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정책, 주민 참여 잘 안돼

문화기본법·지역문화진흥법 개정

주도적인 실행 권한 명확히 해야

정부·지자체 재정 협력체계 필요

‘문화민주주의’ 실현 중요 발걸음

손동혁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손동혁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오늘날 우리 사회는 획일적인 중앙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고유한 매력을 담은 ‘지역 문화자치’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지역 문화자치는 획일적인 틀 안에서 억눌렸던 각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이 빚어낸 다채로운 문화적 색깔을 존중하고, 그 잠재력을 활짝 꽃피우는 여정이다. 이는 단순히 지역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문화 활동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문화적 권리를 실현하는 민주적인 과정이다.

지역 문화자치의 이상은 지방 정부가 스스로 지역의 특성에 맞는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필요한 재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 이 이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정부가 자율적으로 문화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고, 만성적인 재정 부족 또한 큰 걸림돌이다. 지역 문화 발전을 이끌어갈 전문 인력의 부족 또한 심각한 문제이고, 문화정책의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진정한 지역 문화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개정하여 지역이 실질적으로 문화정책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문화 다양성, 문화민주주의, 자치와 분권, 협치 등의 가치를 법률에 명시하고, 지역문화자치지수를 개발하여 각 지역의 문화자치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각 지역에 문화정책 연구·개발 전담 기관과 문화 정보화 전담 기관을 지정하여 전문적인 정책 수립과 데이터 기반의 정책 결정을 지원해야 한다.

안정적인 재정 확보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정부 차원의 문화 분야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장기적인 재정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를 의무화하고, 각종 정부 기금 및 복권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발생 지역에 직접 배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지역문화세를 신설하고, 기업 후원 및 민간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지역 문화 발전을 이끌어갈 핵심 인력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학, 문화재단, 지방자치단체 등이 협력하여 지역 맞춤형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청년들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창업 등을 포함한 통합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지역 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문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역문화관광 검정시험’과 같은 새로운 시도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정책 수립 및 실행 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중앙, 광역, 기초 단위별 ‘문화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역 문화자치가 실현될 때, 그 긍정적인 효과는 단순히 문화분야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의 능동적인 문화 활동 참여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지역 문화재단과 기관들은 지역 문화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결국, 지역 문화자치는 단순한 행정적 변화를 넘어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문화정책이 특정 기관이나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역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치가 꽃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획일적인 중앙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고유한 빛깔을 존중하고 주민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할 때이다. 이는 곧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풍성하게 하고,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되살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손동혁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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