접근해 정부의 일자리를 미끼로 표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다분히 정치공학적이고, 정략적 행태로 보이지만 그게 바로 링컨의 진면목이었다. 링컨은 또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 바탕한 설득력 있는 레토릭(수사)을 구사했다. 참모들조차 난감해할 정도로 그의 수사는 장황하고도 엉뚱한 비유로 점철돼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나면, 심지어 정적조차도 감화된다. 링컨은 타협의 달인이었고, 탁월한 협상가였다.

야당이나 반대파를 줄기차게 만나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링컨 같은 대통령을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취임 초엔 하나같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재임 중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만을 위한 ‘반쪽’ 대통령이 되곤 했다. 야당을 정치 파트너로 인식하는 대신 내치고 외면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대한민국을 불행의 수렁으로 빠트리고 말았다. 부디 새 대통령은 협상과 통합의 링컨 리더십을 본받기를 바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김대중의 정치철학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압축된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인동초’ 김대중은, 대통령 당선 직후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당선부터가 정적을 끌어안은 결과였으니 그럴 법도 했지만, 척박한 정치풍토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새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 리더십이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링컨, 김대중에겐 공통점이 있다. 재임 중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변함없이 존경받고 있다는 점이다. 장미대선으로 탄생할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 역시 재임 중, 그리고 퇴임 후에도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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